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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거나 혹은 생겨나고 그치는지 등을
아래 몇개의 니까야 경문을 통해서 살펴본다.
'사라짐과 소멸'에서 '멸'의 attha/atthaṅga(영어, disappear)은 생겨나는 어떤 것들(마음부수)이 인지체계에서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 즉, 동일한 인지 범주에서는 회생이 불가능하거나 희박하다는 것이다. 마치 눈으로 형상을 보고 있지만 고개를 돌리면 그 형상은 사라진다.
즉, 동일한 인지 체계는 완전히 소멸하였고 새로이 시각적 인지체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라진다 혹은 없어진다 혹은 소멸한다.'는 한자 '滅'의 진정한 의미는 다시 (S22:5 오온 )생겨남을 관찰하는 것이 희박하기 때문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치 범부들의 인식체계 처럼‥....
즉, 더이상 기대를 할수 없을 때 우리는 "희망이 사라진다."
인지체계에 경험하기가 매우 힘들 때 "무지개가 사라진다" 처럼 (정신작용 색수상행식등이 일어나고) 사라진다에 사용하고 있다.
반면에, 그침 멈춤의 niroha(영어, ceasing)는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친다" "눈물이 그친다"라고 하듯이 특정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경우에 다시 발생할 수가 있고 (무명 갈애의 오염이나 형성 존재의 업 등 처럼) 조건이 다하게 되면 그칠 때의
그침(止) nirodho은 생겨난 그 어떤 것들이 더이상 머물지 않고 수명이 다하여 기능을 잃게 되지만,
동일한 범주의 인지체계에서 조건(오염)에 따라 그 기능이 다시 일어나게 되고 또 (오염이 소멸하면 기능이) 그치게 된다는 의미이다. 12연기에서 각각의 지분들이 다음 지분에 연결될 때도 현재 지분이 사라짐(소멸)이 아니고 현재 그 기능들이 그치게 되므로 다음 지분의 일어남에 조건이 된다고 볼수가 있다.
마치 눈에 여러 형상들이 오가며 반복적으로 의식이 일어나고 그치듯이 혹은 호흡에서 숨결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그치듯이 실참에서 반복적인 기능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S56:11에서 "일어나는 (불선)법은 그 무엇이든 반드시 그친다(소멸이 아님!!!)."가 적절한 해석이 된다.
... 이처럼 nirodho에 대한 한역 '멸'(혹은 소멸)에 익숙한 우리는 '그침'에 대한 기능적인 해석을 놓치고 있었다...유전문과 환멸문에서 그침을 뜻하는 nirodho이 과연 '멸'의 해석에 이 적절한가? "환멸" 용어 자체의 부정이 대두된다.
nirodha - ceasing중지, cessation정지; the being no more; stopping멈춤 止, shutting off멈춤 정지 (New Concise Pali English Dictionary)중지 정지 멈춤 등이 滅이라고 보다는 止에 가깝다. 사라짐 없어짐이 滅이다. 멸관이라고 하지 않고 지관이라고 함
사라짐 없어짐의 滅은 내외입처 일체가 소멸한 인지체계이다. 근데, 내외입처 "일체를 벗어나 새로운 일체를 세우면 희론이다."
동일한 인지체계의 일체에서 앎이 계속 이어져 알려지게 되고 올바른 견해가 생겨난다. 법수관은 동일한 근경식 인지체계의 연속이다.
samatha- calm; quietude of heart; settlement of legal questions (고요함, 寂定) New Concise Pali English Dictionary
조준호 (2000) 초기불교에 있어 止·觀의 문제, 韓 國 禪 學 第 1 號, 禪學(선학), 321-343. (p.321 쪽에서, "止 ( S a m a t h a ) · 觀 ( V i p a s s a n ) 이 불교 수행 의 중 심 이 라고 그 중요성 은 감지 하 면 서 도 구체 적 으 로 그 내 용과 관계 가 무 엇 인 지 정 확히 밝히 지 못하고 있 다" 라고 지관 즉 samatha를 止에 한글로 해석하고 있다.
止·觀은 오개 선정단계가 멈추고 오염이 그치게 되면 "앎과 봄"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법수관)할 수가 있다!!
<빠띠삼비다막가>에서 68-1는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ādhi, dīgh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ādhi…pe… vimocayaṃ citt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ādhi, vimocayaṃ citt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ādhi.길게 들이쉼을 통해 마음의 하나됨과 산만하지 않음이 삼매이다, 길게 내쉼을 통해 마음의 하나됨과 산만하지 아니함이 삼매이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쉼에 의해 마음의 하나됨과 산만하지 않음이 삼매이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쉼을 통해 마음의 하나됨과 산만하지 아니함이 삼매이다.
Imāni catuvīsati samādhivasena ñāṇāni.이들 24가지 삼매에 의한 앎이다.(60.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ādhi, 긴 들숨으로 마음의 하나됨과 산란하지 않음이 삼매이다. )
Katamāni dvesattati vipassanāvasena ñāṇāni?72가지 위빠사나을 통해 앎이란 무엇인가?
Dīghaṃ assāsaṃ aniccato anupassanaṭṭhena vipassanā, dukkhato anupassanaṭṭhena vipassanā, anattato anupassanaṭṭhena vipassanā,긴 들숨을 항상하지않음에 따라가며 보는 의미에서 위빠사나이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의미에서 위빠사나이다. ‘나이다’ 아님을 따라가며 보는 의미에서 위빠사나다. ....
생각할 상想 sanna 인식- 일어나 머물다 사라지는 바에 대상을 인식한다. 받을 수受 venda 느낌- 감각적인 접촉을 느낀다.
니까야 경전에서 어떤 조건의 인지 범주에서
있는 그대로를 일어남과 사라짐에 기술하거나 혹은 일어남과 그침에 설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오염)불선법의 일어남과 그침을 관찰하고, 12연기 집.멸성제에서도 찰나 연기된 법들을 일어남과 그침에 고찰하며,
나아가 선정과 사성제에서도 이러한 고찰이 연관성이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본다.
