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대하여 https://youtu.be/XQd1uoTUDME?si=FdLl8AAXMY8JcjdM
(2024.06.02. 성령강림 셋째주일 예배)
본문 말씀 : 사도행전 10:1-16
주 제 : 개인의 구원을 넘어, 온 세상을 완전한 세상으로 구원하려는 신앙으로 바꿔야 합니다.
1. 땅끝까지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은 후에 복음은 온 세상을 향해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 안에서만 전파되었지만, 차츰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말 그대로 땅끝까지 즉 이방인에게도 전파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원래 유대인이라는 사람들이 아주 괴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들만 하나님의 사람들이고 나머지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 즉 불필요한 사람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이방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복음조차도 이방인에게는 전할 필요도 없고 전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이 많은 문제를 가져옵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도 그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만납니다. 고넬료는 로마인으로서 자기들의 점령지인 이스라엘에 파견된 군인 백부장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인이었지만 이스라엘에 대해서 우호적이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어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베드로도 기도하고 있었는데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중에 하늘로부터 보자기가 내려왔어요. 그런데 보자기 안에는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이상한 것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보자기에 있는 것을 잡아먹으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절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이런 더러운 것을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다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더럽다고 하지 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베드로를 찾아와서 같이 고넬료에게 가자고 했어요. 그때 성령이 베드로에게 임해서 그들과 같이 가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고넬료에게 가서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그 시간에 그들에게 처음으로 성령이 임했을 때처럼 그들에게도 방언의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것을 보고 베드로가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드디어 고넬료는 이방인으로서는 가장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처음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진 이야기입니다.
2. 유대인의 완고함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완고했던지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복음조차도 전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원래 하나님과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니까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환상을 보여주고 특별히 만나라고 해야만 겨우 만나러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로 인해서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심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유는 ‘너는 왜 이방인을 만났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심문의 대상이고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회의장에서 베드로는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라고 하는데 어떻게 만나지 않을 수 있느냐?’ 겨우 이렇게 해서 그 비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있어요. 사도행전 15장에 가면 베드로는 다시 예루살렘 회의에서 한 번 더 그 사건에 대해서 말해야 했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는 갈라디아서에 가면 베드로는 이번에는 반대로 ‘이방인과 함께 밥 먹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아주 신참 사도 바울에게 또 비난을 받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신약 성서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인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왜 자꾸 이런 문제가 생기는가? 그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우리만 하나님의 사람이다.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이유가 없다. 혹은 그들에게는 복음을 전해서는 안된다.’ 이런 사고 방식이 꽊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거 아주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은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3. 유럽인들의 유대인 혐오
이스라엘 사람만 이방인을 깔보는 것이 아닙니다. 유럽인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랫동안 나라없이 다른 나라에 들어가서 외국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나라에 들어가서도 그 나라에 동화되는 일은 없고 어디에 가서나 그들끼리만 모여서 삽니다. 그 나라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그곳에서 가장 고부가가치 일을 해서 얼마가지 않아서 그 나라 산업의 노란자위 자리는 다 차지해버립니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업입니다. 스쿠루지 이야기 아시지요. 스쿠루지가 유대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디서나 욕을 얻어 먹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에 들어와서 살면서도 그 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 나찌 히틀러는 어릴 때 유대인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욕을 많이 먹기도 하고 많이 놀림을 당했답니다. 그래서 힛틀러가 유대인을 그렇게 싫어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것때문에 힛틀러가 유대인을 그렇게 학대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편견때문에 이런 유대인 학살이라는 큰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유대인이다 이방인이다. 이런 구별은 그때는 그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였을지 몰라도 또 지금도 유럽인들에게는 아직 그런 편견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들에게도 이런 편견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4. 구원에 대한 편견
여러분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어려운 사건을 만나고 그것을 해결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예수를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분이라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결국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가면 그것으로 구원은 끝난 것입니까?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시면 구원은 결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구원이라는 것은 훨씬 더 깊은 것을 말해줍니다.
로마서 8:18-22을 보세요.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구원은 우리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바라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동식물 뿐만 아니라 바위도 산도 바다도 하늘도 구원을 바라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고통을 벗어나려면 우리들이 구원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얻어 단순히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을 얻으면 이 세상도 완전히 새로워진다는 말입니다. 지금 무질서하게 돌아가고 있는 모든 자연현상이 완전히 변화를 받아서 완전히 새로워져서 완전한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어야 할 새로운 세상입니다.
여러분 이런 세상을 꿈꾸어야 합니다. 나만 구원을 받아 평안한 세상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을 받으면 더 나가서 구원을 받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이 세상은 완전무결한 세상이 됩니다. 모든 것이 조화롭고 온 세상에 완전한 질서가 잡히는 그런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5. 꿈이 있는 세상
그런데 이런 세상에 대해서 성경은 구체적으로 밝혀주지 않습니다. 가장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곳은 이사야 65:25입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것을 좀 더 상세하게 풀어놓은 것이 이사야 11:6-9입니다. ’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우리는 이런 세상을 꿈꾸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으면 나 혼자 구원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구원으로 인해서 구원에 충만한 숫자가 채워지면 그로 인해서 이 세상이 온전한 세상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내가 구원을 받음으로서 그런 세상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구원은 바로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십시오.
그런데 이런 세상이 어떤 세상일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이런 세상을 많이 연구합니다. 그래서 책도 많이 나와요. 흥미 위주의 책이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반지의 제왕입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듄도 이런 책이고요. 그런데 요즈음은 그냥 공상이 아니라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영화도 만들고 책도 만들어요. 인터스텔라도 그런 것이지요.
삼체라는 책도 있습니다. 이것은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넷플릭스에서 영화 상영이 되고 부터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책을 한 번 읽어 보세요. 얼마나 자세하게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는지 정말 현실 같아요. 그런데 이런 책들은 대개 외계인이 아니면 악마가 지구를 침공해 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사람을 사로잡게 그대로 두면 안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세상에 대해서 많이 생각도 하고 꿈도 꾸고 상상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믿는 사람들은 그런 꿈을 꾸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으니까 상상도 하지 않아요.
우리에게는 성경 말씀에 근거한 상상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천국을 둘러보는 그런 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날마다 그런 생각을 더 하십시오. 좋은 그림을 보면 천국은 이런 모습일까? 상상해 보십시오. 잠자리에 들 때 천국에 들어가는 상상을 하시면서 잠자리에 드십시오. 그런 상상의 이야기를 꿈꾸면서 살아가십시오. 더 큰 이야기로 날마다 우리를 더 풍성하게 살찌우십시오. 말씀에 근거해서 내 생각을 날마다 더 풍성하게 살찌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