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권위를 과장하는 문제
영국 성공회의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1643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서 열렸고, 이후부터 5년 6개월 동안 151명이 함께 작성하여 채택한 신앙고백 문서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년)이다. 전체 33장으로 총 1만 4천여 단어로 기록된 장문의 신앙고백서이다. 현재 한국 교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이 고백서가 칼빈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장로교를 비롯하여 칼빈주의를 수용하는 많은 교단들이 핵심적인 교리로 채택하고 있다.
이 신앙고백이 작성된 시기가 20세기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이 교회를 오염시킨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앙고백의 내용이 성경에 대한 믿음과 자세를 비롯해서 소위 보수적인 신앙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시의 신학적 조류는 칼빈의 영향이 매우 컸기 때문에 칼빈주의의 독소가 뿌리깊게 침투되어 있어 성경적 교리에서는 총체적으로 벗어나 있다. 이 신앙고백이 소위 자유주의 신학보다는 더 보수적인 신앙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 점수를 받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오류들을 담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 한국 교계는 전혀 무지한 상태에 있으며, 이 신앙고백의 권위를 지나치게 높이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례로 예장 합동에서 발행하는 <신학지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거룩한 성경의 요약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합당하여 영존할 것이다... 그 신앙고백은 불변의 권위를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요약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부지런히 연구를 계속해서 그 권위의 동일함을 우리 백성에게 가르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움이 계실 것이다."[신내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불변적 권위, 『신학지남』제34권 3집, pp.4,5.] 이 주장에 따르면, 이 신앙고백서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와 동일하게 여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글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대를 위해 제시된 논증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대한 장로교인들의 지나친 편견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칼빈주의와 이 신앙고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모든 문제의 최종권위인 성경"을 대신해서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잣대로 오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형적인 한국식 기독교가 형성되는 데 주요한 원인을 제공한 칼빈주의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대한 문제점들을 성경을 통해 바르게 고찰함으로써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에 근거한 기준신학을 형성해야 할 과제가 한국 교회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 예정론을 수용한 문제
이 문서를 작성하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서약을 했다고 전한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전에서 이 회의에 일원인 제가 하나님 말씀에 가장 합당하다고 믿는 것 이외에 여하한 교리나 수련에 대하여 주장함이 없겠사오며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교회의 화평과 선을 소중히 할 것을 엄숙히 약속하고 서약하나이다."[신내리, 위의 책, p.3.]
그러나 이들은 이 서약과는 다르게 칼빈주의를 마치 진리처럼 수용하고 신앙고백서의 신학적 근간으로 삼았기 때문에 당대는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치명적인 오류들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비성경적인 칼빈주의 신학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많은 교리적 오류들을 담고 있어 오히려 바른 내용들을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심각한 영적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계에서는 칼빈주의를 정통신학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것을 요약한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으로, 성경과 같은 권위가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기에 한국식 기독교의 비성경적인 신학과 교리, 그리고 교회들의 비성경적인 실행들을 낳게 된 것이다. 따라서 칼빈의 기독교강요(1559년)와 그의 저작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년)에 나타난 많은 비성경적인 교리들 가운데 특히 "칼빈주의 예정론," 즉 구원론과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비교하고 평가함으로써 그 문제점들을 성경으로 바로잡고자 한다.
1.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며, 전적 무능력을 주장하는 문제
칼빈의 기독교강요 -「타락하여 영적 파멸에 들어간 인간에게서 여전히 자유선택을 찾는 자들이야말로 분명히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이며 하늘과 땅 어디에도 그들의 이 절충 사상은 접할 수가 없다」(제1권 1장 8절). 「인간은 지금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비참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해 있다」(제2권 2장 제목). 「그리고 의지가 타락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제2권 2장 12절). 「의지는 죄의 속박을 받아 노예 상태에 빠졌으므로 선을 향해서 움직일 수 없으며, 더더욱 선에 전력을 다할 수는 없다」(제2권 3장 5절).
[<기독교강요,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를 인용함에 있어, 김종흡, 신복윤, 이종성, 한철하 공역, <기독교강요(상,중,하)>(생명의 말씀사, 1988)에서 발췌한다. 이 번역본은 한국 교계의 칼빈주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 「인류가 선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배격하며 무능해졌고(utterly indisposed, disabled) 악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기울어지게 된다」(제6장 4절).4)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구원에 이를 신령한 선을 소원할 의지력이 전혀 없어졌다(hath wholly lost all ability of will)... 그 자신의 힘으로는 회개할 수 없고 또 회개할 준비도 못한다」(제9장 3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의 인용에 있어, 박윤선 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영음사, 1989)에서 발췌한다. 여러 번역본이 있지만 기독교강요와 같이 한국 교계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이해하는 정도를 판단하는 데 적합하다.]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사실이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나타난 것처럼 인간이 전적으로 무능력하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또한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어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것인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것을 부정하고 있다.
칼빈주의의 첫 번째 강령은 "전적타락"인데, 실제로는 성경이 말씀하는 "전적타락"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와 다르게 가르친다. 즉 인간은 구원받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발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말하는 것처럼 의지력을 포함한 인간의 전적 무능력은 결코 성경이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타락에 대해서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인간은 죽어 있으며(엡 2:1), 그들 안에 있는 죄악은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고(시 51:5, 욥 14:4), 태어나면서부터 거짓을 말하고(시 58:3), 어릴 때부터 악하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창 8:21)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난(요 8:44) 진노의 자녀요(엡 2:3) 불순종의 자식들(골 3:6)이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에 대한 보편적인 타락을 로마서 3:10-20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타락한 모든 인간은 아담과 이브(창 2:16), 이스라엘 자손들(출 35:29, 레 22:23, 민 15:3; 29:39), 다윗과 솔로몬(대상 28:9, 시 54:6) 등은 물론 모든 죄인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구약이 기록하고 있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약에서도 제시되는 성경적 교리이다(눅 17:1, 행 2:23; 3:14,15; 7:52).
하나님께서는 무지의 때에는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어디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회개하라고 명령하신다(행 17:30).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옳다면, 즉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무능력하다면 어떻게 그가 노력했더라도 결국에는 할 수 없었을 일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또 그 책임을 물으실 수 있겠는가? 칼빈의 주장이나 이 신앙고백은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BP
카페 게시글
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선택됨
옵션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