ㅡ첫번째 경ㅡ
7. dukkhadhammasuttaṃ (SN 35.197)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 경(S35:244) Dukkhadhamma-sutta
♦ 244. yato kho, bhikkhave, bhikkhu sabbesaṃyeva
dukkhadhamm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tathā kho panassa kāmā diṭṭhā honti,
3. “비구들이여, 비구가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들의 일어남과 사라짐(samudayañca atthaṅgamañ,[attha=disappear])을 있는 그대로(yathābhūta) 꿰뚫어 알면
그는 거기서 자신의 감각적 욕망들을 본 것이다.
(☆있는 그대로는 일어남과 사라짐 이다.)
yathāssa kāme passato,
yo kāmesu kāmacchando kāmasneho kāmamucchā kāmapariḷāho, so nānuseti.
tathā kho panassa cāro ca vihāro ca anubuddho hoti,
yathā caran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nānusenti.
그가 자신의 감각적 욕망들을 보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정,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은 더 이상 잠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는 행동하고 머무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머묾으로 해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더 이상 그에게 잠복하지 못한다.”
♦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bbesaṃyeva
dukkhadhamm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4.“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들308)의
일어남과 사라짐(samudayañ atthaṅgamañ)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가?
308)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들'은 dukkha-dhammā를 옮긴 것인데 괴로운 법들로 직역할 수 있다. 주석서에서 “괴로움의 기원이 되는 법들(dukkha-sambhava-dhammā)”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오온이 있을 때 상처 나고 죽고 묶이고 하는 등(chedana-vadha-bandhan-ādi-bheda)의 괴로움이 생겨난다. 그래서 오온은 괴로움의 기원이 되는 법들이 되기 때문에(dukkha-sambhava-dhammattā)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들이라 불린다.”(SA.iii.53)
‘iti rūpaṃ,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iti vedanā... iti saññā... iti saṅkhārā...
iti viññāṇaṃ,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ti —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bbesaṃyeva
dukkhadhamm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이것이 물질이요,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요,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요. … 인식이요 … 심리현상들이요 …
알음알이요,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요,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들의 일어남과 사라짐(samudayañ atthaṅgamañ)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중략...
♦ “kathañca, bhikkhave, bhikkhuno cāro ca vihāro ca anubuddho hoti,
yathā caran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nānussavanti ?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머묾으로 해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더 이상 그에게 잠복하지 못하도록 행동하고 머무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가?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bahukaṇṭakaṃ dāyaṃ paviseyya.
tassa puratopi kaṇṭako, pacchatopi kaṇṭako, uttaratopi kaṇṭako,
dakkhiṇatopi kaṇṭako, heṭṭhatopi kaṇṭako, uparitopi kaṇṭako.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많은 가시가 있는 숲에 들어간다 하자.
그러면 그의 앞에도 가시요. 뒤에도 가시오.
왼쪽에도 가시요, 오른쪽에도 가시요, 아래에도 가시요, 위에도 가시일 것이다.
so satova abhikkameyya, satova paṭikkameyya —
‘mā maṃ kaṇṭako’ti.
그는 '제발 가시가 나를 찌르지 않았으면!'이라고 하면서
마음챙겨서 나아갈 것이고 마음챙겨서 물러날 것이다.
...중략...
evameva kho, bhikkhave,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ayaṃ vuccati ariyassa vinaye kaṇṭako”ti.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성자의 '율'에서는 이를 일러 "가시"라 한다. (불선법을 가시에 비유함. MN36에서는 오염을 물에 젓은 나무에 비유)
4
iti viditvā saṃvaro ca asaṃvaro ca veditabbo.
7. “이를 가시라고 안 뒤 단속과 단속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 “kathañca, bhikkhave, asaṃvaro hoti?
idha, bhikkhave, bhikkhu cakkhunā rūpaṃ disvā
piyarūpe rūpe adhimuccati, appiyarūpe rūpe byāpajjati,
anupaṭṭhitakāyassati ca viharati parittacetaso,
tañca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yatthassa te uppann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parisesā nirujjhanti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단속하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는 열중하고 사랑스럽지 않는 형색은 혐오한다.
그는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못한 채 머물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완전히 그치는 (남김없이 소멸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생겨나 그침[uppannā, nirujjhanti]에 유의한다.!)
... pe ... jivhāya rasaṃ sāyitvā ... pe ...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piyarūpe dhamme adhimuccati, appiyarūpe dhamme byāpajjati,
anupaṭṭhitakāyassati ca viharati parittacetaso,
tañca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yatthassa te uppann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parisesā nirujjhanti.
evaṃ kho, bhikkhave, asaṃvaro hoti.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보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사랑스러운 법에는 열중하고 사랑스럽지 않는 법은 혐오한다.
그는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못한 채 머물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완전히 그치는 (남김없이 소멸하는 ?)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에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단속하지 못한다.”
♦ “kathañca, bhikkhave, saṃvaro hoti?
idha, bhikkhave, bhikkhu cakkhunā rūpaṃ disvā piyarūpe rūpe nādhimuccati,
appiyarūpe rūpe na byāpajjati, upaṭṭhitakāyassati ca viharati appamāṇacetaso,
tañca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yatthassa te uppann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parisesā nirujjhanti ... pe ...
jivhā rasaṃ sāyitvā ... pe ...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piyarūpe dhamme nādhimuccati, appiyarūpe dhamme na byāpajjati,
upaṭṭhitakāyassati ca viharati appamāṇacetaso,
tañca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yatthassa te uppann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parisesā nirujjhanti.
evaṃ kho, bhikkhave, saṃvaro hoti.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단속하는가?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도 홀리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는 형색도 혐오하지 않는다.
그는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머물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완전히 그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에 꿰뚫어 안다.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보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사랑스러운 법에도 홀리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는 법도 혐오하지 않는다.
그는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머물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완전히 그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단속한다.”
(☆ 마음챙김 확립 [upaṭṭhitakāyassati]은 '집법즉멸법'을 의미한다.)
