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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계 2:8-11)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한 주간 잘 보내셨습니까? 낮에는 폭염이, 밤에는 열대야가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건강 잃지 않도록 몸 관리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 가운데, 두 번째 교회인 서머나 교회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 아주 특별한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일곱 교회 중 다섯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 없이 칭찬만 받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서머나 교회가 가장 크고 화려한 교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장 가난했고, 가장 많은 핍박을 당하던 교회였습니다.
교회 역사가들은 서머나 교회를 “고난 가운데 가장 건강했던 교회”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는 정통은 있었으나, 처음 사랑을 잃었고, 버가모는 세상과 타협했으며, 두아디라는 혼합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서머나는 가난했고, 핍박받았지만, 순결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세상은 성공을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교회를 가장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많은 성경 연구가들은 “서머나”(Smyrna)라는 이름의 어원이 “몰약(Myrrh)”에서 왔다고 지적합니다. “몰약”은 짓이기고 깨뜨릴수록, 더욱 진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냅니다.
서머나 교회는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와 환난으로 인해 짓이겨졌지만, 그 고난 속에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낸 교회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약속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주님은 우리의 고난을 알고 계십니다.
8-9절 말씀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초대교회 당시 ‘서머나’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부유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서머나는 당시 로마 제국의 번영을 자랑하던 도시였습니다. 화려한 건물과 활발한 무역으로 유명했습니다. ‘아시아의 왕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업이 발달했습니다.
서머나는 로마 황제 숭배가 매우 강한 도시였으며, 시민들은 “가이사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예수님만이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경제적 불이익과 사회적 박해를 당했습니다. 이 부유하고 화려한 도시에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환난과 궁핍’을 당해야 했습니다.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기를 거부하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상업 조합인 ‘길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고, 사회적으로 철저히 소외되었습니다. 화려한 도시 속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동족이라 여겼던 유대인들의 밀고와 비방에 시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머나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면, 직장을 잃었습니다. 상인 조합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경제적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성도들이 가난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눈물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모든 환난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궁핍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해, 자신을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소개하십니다. 왜 하필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입니까?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 놓인 성도들에게, 이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위로였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죽으신 분이 아니라, 부활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죽음을 패배가 아니라, 승리로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목숨과 전 재산을 내놓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했기에, 마땅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극심한 궁핍에 시달렸습니다.
여기에 쓰인 “궁핍”이라는 말은 단순히 넉넉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동전 한 닢 없는 상태”, “거지가 되어 아무것도 없는 상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절대적인 빈곤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네 환난을 안다”, “네 궁핍을 안다”, “네 눈물을 안다”. “네 억울함을 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안다”라는 말은 단순히 어떤 정보를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직접 보고, 경험하며, 공감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저 높은 하늘에서 멀리 떨어져, 우리를 관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물 가운데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성도에게 가장 큰 위로는 어려운 문제가 즉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 우리가 처해 있다고 하는 것을 주님이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눈물과 경제적 어려움,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손해를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가장 부유하고, 편안한 교회가 아니라, 가장 가난하고, 가장 큰 고난을 당하던 교회였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고난이 없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혀 다르게 보십니다. 서머나 교회는 물질적으로 가난했습니다. 아마도, 믿음 때문에 직장을 잃고, 사업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가진 통장의 잔고를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서머나 교회는 세상이 보기에는 실패하고 가난한 교회였지만, 주님의 눈에는 가장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믿음과 영생을 소유한 그들이야말로, 영적으로 가장 ‘부요한 자’였습니다.
일곱 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나는 부자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가난했습니다. 반면, 서머나 교회는 가난했지만, 실상은 부자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주머니가 비어 있어도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은 부자이다. 그러나, 금고가 가득해도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거지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면, 부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수 있다면, 부요한 사람입니다. 예배할 수 있다면, 부요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소유했다면, 이미 가장 큰 부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자가 아니라 승리자요, 가난한 자가 아니라 부요한 자입니다.
이 부요함을 끝까지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주님은 환난보다 더 큰 상급을 준비하십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주님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당장 고난이 없어질 것이다. 아무 문제없는 평안한 날이 금방 찾아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마귀가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며,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이 없어진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십 일’은 길고 끝없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제한된 기한”을 의미합니다. 고난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끝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다가올 고난 앞에서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의 목적은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정금같이 단련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처한 상황이 아무리 캄캄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고난이 끝이 아닙니다.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습니다. 눈물 뒤에 기쁨이 있습니다. 고난 뒤에 영광이 있습니다.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 할지라도 아침 해는 반드시 떠오릅니다.
성도의 고난은 파멸의 길이 아니라, 연단의 길입니다. 금이 불 속에서 정련되듯이, 믿음도 고난 가운데 더욱 순수해집니다.
베드로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벧전 1:7)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거룩하게 하시고, 더 강하게 하시며,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처한 상황이 아무리 나쁘다 할지라도, 주님이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심을 믿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관을 받습니다.
10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목숨을 버리라는 강요가 아니라, “네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믿음의 지조를 지키라”, “죽을 때까지 신실하라”,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말라”는 사랑의 권면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 살면서 반드시 성공하라고 말씀하거나, 유명해지라고 말씀하거나, 부자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신실함을 요구하십니다. 그 무엇보다도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충성이란 무엇입니까? 환경이 좋을 때만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게 손해가 오고, 상황이 나빠져도, 주님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충성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충성은 재능이 아닙니다. 성공도 아닙니다. 끝까지 주님 곁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한 사람보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을 더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서머나 교회에는 폴리캅이라는 유명한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86세의 나이로 화형장에 끌려갔을 때, 로마 총독은 그에게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나는 86년 동안 주님을 섬겼으나, 그분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내가 어찌 나의 왕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했습니다. 장작더미에 불이 붙는 순간에도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고, 마침내 순교의 제물이 되어 주님이 약속하신 “생명의 관”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폴리갑 뿐만 아니라,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었습니다.
교회 역사는 충성된 사람들에 의해 이어져 왔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믿음의 경주는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달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생명의 관”은 왕이 쓰는 왕관이 아니라, 마라톤 경주를 끝까지 완주한 승리자에게 씌워주는 영광의 월계관입니다. 고난을 견딘 사람, 믿음을 지킨 사람, 끝까지 충성한 사람에게 주시는 상급입니다. 우리도 생명의 관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넷째, 승리하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첫째 사망인 육신의 죽음은 피할 수 없을지 몰라도, 둘째 사망인 영원한 심판은 결코 우리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기에, 우리도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살아나셨기에, 우리도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여러분, 서머나 교회는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육신적으로 편안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칭찬받은 교회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내가 네 환난을 안다”, “네가 처한 상황을 안다”, “두려워하지 말라”,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여러 환난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가 있고, 가정의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주님을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크게 흔들려도, 믿음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환경이 아주 어려워도, 예수님을 단단히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머나 교회 성도처럼 목숨을 걸어야 하는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협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말씀대로 살기 위해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고, 세상의 조롱을 견뎌야 하는 영적 전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세상의 부요함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우리가 진정으로 부요한 자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닥칠 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끝까지 믿음을 지켜, 주님이 씌워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서머나 교회 성도들처럼 끝까지 충성하여, 주님 앞에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합니다.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아시고 기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서머나 교회에게 주셨던 위로와 약속이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형편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오직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게 하시고,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며,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