상당수 사람들이 조선시대는 성리학적 가치관때문에 상공업을 천시했고 그로인핸 근대화를 제대로 못했다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논리가 타당한지에 대해서 따져본다면 결론적으로 아니다라고 단언합니다.
혹자는 고려시대 활발한 대외무역및 상업이 조선시대에 와서 억상정책으로 쇠퇴했다라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조선시대에 와서도 국가적으로 상공업을 억눌르고 대외무역을 축소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도전등이 주장한 억상농본정책에 대해서 그때 억상이라는 단어를 무작정 상공업자체의 천대라고 해석해서는 안될것입니다.
예컨데 산업혁명 직후 초기 자본주의 시대와 비교해서 케인즈경제학이후 현대자본주의는 상대적으로 국가개입이 많고 어느정도 국가사회적 조정통제기능이 있습니다.
만일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비교해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억상정책으로 상공업을 후퇴시켰다라는 논리되로 한다면 자본주의 역시 20세기에 들어서 국가적으로 적정 조정통제기능으로 산업자본발전이 후퇴했다라는 식의 표현이 적합해야 할것입니다.
20세기 들어와서 국가적으로 조정통제기능이 확대된 이유가 19세기 자본주의는 너무 방임된 상태에서 각종 폐단이 많았기에 필연적으로 조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과거 고려시대때의 상업체제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당연히 국가적으로 통제가 필요했습니다.
이미 조선시대 초기에 동대문근처에는 상당수준의 상권이 발달해 있었다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결코 조선시대는 상공업을 억압하고 쇠퇴시킨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문헌등에서도 부유층 사대부들의 사치향락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들이 조선전기에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그래서 뭐 선비라는 사람들이 주자학적 소양에 몰두해서 상공업을 천박하게 생각했다라는 것은 가난하고 고지식한 시골선비들이나 그랬을지는 몰라도 서울에서 재산좀있고 권력층에 있는 사대부들은 돈있는 상공업자들과도 줄이 닿아 있었슴이 확실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경유착이라는 풍토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저런 정황을 볼적에 조선은 초전기에 이미 상업적으로 번성한 상태였스며 후기에도 계속 연결되어 어느정도 자본주의적 분위기로 발전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조선이 근대화에 늦은 이유는 상공업을 천시한 주자학이라는 것은 결단코 어불성설이며 19세기 이후 정치적으로 국가기강혼란에 따른것이 주원인입니다.
첫댓글 맞습니다. 조선의 경우는 문종사후부터는 안정적인 정치를 구현하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왕권이 흔들리며, 왕과 신하, 외척과 신하, 신하와 신하들의 세력다툼과 조일전쟁, 청나라의 압박 신하와 신하간의 다툼등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이런시기에 과학을 발전시킨다는것은 상당히 힘든일이죠. 그리고 조선시대의 기간산업은 역시 농업입니다. 최고의 수익률을 자랑하죠. 그리고 서양의 상공업이 발전한 이유중에 하나가 이제 개발에 들어간 아메리카대륙이란 새로운 지역과 아프리카라는 노예때문에 발전하게 됩니다. 싼상품을 많이 만들어서 개발에 들어간 아메리카대륙에 팔면? 고수익을 올릴수가 있겠죠. 그리고 한번 맞본
고수익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이들은 아프리카에도 팔고, 인도에도 팔고, 이것도 부족하자,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에도 손을 뻗힌 것입니다.
조선초의 상공업 상황은 조선 건국 이후의 발전양상이라기 보다는 고려 말기의 세계사적 순환 흐름에서 그 일차적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상공업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이미 확고한 인식과 그 근거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단편적인 몇가지 정황상의 근거만으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에는 시대사적 흐름의 물결이 너무 도도하다고 느껴지는군요.
19세기 말, 정치적 국가기강 혼란의 배후엔 주자학이 있습니다..; 주자학이 일종의 국가 이념 통제 수단이 조선 중기부터 됐다고 봐도 될 거에요... 어떻게 보면 당쟁, 세도 정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자라나게 해준 토양도 주자학이라고 생각해봐도 될 정도입니다... 조선 초기의 관학파 → 훈구파에 이르는 폐해와는 또 다른 차원이죠... 조선 초기의 실질적인 농상공업 발달을 체계적인 국가 법령을 세워 좀 더 잘 이어갔더라면 또 어찌 달라질지 모르는 거겠죠 ^^;;
조선초기 실질적인 각 산업간의 발달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 당시 시각으로 본다면 합리적으로 잘 체제를 정비했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정경유착은 어느 나라 어느 정권이나 피할 수 없지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돈을 받아서 정치자금으로 이용한다고.. 주고는 뒤에서 욕한다는 말도..
오히려 박제가가 북학의에 남긴 내용처럼 도로가 없었던게 이유가 아닐런지요. 상공업을 천시했다기 보단 발달하지 못해 천시받은 것 처럼 보인거 아닐까요? 도로가 없다보니 바닷가의 젓갈이 내륙으로 올수가 없고, 설령 온다해도 보부상이 발품팔아 왔기 때문에 가격이 많이 비쌌고, 이로 인해 시장이 잘 발달하지 못해 물가는 높아지고 국가 세수는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게 아닌가 싶네요. 조운을 통해 한양으로 물건을 들인다고 하나 기본적으로 백성들이 가난한데 대체 국가가 돈이 있을까요?? 도로 뿐만 아니라 기타 조건들도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로를 만들면 외적이
한양으로 쉽게 쳐들어올 수 있다는 소극적 자세 때문에 조선이 가난했던게 아닐까 싶네요. 조선인들의 상술도 대단한게 명과 청은 조공오는 횟수를 줄이려 하고 조선은 오히려 늘리려 했죠. 조선 사신들이 명과 청의 황제들에게 조공만 바치고 돌아가는게 아니라 조선의 특산물을 가지고 인근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어찌어찌어찌 하며 하도 많은 돈을 벌어가니 명과 청에선 부담스러웠던 것이죠. 물론 하사품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서 조선시대엔 부자들이 .... 특정 집단이 많다고 했죠...
박제가가 북학의에 남긴 내용은 오늘날에도 교통인프라가 부족해서 물류비용에서 손실이 간다라는 논리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주지해야 할것은 북학파들이 활동했던 당시만 하더라도 서구국가들이 조선보다 산업문명에서 압도한 상태가 아직 아니라는 것입니다. 빨라야 영국정도가 산업혁명에 조금식 다가서는 정도였죠.
그랬군요.. 국사교과서가 잘못된 것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