♦ “tassa ce, bhikkhave, bhikkhuno evaṃ carato evaṃ viharato
kadāci karahaci satisammosā uppajjanti, pāpakā akusalā sarasaṅkappā saṃyojaniyā,
dandho, bhikkhave, satuppādo.
atha kho naṃ khippameva pajahati vinodeti byantīkaroti anabhāvaṃ gameti.
10.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머물 때
그가 이따금씩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기 때문에
족쇄와 관계된 기억과 사유가 있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생겨나게 되면
비록 마음챙김이 느리게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는 즉시에 그것을 버리고 제거하고 끝장내고 존재하지 않게 한다."
(☆ sati를 마음챙김에, sara를 기억에 해석하고 있다.)
ㅡ두번째 경ㅡ
♦ 8. kiṃsukopamasuttaṃ (SN 35.198) 낑수까 나무 비유 경(S35:245)
ㄱu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ṃ bhikkhuṃ etadavoca —
“kittāvatā nu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2. 그때 어떤 비구가 다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見]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314)
314) 일반적으로 '봄[見, dassana]'을 얻는 것은 예류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앙굿따라 니까야「멀리 여윔 경」(A3:92) §4에는 “비구들이여, 봄[見]이 생김과 더불어 성스러운 제자는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有身見]와, 의심과, 계율과 서계에 대한 집착[戒禁取]의 세 가지 족쇄들을 제거한다.”(A3:92 §4)라고 나타고 있다. 이 세 가지 족쇄를 제거한 자가 바로 예류자이다. 이처럼 봄[見]을 얻었기 때문에 경에서는 법의 눈(dhamma-cakkhu)을 얻었다고 표현하고 있으며(D3 §2.21, M56 §18, A3:92 §4 등)이것은 역시 예류자의 정형구가 된다. 그래서 주석서는 먼저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봄[見, dassana]'이란 첫 번째 도(paṭhama-magga 예류도)를 두고 한 말이다. 첫 번째 도는 오염원을 제거하는 역할(kilesa-pahāna-kicca)을 성취하여 첫 번째로 열반을 보기(passati) 때문에 봄이라 부르는 것이다.”(SA.iii.55)
“yato kho, āvuso, bhikkhu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ettāvatā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도반이여, 비구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samudayañca atthaṅgamañca)을 있는 그대로에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見]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
(☆ 일어남과 사라짐을 청정한 봄[見]에 설명하고 있다.)
♦ atha kho so bhikkhu asantuṭṭho tassa bhikkhussa pañhaveyyākaraṇena ,
yenaññataro bhikkhu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ṃ bhikkhuṃ etadavoca —
3. 그러자 그 비구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다른 비구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또 다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kittāvatā nu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yato kho, āvuso, bhikkhu pañcannaṃ upādānakkhandh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ettāvatā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의
일어남과 사라짐(samudayañca atthaṅgamañca)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
♦ atha kho so bhikkhu asantuṭṭho tassa bhikkhussa pañhaveyyākaraṇena,
yenaññataro bhikkhu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ṃ bhikkhuṃ etadavoca —
4. 그 비구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다른 비구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또 다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kittāvatā nu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yato kho, āvuso, bhikkhu catunnaṃ mahābhūt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ettāvatā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네 가지 근본물질의 "일어남과 사라짐(samudayañca atthaṅgamañca)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
♦ atha kho so bhikkhu asantuṭṭho tassa bhikkhussa pañhaveyyākaraṇena,
yenaññataro bhikkhu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ṃ bhikkhuṃ etadavoca —
5. 그 비구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다른 비구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또 다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kittāvatā nu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yato kho, āvuso, bhikkhu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ettāvatā,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그치기 마련인 법이다[集法卽滅法].'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
♦ atha kho so bhikkhu asantuṭṭho tassa bhikkhussa pañhaveyyākaraṇen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etadavoca —
6. 그러자 그 비구는 그의 질문에 대한 또 다른 비구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idhāhaṃ, bhante, yenaññataro bhikkhu tenupasaṅkamiṃ;
upasaṅkami tvā taṃ bhikkhuṃ etadavocaṃ —
kittāvatā nu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evaṃ vutte, bhante, so bhikkhu maṃ etadavoca —
‘yato kho, āvuso, bhikkhu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ettāvatā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atha khvāhaṃ, bhante, asantuṭṭho tassa bhikkhussa pañhaveyyākaraṇena,
yenaññataro bhikkhu tenupasaṅkamiṃ; upasaṅkamitvā taṃ bhikkhuṃ etadavocaṃ —
‘kittāvatā nu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evaṃ vutte, bhante, so bhikkhu maṃ etadavoca —
‘yato kho, āvuso, bhikkhu pañcannaṃ upādānakkhandhānaṃ ... pe ...
catunnaṃ mahābhūt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 pe ...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ettāvatā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atha khvāhaṃ, bhante, asantuṭṭho tassa bhikkhussa pañhaveyyākaraṇen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 .
kittāvatā nu kho, bhante,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다른 비구에게 다가갔습니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見]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 … 그러자 그 비구는
'도반이여, 비구가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그치기(nirodha) 마련인 법이다(集法卽滅法].'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다른 비구들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세존을 뵈러 왔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見]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
...중략..
‘nagaran’ti kho, bhikkhu, imassetaṃ cātumahābhūtikassa kāyassa adhivacanaṃ
mātāpettikasambhavassa odanakummāsūpacayassa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assa.
비구여, 도시라는 것은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을 두고 한 말이니
이 몸은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인 것이다.
...중략...
‘cha dvārā’ti kho, bhikkhu, channetaṃ ajjhattikānaṃ āyatanānaṃ adhivacanaṃ.
비구여, 여섯 개의 대문이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을 두고 한 말이다.
‘dovāriko’ti kho, bhikkhu, satiyā etaṃ adhivacanaṃ.
비구여, 문지기란 "마음챙김"을 두고 한 말이다.
