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4월23일
게으름이 찾아오면
염색할 때가 한참 지나고 있다. 흰머리가 가르마를 타고 하얗게 자리 잡았다. 어떤 이는 이마 쪽으로 흰머리가 많고 어떤 이는 얼굴 옆쪽으로 하얗게 머리카락이 세었다. 거울 속에 여자가 오늘 유난히 나이가 들어 보인다. 남편이 염색약을 사 와서 해주는데 요즘 신경 쓸 일이 생겨서 염색할 때가 한참 지나고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을 해줄 때 나의 머리 상태를 보고 ‘염색할 때가 지났네, 요즘 약국에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라며 미안해했다.
가벼운 교통사고지만 뒷수습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았다. 보험 처리한다고 해도 자동차가 수리받고 있으니 렌트하고 생각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감정싸움으로 갈 수도 있었다, 어제 사고 처리가 잘 마무리되어서 오늘 염색해 주겠다고 출근하면서 말했지만, 신경 쓸 일이 많은 남편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았다. 몇 달 미용실을 가지 않았더니 머리도 많이 길은 데다가 흰머리까지 많이 보이니까 괜히 짜증도 나고 심란했다. 미용실에 가려고 달력을 보니 미용실이 쉬는 화요일이다.
오늘은 무조건 약속을 잡지 않기로 했다, 내 기분이 우울하면 상대에게 전해지고 그러면 귀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게 된다. 참자! 모자 쓰고 산책하면 되고 집에서 책 읽고 글 쓰고 신나는 음악 틀어놓고 춤추면서 기분 좋게 보내기로 했다.
미용실은 화요일에 쉬지만, 푸드 트럭은 화요일에 온다. 세상사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날이다. 세탁기도 쉬게 하고 청소기도 쉰다. 대걸레로 거실과 방을 닦아내는 것으로 청소를 마쳤다. 황사가 심해서 모자에 마스크까지 완전무장하고 산책하러 나갔다. 사람들이 다시 마스크를 쓰고 걷는다. 코로나가 아니라 황사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변해가는 풍경이 가라앉은 나의 기분을 풀어준다. 눈이 맑아지고 마음이 파릇해진다. 황사가 심해서 밖에 나오는 것을 잠시 주저했는데 ‘나오길 잘했다.’라고 혼잣말을 해가면서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걸었다,
푸드 트럭에서 사 온 음식으로 저녁을 준비했다. 떡볶이와 어묵 순대를 사 왔다. 아들이 좋아하는 닭꼬치까지, 떡볶이를 사 와서 대파와 납작한 어묵과 양파를 넣고 다시 만들었다. 떡볶이에 들어가는 어묵을 푸드 트럭에서는 둥근 어묵을 넣는다. 우리 식구는 납작한 어묵을 넣고 잠시 끓이다가 바로 불을 꺼야 한다. 국을 만들 때도 어묵을 오래 끓이면 물렁물렁해서 싫어한다. 손이 두 번 가도 식구들이 좋아하는 식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나의 식성도 어묵은 바로 넣다 건저 낸다. 웃기는 말로 넣다 ‘넣고 바로 빼기다.’ ‘오늘 메뉴는 푸드 트럭 뷔페입니다.’ 퇴근 무렵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OK, 순대는 잡것을 많이,’식성이 까다로운 건지 입맛이 고급인지 대충 먹는 것이 없다, 마냥 게으른 날 한 끼를 편안히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