お駒恋姿-東海林太郞 (おこまこいすがた) 망아지의 사랑모습 作詞 藤田まさと 作曲 大村能章
一 七つ八つから 容貌よし 十九、二十で 帯とけで 解けて結んだ 恋衣 お駒才三の はずかしさ
二 初の島田に 謎かけて いつか因果な 罪の淵 うらみまするぞ 母様と 涙気になる 黄八丈
三 恋と義理との 諸手綱 ひかれて渡る 涙橋 風にすねたか 黄八丈 袖にくずれる 薄化粧
織田信長의 最後 本能寺の変
要 約 1582年6月2日. 領土를 둘러싼 大名(だいみょう)들의 싸움이 漸入佳境(점점 좋은 狀態로 들어감)을 이루던 戰國時代. 日本의 13代 英雄 中 한名인 織田信長는 이런 世上을 糾合하기 爲해 統一事業을 始作했고, 그 大業을 目前에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가장 信望했던 重臣인 明智光秀(あけちみつひで)의 反亂에 依해 織田信長는 불타는 本能寺에서 生을 마감합니다
事件前의 情勢 1582年, 織田信長는 京都를 中心으로 日本의 主要地域을 손에 넣고 있었습니다. 또 難敵中 한名인 武田勝賴(たけだかつより)를 擊退하게 되는데, 이로 써 信長는 中國의 毛利(もうり) 關東의 北条(ほうじょう) 北陸의 上杉(うえすぎ)等 一族만이 除去해야 할 敵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毛利는 元就(もとなり)의 死亡으로 現 勢力의 維持마저 힘겨운 狀況이었고, 北条도 氏康(うじやす)의 死亡 後 生前에 才能이 없음을 걱정하던 氏政(うじまさ)가 代를 잇게 됩니다. 또한 上杉도 謙信(けんしん)이 죽자 養子인 景勝(かげかつ)가 代를 이어 예전의 强力함을 잃어버립니다.
이에 安土城(あづちじょう)를 本據地로 明智光秀, 柴田勝家(しばたかついえ)等을 指揮하며 統一事業을 해오던 信長는 모든 일이 順調롭게 進行되어 금방이라도 天下가 품 안으로 들어갈 듯이 情勢가 흘러갔습니다.
事件의 勃發 1582年5月15日부터 사흘 間 明智光秀(あけちみつひで)는 織田信長의 命으로武田勝賴(たけだかつより)와의 오랜 戰鬪에서 功績을 올라고 歸還한 德川家康의 接待 準備를 맡게 되지만 準備 途中 失手를 凡하여 解任됩니다.
그리고 15日, 豊臣秀吉가 織田信長에게 援軍을 要請하자 出戰命令을 받은 光秀는 居處인 坂本城(さかもとじょう)으로 移動하여 準備를 합니다.
한편, 오다 織田信長는 5月29日에 豊臣秀吉 援軍으로 出陣하기 爲해 小數의人員을 데리고 安土城을 出發, 宿所인 京都의 本能寺로 들어가 軍隊가 모이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의 長男 信忠(のぶただ)는 妙覚寺(みょうかくじ)로 들어가 待機합니다.
6月1日 저녁, 光秀는 1萬 以上의 兵士를 이끌고 丹波(たんば. 지금의 京都 中部와 兵庫県 中東部 地域)의 亀山城(かめやまじょう)을 出發하여 京都로 向합니다.
그리고 이틀 後인 6月3日 새벽, 桂川(かつらがわ)를 건넌 時点에서 ‘敵は本能寺にあり(敵은 本能寺에 있다)’를 부르짖으며 織田信長의 攻擊을 全軍에 밝힙니다
. 6月2日 새벽녘, 光秀軍은 本能寺를 完全히 包圍합니다. 軍隊가 몰려온 것을 알아챈 織田信長는 애당초 家臣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며 狀況을 알아 보게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本能寺가 光秀의 軍隊에 完全히 包圍됐다는 報告.
그리하여 織田信長는 ‘是非に及ばす(도리가 없다)’라고 내뱉은 후 활과 창으로 對抗하나 殺到하는 敵軍의 창에 負傷을 입게 되고, 衆寡不敵을 實感한 信長는 불을 지르고 割腹합니다 戰國統一의 大望이 火焰에 휩싸인 本能寺와 함께 쓰러져가는 瞬間 이였습니다.
한편 光秀의 反亂을 報告 받은 信忠는 아버지를 救하기 爲해 妙覚寺를 떠나 京都의 二条城으로 옮겨 戰鬪를 벌이지만 結局 劣勢를 克服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自決하게 됩니다.
事件 以後의 情勢 反亂에 成功한 光秀는 먼저 安土城으로 들어가 朝廷의 大臣들을 相對로 覇權을 쥐기 爲한 工作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豊臣秀吉가 京都로 進擊하고 있다는 報告를 받아 急히 軍事를 이끌고 京都 西部의 山崎(やまざき)로 出陣합니다.
한便, 本能寺가 불길에 휩싸였을 當時 豊臣秀吉는 高松城(たかまつじょう)을 包圍한 채 織田信長의 援軍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織田信長가 死亡했다는 報告. 이 卽時 豊臣秀吉는 對峙하고 있던 森측과 和平을 맺고 事件 勃發 사흘 後인 6日에 京都로 向합니다. 그리고 京都로 向하는 途中 여러 武將을 我軍으로 만들며 事件 發生 열흘 後 인 13日에 山崎에 到着. 이미 背水의 陣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光秀과 戰鬪를 벌여 壞滅시킵니다
이 戰鬪에서 敗한 光秀는 逃走했지만 같은 날 밤 小栗栖에서 住民들에게 잡혀 죽임을 當합니다
. 本能寺의 亂은 織田信長가 그토록 渴望하던 天下統一의 꿈을 一瞬間에 물거품으로 만들며 織田信長 家門의 一族과 그를 따르던 重臣 大名들을 混亂과 動搖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어 覇權을 차지한 豊臣秀吉의 손에 依해 動搖는 鎭靜되고 머지않아 織田信長의 꿈이 었던 戰國統一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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