‘sīghaṃ dūtayugan’ti kho, bhikkhu, samathavipassanānetaṃ adhivacanaṃ.
‘nagarassāmī’ti kho, bhikkhu, viññāṇassetaṃ adhivacanaṃ.
비구여, 재빠른 전령 두 명이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성주는 알음알이를 두고 한 말이다.
...중략..
‘yathāgatamaggo’ti kho, bhikkhu, ariyassetaṃ aṭṭhaṅgikassa maggassa adhivacanaṃ,
seyyathidaṃ — sammādiṭṭhiyā ... pe ... sammāsamādhissā”ti.
비구여, 들어온 길이란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정도]를 두고 한 말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ㅡㅡㅡ 세번째 경 ㅡㅡㅡ
<한적한 곳 경> S36:11
Atha kho pana, bhikkhu, mayā anupubbasaṅkhārānaṃ nirodho akkhāto.
5. "비구여, 나는 더 나아가서 형성된 것들[行]이 차례로 그침(nirodha)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Paṭhamaṃ jhānaṃ samāpannassa vācā niruddhā hoti.
초선을 증득한 자에게는 언어(시나리오)의 그침이 일어난다.
(Pubbe kho, āvuso visākha, vitakketvā vicāretvā pacchā vācaṃ bhindati,
tasmā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도반 위사카여, 먼저 생각을 일으키고 지속적으로 고찰(=시나리오)하고 나서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말의 작용입니다.])
Dutiyaṃ jhānaṃ samāpannassa vitakkavicārā niruddhā honti.
제2선을 증득한 자에게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의 그침이 일어난다.
Tatiyaṃ jhānaṃ samāpannassa pīti niruddhā hoti.
제3선을 증득한 자에게는 희열의 그침이 일어난다.
Catutthaṃ jhānaṃ samāpannassa assāsapassāsā niruddhā honti.
제4선을 증득한 자에게는 들숨날숨의 그침이 일어난다.
Ākāsānañcāyatanaṃ samāpannassa rūpasaññā niruddhā hoti.
공무변처를 증득한 자에게는 물질 인식의 그침이 일어난다.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āpannassa ākāsānañcāyatanasaññā niruddhā hoti
식무변처를 증득한 자에게는 공무변처의 인식의 그침이 일어난다.
Ākiñcaññāyatanaṃ samāpannassa viññāṇañcāyatanasaññā niruddhā hoti.
무소유처를 증득한 자에게는 식무변처 인식의 그침이 일어난다.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āpannassa ākiñcaññāyatanasaññā niruddhā hoti.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한 자에게는 무소유처 인식의 그침이 일어난다.
Saññāvedayitanirodhaṃ samāpannassa saññā ca vedanā ca niruddhā honti.
상수멸(想受滅)을 증득한 자에게는 인식과 느낌의 그침이 일어난다.
Khīṇāsavassa bhikkhuno rāgo niruddho hoti, doso niruddho hoti, moho niruddho hoti.
번뇌가 다한 비구에게는 탐욕[貪]의 그침, 성냄[瞋]의 그침, 어리석음[癡]의 그침 등이 일어난다."
ㅡS12:15 집성제와 <청정도론> 일어남 만이 아니다ㅡ
청정도론(위숫디막가VISUDDHIMAGGA) 붓다고사 스님 지음 대림 스님 옮김
3권 중 제3권 제17장 17.
Paññābhūminiddeso통찰지의 토양[緣起](1~314)
Paṭiccasamuppādakathā Ⅰ연기(緣起)란 무엇인가
570. Idāni ‘‘khandhāyatanadhātuindriyasaccapaṭiccasamuppādādibhedā dhammā bhūmī’’ti
evaṃ vuttesu imissā paññāya bhūmibhūtesu dhammesu yasmā paṭiccasamuppādoceva,
ādisaddena saṅgahitā6 paṭiccasamuppannā dhammā ca avasesā honti,
tasmā tesaṃ vaṇṇanākkamo anuppatto.
1. 무더기(khandha, 蘊), 장소(āyatana, 處), 요소(dhātu, 界), 기능(indriya, 根), 진리(sacca, 諦),
연기(paṭiccasamuppāda, 緣起) 등으로 분류 되는 법들이 토양(bhūmi, 地)이라고 설했다.
이 통찰지의 토대가 되는 법들 가운데서 ●연기(緣起)와 '등(ādi)'이라는 단어로 포함되는●연기된(緣而生) 법들이 아직 [설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이제 이들을 설명할 차례가 되었다.
Tattha avijjādayo tāva dhammā paṭiccasamuppādoti veditabbā. Vuttañhetaṃ bhagavatā –
2. 이 가운데서 ●무명 등의 법들을 연기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Katamo ca, bhikkhave, paṭiccasamuppādo?
"비구들이여, ●무엇이 연기인가?
Avijjāpaccayā, bhikkhave,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Ayaṃ vuccati, bhikkhave, paṭiccasamuppādo’’ti (saṃ. ni. 2.1).
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상카라(行)들이 있다. 상카라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名色)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六入)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觸)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갈래를 조건으로 취착(取)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老死)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있다.
이와 같이 괴로움 무더기의 생겨남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고.집)이것을 일러 ●연기라 한다."
Jarāmaraṇādayo pana paṭiccasamuppannā dhammāti veditabbā. Vuttañhetaṃ bhagavatā –
3. 늙음·죽음 등은 ●연기된 법들(paṭiccasamuppnnā dhammā, 緣而生法)이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Katame ca, bhikkhave, paṭiccasamuppannā dhammā?
"비구들이여, 무엇이 연기된 법들인가?
Jarāmaraṇaṃ, bhikkhave, aniccaṃ saṅkhataṃ paṭiccasamuppannaṃ
khayadhammaṃ vayadhammaṃ virāgadhammaṃ nirodhadhammaṃ.
비구들이여, 늙음·죽음은 무상한 것이고, 형성된 것이고, 연기된 것이고,
파괴되는 법이고, 무너지는 법이고, 빛바래는 법이고, 그치는 법이다.
Jāti, bhikkhave…pe… bhavo… upādānaṃ… taṇhā… vedanā… phasso… saḷāyatanaṃ…
nāmarūpaṃ… viññāṇaṃ… saṅkhārā…
avijjā, bhikkhave,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Ime vuccanti, bhikkhave, paṭiccasamuppannā dhammā’’ti (saṃ. ni. 2.20).
비구들이여, 태어남은 … 존재는 … 취착은 … 갈애는 … 느낌은 … 감각접촉은 … 여섯 감각장소는 …
정신·물질은 … 알음알이는 … 상카라들은 …무명은 무상한 것이고, 형성된 것이고, 연기된 것이고,
파괴되는 법이고, 무너지는 법이고, 빛바래는 법이고, 그치는 법이다."
571. Ayaṃ panettha saṅkhepo.
4. 여기서 이것이 그 요점이다.
Paṭiccasamuppādoti paccayadhammā veditabbā.
Paṭiccasamuppannā dhammāti tehi tehi paccayehi nibbattadhammā.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란 조건짓는 법들(paccaya-dhammā)이고
●연기된 법(paṭicca-samuppanna-dhamma, 緣而生法)들이란 이 조건따라 생긴(nibbatta) 법들이다.'
Kathamidaṃ jānitabbanti ce? Bhagavato vacanena.
Bhagavatā hi paṭiccasamuppādapaṭiccasamuppannadhammadesanāsutte –
5.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라고 만약 한다면 - 세존의 말씀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는 연기와 연기된 법들에 대한 가르침의 경에서
연기를 가르치시면서 진실 등의 동의어로 오직 조건짓는 법들을 연기라 하셨기 때문이다.
‘‘Katamo ca, bhikkhave, paṭiccasamuppādo?
Jātipaccayā, bhikkhave, jarāmaraṇaṃ, 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an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ṭhitāva sā dhātu dhammaṭṭhitatā dhammaniyāmatā idappaccayatā.
Taṃ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ā abhisametvā ācikkhati deseti pañña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passathāti cāha. Jātipaccayā, bhikkhave, jarāmaraṇaṃ.
"비구들이여, 무엇이 연기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존재하는 요소(界)이며, 법의 확립된 성질이고, 법의 결정된 성질이며, 이것에게 조건됨이다.
여래는 이것을 투철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다(abhisameti).
투철하게 깨닫고 관통한 뒤 이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설명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 이것을 보라'고 말한다.
//★★
paṭiccasamuppādo?
Jātipaccayā, bhikkhave, jarāmaraṇaṃ,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
즉, 태어남의 일어남.집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의 그침.멸(이것이 일어나니 저것이 일어난다)이 이유로 함께 생겨나는[paṭiccasamuppādo]것이다. 즉, '집'이 이것이 있으니 '멸' 저것이 있다가 paṭiccasam. //
Bhavapaccayā, bhikkhave, jāti…pe…
avijjāpaccayā, bhikkhave, saṅkhārā uppādā vā tathāgatānaṃ…pe… uttānīkaroti passathāti cāha.
Avijjāpaccayā, bhikkhave, saṅkhārā.
Iti kho, bhikkhave, yā tatra tathatā avitathatā anaññathatā idappaccayatā.
Ayaṃ vuccati, bhikkhave, paṭiccasamuppādo’’ti (saṃ. ni. 2.20).
비구들이여,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역순)...
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상카라들이 있다.
이것은 여래께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존재하는 요소(界)이며,
법의 확립된 성질이고, 법의 결정된 성질이며, 이것에게 조건되는 성질이다.
여래는 이것을 투철하게 깨달있고 관통하였다.
투철하게 깨닫고 관통하시고는 이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설명하고,
'무명을 조건으로 상카라들이 있다. 이것을 보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기서 진실한 성질, 거짓이 아닌 성질,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닌 성질, 이것에게 조건되는 성질, 이것을 일러 연기라 한다."
572. Evaṃ paṭiccasamuppādaṃ desentena tathatādīhi
vevacanehi paccayadhammāva paṭiccasamuppādoti vuttā.
Tasmā jarāmaraṇādīnaṃ dhammānaṃ paccayalakkhaṇo paṭiccasamuppādo,
dukkhānubandhanaraso, kummaggapaccupaṭṭhānoti veditabbo.
그러므로 연기는 늙음·죽음 등의 법들에게 조건이 되는 것이 그 특징이다.
●괴로움을 뒤따르는 것이 역할이며
●나쁜 길로서 나타난다고 알아야 한다.
So panāyaṃ tehi tehi paccayehi anūnādhikeheva tassa tassa dhammassa sambhavato tathatāti,
sāmaggiṃ upagatesu paccayesu muhuttampi tato nibbattadhammānaṃ asambhavābhāvato avitathatāti,
aññadhammapaccayehi aññadhammānuppattito anaññathatāti,
yathāvuttānaṃ etesaṃ jarāmaraṇādīnaṃ paccayato vā paccayasamūhato vā idappaccayatāti vutto.
6.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각각의 ●조건들에 따라 각각의 법들이 생기기 때문에
이것을 진실(tathatā, 如如)이라고 했다.
조건들이 모일 때 단 한 순간이라도 그[조건]으로부터 법들이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이 아니다(avitathatā)라고 했다.
다른 조건으로부터 이 법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anaññathatā)라고 했다.
앞서 말한 이 늙음·죽음의 조건이기 때문에
혹은 ●조건의 모임이기 때문에 이것에게 조건됨(idappaccayatā)이라 했다.
573. Tatrāyaṃ vacanattho, imesaṃ paccayā idappaccayā.
Idappaccayā eva idappaccayatā. Idappaccayānaṃ vā samūho idappaccayatā.
Lakkhaṇaṃ panettha saddasatthato pariyesitabbaṃ.
7. 이제 이것이 문법적인 뜻이다. ●'이다빳짜야(idappaccaya)는 '이들의 조건'이란 뜻이다.
이다빳짜야가 바로 이다빳짜야따이다.
혹은 이다빳짜야들의 모임이 이다빳짜야따(이것에게 조건되는 성질)이다.
여기서 이 규칙은 문법적으로 찾아야 한다.
574. Keci pana paṭicca sammā ca titthiyaparikappitapakatipurisādikāraṇanirapekkho uppādo
paṭiccasamuppādoti evaṃ uppādamattaṃ paṭiccasamuppādoti vadanti, taṃ na yujjati.
Kasmā? Suttābhāvato, suttavirodhato, gambhīranayāsambhavato, saddabhedato ca.
8. 어떤 이들은 외도들이 가정하는 자연(pakati)과 진인(眞人, purisa) 등의 원인을 무시함으로써
●조건을 의지하여(paṭicca) 바르게(sammā) 일어나는 것(uppāda)이
바로 연기(빠띳짜사뭅빠다)라고 하면서
이와 같이 오직 일어나는 것(paṭicca-samuppāda)만을 연기라고 한다.
●그것은 옳지 않다. 무슨 이유인가?
① 그런 경전이 없기 때문이고 ② 경전에 어긋나기 때문이고
③ 심오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고 ④ 문법에 맞기 않기 때문이다.
‘‘Uppādamattaṃ paṭiccasamuppādo’’ti hi suttaṃ natthi.
Taṃ ‘‘paṭiccasamuppādo’’ti ca vadantassa padesavihārasuttavirodho āpajjati.
9. ① 단지 일어남만을 연기라고 한 경은 없다.
② [단지 일어남만을] 연기라고 주장하는 사람은「빠데사 위하라경」 (Padesavihāra Sutta, 部分住經)과 반대가 되고 만다.
Kathaṃ? Bhagavato hi ‘‘atha kho bhagavā rattiyā paṭhamaṃ
yāmaṃ paṭiccasamuppādaṃ anulomapaṭilomaṃ manasākāsī’’ti (mahāva. 1) ādivacanato
paṭiccasamuppādamanasikāro paṭhamābhisambuddhavihāro, padesavihāro ca tassekadesavihāro.
Yathāha ‘‘yena svāhaṃ, bhikkhave, vihārena paṭhamābhisambuddho viharāmi,
tassa padesena vihāsi’’nti (saṃ. ni. 5.11).
Tatra ca paccayākāradassanena vihāsi, na uppādamattadassanenāti.
Yathāha ‘‘so evaṃ pajānāmi micchādiṭṭhipaccayāpi vedayitaṃ sammādiṭṭhipaccayāpi vedayitaṃ
micchāsaṅkappapaccayāpi vedayita’’nti (saṃ. ni. 5.11) sabbaṃ vitthāretabbaṃ.
Evaṃ uppādamattaṃ ‘‘paṭiccasamuppādo’’ti vadantassa padesavihārasuttavirodho āpajjati.
어떻게? "그때 세존께서는 초경에 연기를 순·역순으로 마음에 잡도리하셨다."라는 등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처음 정각을 이루신 세존께서는 연기를 마음에 잡도리하시면서 머무셨기 때문이다.
●빠데사 위하라(padesa-vihāra)란 '한 부분에 머묾'이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내가 최초로 정각을 이루었을 때 머물렀던 그 한 부분에 머물렀다."
그때 그분께서는 "조건의 구성을 보면서 머무셨다.
●단순히 일어나는 것만을 보면서 머물지 않으셨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그런 나는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긴 느낌을 잘 알았고,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생긴 느낌, 삿된 사유를 조건으로 생긴 느낌을 잘 알았고 …"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단지 "●일어남만을 연기라고 주장하는 자"는 「빠데사위하라 경」과 어긋나고 만다.
ㅡ사성제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의 견해ㅡ
안으로 육근을 일어남과 사라짐에 법수관하는 것은 "평정"이라는 선법이 일어나는 것이고,
밖으로 육경을 상에 취하면 오욕락이 되고, 불선법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생겨남과 그침[uppannā, nirujjhanti]'을 연기(paticcasamuppannā)의 이치에 설명하고 있고,
S56:11에서의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그치기 마련인 법이다[集法卽滅法,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에서 '일어남 samudaya와 그침 nirodha' 등을 법의 안목에 설명하고 있음을 유의한다.!
이들 선법과 불선법은 각각 '청정'과 무명 갈애의 '오염원' 들에 대한 설명이다.
''오염원'이라는 무명을 12연기에서의 역활에 살펴보세요.
오염된
무명을 조건으로 발생하는 형성들에서, '그침(멸)'의 있는 그대로의 '중'에 의해서(majjhe는 위치 처격) 함께 일어남(집)이 원인(hetu)하게 되고 따라서 찰나 법-멸-집을 마음챙김에 확립하고,
이런 마음챙김 확립과 순관의 법수관에 의해서 12연기를 집성제에 지견하게 된다.
다시말하면, 12연기 각지들의 연기된 법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의 그침[멸]을 관찰하고 그침[멸]의
'중'에 의해서 함께 발생하는[연기] 법을 확립하고 찰나 일어나는 법에 설명하게 되는 등 무명을 조건으로 발생하는 순차의 연기는 집성제에 이르게 된다.
즉, 이들 각지들의 찰나 법과 연기된 법[집성제]은 <가전연경 S12:15>에서 말씀한 "'중(majjha)'에 의해서 법을 설하다"에 충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성제에 대한 이러한 앎은 "고의 멸[멸성제]"에 대한 새로운 앎을 정견하게 된다.
즉, '괴로움(고)'의 고성제 법과 '괴로움의 일어남'의 집성제 등 두 변이 동일 인식체계 범주에 묶인 가운데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앎은 "괴로움의 그침[멸성제]"이다.
멸성제는 앞에 보인 고성제와 집성제의 중간에 위치하는 등 있는 그대로의 멸성제 중간에 의해서 함께 집성제의 원인이 발생한다.
이때의 멸성제 또한 '중'에 의해서 드러난 '법'이므로 사성제 또한 "'중'에 의해서 법을 설하다" 경문을 충족하므로 법을 확립하게 된다.
따라서 12연기에서,
무명의 그침[명]을 조건으로 형성들 그침의 발생을 고찰하게 되고, 형성들의 그침을 조건으로 식의 그침이 발생하는 등의 순관의 연기는 멸성제에 대한 앎을 갖게 하고, 도성제에 대한 팔정도 실천 즉, 사성제의 완성을 갖게 한다.
(근데, 무명의 그침은 번뇌의 소멸이고 아라한도 이고, 아라한은 무명의 그침을 멸성제에 먼저 실천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무명'과 '명'을 조건으로부터 두가지 종류의 12연기들이 일어나고 각각을 집성제의 '사도'와 멸성제의 '정도'에 정수관하게 되고,
이때 멸성제의 정도를 '중도'에 '정견'하게 되었다.
즉, 멸성제에 이르는 길[도성제]에 대한 실천이 필요함을 고찰하게 되었다.
이처럼 고성제와 집성제의 두 변의 결박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의 그침[멸성제]을 관찰하는 등 '중에 의해서' 사성제를 법 체계에 설명하게 되었다.
즉, '중에 의해서' 멸성제에 대한 앎에 가지게 되므로 멸성제에 이르는 길[도성제]의 실천을 정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있는 그대를 관찰하는 마음챙김 정념, 불선법의 오염을 제거한 정정, 정사유, 정견 등의 팔정도를 통해서 도성제가 실천하는 것이다.
이들 사정제가 일체를 벗어나지 않는 영역(gocara) 즉, 선정에서 지견하게 되는 거랍니다. 그래서 지관, 정혜, 사마타 위빠사나가 한 맛 이라고 말한다.
선재선재선재_((/\))_
첫댓글 우리가 ......... 빠알리 원문을 <원문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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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khadhammānaṃ라는 표현을 보아야 하기 때문 ........... 입니다.
dukkha - dhammānaṃ(苦法들을) 이라는 표현인데요..............
전체적으로는 <dukkhadhamm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으로써 ..........
.<..... 苦法들의 일어남과 사라짐(samudayañca atthaṅgamañ,[attha=disappear])을 있는 그대로(yathābhūta) 꿰뚫어 알면...>이라는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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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번역해 보면 ........ <苦法들의 '集과 滅'을 반야로 꿰뚫어 알면...........>이라는 번역.
@아위자
요점은 .............
'苦'를 <法>으로 보고, (조건에 따라서)集하거나 滅라는 것............으로 보라는 말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苦'를 '있음(有)과 없음(無)'으로 <극단적으로> 대하지 말고 ...........
'고'를 '集하거나 滅하는' 대상으로 [=中으로] ........ 대하라는 말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이론적'으로는 당연한 것 처럼 보여도, '法眼'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여도 .......... 그러한 法眼을 일상화하고 생활화 하는 것은 ............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아위자
일상생활 속에서 ............ 는 ..........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쉽다고 이야기하는 '놈들'이 바로 <위선자들>입니다. 간악한 '위선자들'!
전체 맥락은 ......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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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에게 .............이익이 안 되는 '不善'의 뿌리.........는 <탐진치>.
중생들에게 .............이익이 안 되는 '不善法'의 뿌리......는 <무명>.
그러하기 때문에 ........... 그 둘을 합하여...........
중생들에게 .............이익이 안 되는 '不善'[='계'에 상응]과 '不善法'[='혜'에 상응]의 뿌리.........는 <탐, 진, 無明>.
'혜'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定(=삼매)>이라는 것인데요............
그것이 보통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三昧'가 아니고 ....... <일상생활 속에서의 '삼매'>입니다.
항상............ 언제나 ......... 있는 그대로의 상태.
@아위자 '팔정도'[=중도]는 ............ <法(dhamma)의'흐름'>입니다.
'그 흐름에 든 자'가 <입류>인데요...........
일단 먼저 <法(dhamma)에 대한 '정견'>이 필요하기에.......... <法(dhamma)에 대한 '올바른 작의'>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
....... 그러할 때 ......... '苦法들(dukkha - dhammā)'..............은 <무엇들 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위자
일체(法)들!
@아위자
<무상, 苦, 무아>인 것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 그런데 여기에서 <방편>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사성제'라는 <방편>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성제'라는 有爲(法)을 <방편[=뗏목]>으로 삼아서.......... 일단 먼저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위자
그러한 것이 '정견[=내용이 '사성제']'이고 ........... '慧蘊'에 속하는 것임.
@아위자
그러한 결과로[=그러한 조건으로] ......... <明>이 생겨나서 .......... <明과 해탈>을 얻는다..........라는 것이 '3전12행'이라는 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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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전체 맥락'은 ........ 달달달 <외워 두셔야 > 함.
외워 두더라도 '실천'은 ........... 대략 난감.
말하자면 ......... '法(dhamma)의 흐름'에 들어가기에는 ......... 대략난감 ..........이지만.........
처음부터 <알지도 못하고, 외워 두지도 않는다>면 ......... 더 드릴 말씀이나 ....... 할 말은 없음.
@아위자 감사합니다 선생님~ ()
일상의 삼매와 관련하여 <계戒>와 관련하여 언급해 주실수 있으실까요?
일체와 일체법의 관계에서 육근수호이 계와 삼매가 일상의 삼매를 이해하기 위한 밑거름 같아 보이는데요.
제 실력으로는 너무나 빈틈투성이여서 청해봅니다. ()()()
@아위자 님 본문에 추가하였습니다.
//'사라짐과 소멸'은 생겨나는 어떤 것들(마음부수)이 인지체계에서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 즉, 동일한 인지 범주에서는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눈으로 형상을 보고 있지만 고개를 돌리면 그 형상은 사라진다. 즉, 동일한 인지 체계는 소멸하였고 새로이 시각적 인지체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라진다 혹은 없어진다 혹은 소멸한다.'의 이것이 한자 '滅'의 진정한 의미이다...
반면에 그침 nirodho은 생겨난 그 어떤 것들이 더이상 머물지 않고 수명이 다하여 기능을 잃게 되지만, 동일한 범주의 인지체계에서 조건에 따라 그 기능이 다시 일어나게 되고 또 그치게 된다는 의미이다. 12연기에서 각각의 지분들이 다음 지분에 연결될 때도 현재 지분이 사라짐(소멸)이 아니고 현재 그 기능이 그치게 되므로 다음 지분의 일어남에 조건이 된다고 본것이다.
마치 눈에 여러 형상들이 오가며 반복적으로 의식이 일어나고 그치듯이 혹은 호흡에서 숨결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그치듯이 그침은 반복적인 기능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S56:11에서 "일어나는 (불선)법은 그 무엇이든 반드시 그친(소멸이 아님!)다."가 적절한 해석이 된다//
일어남-사라짐....을 읽을 수 있는 표현들에서
1. 우리말 출렁거림---으로 이해될 만한 [일어남-사라짐]
예를 들어 자동차 깜빡이 처럼. 형광등 불의 깜빡임(우리 눈에는 인지되지 않는 과학적 설명)
2. 출현하는(일어나는) 어떤 것이 이제, 이후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완전히] 소멸함.
이러한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자동차의 좌우측 깜빡이가 점멸(點滅)하는 것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고장난 것이거나 완전히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2. 이것이 완전히 [남김없이] 소멸한 것은 폐기할 부품입니다.
예류자의 특징은 [봄]입니다.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경문이 S25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법수들이 이른바 66법 입니다.
[66법: 6내-6외 ~ 6계-5온(59법)]
이러한 법들이 [aniccaṃ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무상하고(일어나고 사라지고 -점멸/출렁거림/S波) 등등을
ime dhamme evaṃ pajānāti evaṃ passati
이런 59가지 법수들을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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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류자라고 합니다.
이런 66법(욕계에 속하는 법들을)
알고 보시는 분들이 예류자이십니다.
즉 욕계를 아직 탈출하지 못하지만
자신에게 속하는 법들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성자의 반열에 드신 분들이지만
아직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신 분들입니다.
반면에 같은 66법들(욕계에 속하는 법들)에 대한
욕탐을 완전히 제거하신 분(S27 참조)들을 일러
불환자라고 합니다.
이 분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지니고 있었던 욕계에 속하는 법들(~ 5온).
이 5온이 대표적인 욕계에 속하는 법들입니다.
이것들의 일어남과 사라짐(점멸)을 여실하게 알고 보신 예류자를 넘어서
이러한 법들에 대한 욕탐을 완전히 제거하신 분들이 불환자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색계에 어울리는 5온이나 무색에 걸맞은 4온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러게 욕계에 걸맞은 (66법) 5온을 완전히 제거하신 분들은 불환자이시지만
이렇게 제거하는 것에 이어서 색계나 무색계에 걸맞은 5온(혹은 4온) 마저 완전히 제거하면
그것을 [남김없이]라고 하고 그것이 완전한 滅입니다.
사람짐의 두 가지 용례를 경문 전체에서 꼼꼼히 찾아 보실 것을 권합니다.
66법 : 이후의 59가지 법수들은 모두 법입니다.
법이라는 표현을 너무 넓게 혹은 좁게 사용하시거나 이해하시면 산으로 올라 갑니다.
6근 - 안이비설신의
6경- 색성향미촉법
6식- 안이비설신의+식
6촉-...................... +촉
6수-...................... +수
6상- 색성향미촉법+상
6사-.......................+사
6애-.......................+애
6계- 지수화풍+공+식
5온- 색,수, 상, 행, 식
별도 60법은
6계 5온 대신에
6심- 색성향미촉법+심
6사- ..................... +사
이상과 같이
6근 혹은 6경의 이름이 붙지 않는 (6법성이 무너진)
66계열의 법들은 이와 같이 6계와 5온입니다.
이상의 법수들 -59법 혹 60법을- 66법이라 봄봄은 호칭합니다.
이렇게 세트로 나타나는 법들은 욕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법)이라고 이해됩니다.
대념처경 참조.
'苦'를 <法>으로 보고, (조건에 따라서)集하거나 滅라는 것............으로 보라는 말씀. //
조건에 따라서!
조건에 따라서!
조건에 따라서!
강조 강조 강조
이것이 빠지면 법의 집멸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일이 아닙니다. 몸소 실천했다는 분들은 지적하지 않고 실천은 아나꽁꽁이라는 아위자님만 지적을 하니….. 이것은 아이러니.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라짐은 단순히 일어난 현상이 지속되지 않고 사라진다는 의미로, 그침은 원인이 제거되어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접근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S56:11의 해석은 "일어나는 법은 무엇이든 그 원인을 제거하여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가 적절한 해석이 됩니다. 여기서 원인은 탐 진 치 부탐 부진 부치가 되겠죠.
@lmanu ' lmanu'님의 정확한 見.
<'그침'은 원인이 제거되어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
ok! ok! ok!
............ 원인은 (항상) 탐 진 치 부탐 부진 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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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탐진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
'탐진치'에서.......... <치(moha)>가 '핵심'입니다. <치(moha)> 때문에 <탐>과 <진>이 생겨나는 것이거든요.......
그러하기 때문에 ........ <탐>은 '반야'[=치(moha)의 반대말]로써만 제거 된다고 ......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lmanu
' lmanu'님께서는 .......... 아마도 ......... '불교학자' 같습니다.
제 짐작입니다.
@lmanu
.......... 연구를 ....... 해 보시면 ...........
바로 이 <탐진치의 구조> 때문에 '12연기'가 설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 <식과 명색의 호연연기>에서 '탐진치'가 그러한 호연연기를 추진시키는 원동력임을 알아 채시게 되면 ........... 곧바로 ........ '혜해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고맙습니다
중지 정지 멈춤 등이 滅이라고 보다는 止에 가깝다. 사라짐 없어짐이 滅이다. 멸관이라고 하지 않고 지관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