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대학교로 편입한 지도 벌써 반년 가까이 흘렀다.
돌이켜 보면 정말 밑바닥에서 합격을 했다. 합격을 막상 하고나니 그게 더 기쁘다.
나는 중학교때 지금은 폐지된 소위 `연합고사` 라는 시험에서 떨어져 서울소재 모 고등학교 2부
를 다니게 됐다. 거기서도 꼴통짓만 하고 다녀서 정학만 2번을 먹고 출석일수 3일정도던가...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거림^^) 하이간에 그거 오바되서 졸업일수 채워서 간신히 졸업할 수 있게 됐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기억하는 우리 어머니는 매일 우는 모습과 어두운 모습이었고, 아버지는
화를 내거나 항상 못마땅하다는 표정 뿐이다. 아무튼 고등학교 졸업하고 짱깨배달 하면서 방황
하다가 1년동안 직업학교를 다녀서 (기능사좀 따고) 수도권에 있는 전문대에 정말 운좋게 특별전형으로 들어가게 됐다.
전문대라는 곳에 들어가긴 했지만...난 대학을 원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일 놀다가 2학기때는 학교를 거의 않나가고, 집을나와 나이트 웨이터, 배달 등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군대를 가게됐다. 그때 나이가 21였다. (학교를 1년 일찍 입학했음)
군대에서 고참 하나를 잘 만나서 나는 대학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뭐랄까....지금도 그렇지만 대학 간다는 생각이 아니라 뭔가를 토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난 군에서 제대를 하고 무려 11달을 미친듯이 놀아버리고 말았다. 그당시 나이 23살...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밤만되면 다달이 바뀌는 여자친구와 (백화점 다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술, 담배..겜방..당구장..뭐 그런것에 빠져 살았다. 미래도, 꿈도 희망도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강요로 복학을 하게 됐다. 처음엔 의욕도 없었다. 그러다가 3월에 그 고참을 다시 만나게 됐고 나는 된통 혼이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람은 사람을 끄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지만....그날로 여자 친구들과 연락을 끊어버리고 편입 결심을 하게됀다.
아무튼 각설하고 그 고참이 말해준 편입 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기는 했는데....조교녀석이 "마 넌 올해 졸업못해" 이러는 것이 아닌가. 무슨 개뼉다구같은 소리냐고 했더니 1학년 2학기때 학고라 이빠이 학점 채워봐야 79학점이라 80을 못 채운다는 것이다.
그치만 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많이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하나 없는 텅빈 학교 도서관에서 (지지리 공부들도 않했다.) 하루에 4시간씩 5시간씩 혼자서 단어도 외우고, 쉬운걸로 독해집도 사서 보곤 했다. 너무 외로웠다. 남들이 이쁜 여자친구랑 팔짱끼고 가거나 끼리끼리 모여서
술마시러 가면, 옛날생각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치만 난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녀석과 매일 씨름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하늘이 날 버리지 않았는지 여름에 계절학기라는게 떡~~~ 하니 생겨버린 것이 아닌가...나는 너무 기뻤다. 그리고 그동안 공부한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했다.
계절학기를 이수하고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자, 나는 바로 김영학원에 등록을 했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학원이 맘에 않든다느니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그당시 난 그런걸 판별할만한 능력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영어학원을 머리털나고 첨 다녀보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3월부터 단어를 외워서 그 당시에는 약 3000개에 육박하는 단어를 거의 완벽하게 외우고 있었다. 문법 선생님께서 넌 정말 영어를 한번도 접해보쥐 않은 거 같은데 어휘는 많이 안다고, 꾀않부린다고 넌 꼭 합격할 거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난 이 괴물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비로소 들었다.
하지만 첫 모의고사 점수는 35점 이었다. 처음엔 다들 그렇게 나온 다지만, 난 김영을 약 5개월 (7~12) 다녔지만 단 한번도, 60점 이상을 나온 적이 없었다. 여기에 한번쯤은 이름이 올라야 갈 수 있다던 모의고사 성적우수자 명단에 이름 한번 올라 본 적도 없다.
막막했다. 그치만 모의고사는 진짜 시험이 아니지 않냐고, 진짜 시험에 붙는게 이기는 거라고 내 자신을 그렇게 달래 가면서 정말 열씨미 공부했다. 남들이 (특히 여자애들 그런짓좀 하지마세요^^) 모의고사 명단에 이름한번 올라왔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게 짜증났지만
그런거 신경 쓸 때에 영어단어 한번 더 본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할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배치고사를 봤다. 점수는 45점. (합격한 후 알았다.) 나는 담임에게 점수공개를 거부했고, 내 나름대로 총력전을 폈다.
그리고 7개 학교에 원서를 넣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시험에 임했다. (정말 내 모든것 을 쏟아부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성대, 건국대, 국민대, 경희대(수원) 이 4개 학교에 (예비에서 된 것까지) 붙어 버렸다. 너무 기뻤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취감 이라는 것을 알았고, 처음으로 울 엄마에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어릴 때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웃게 만들었다.
그 후 6개월남짓 지난 이후 25살의 나는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친구들은 국민대 앞에서 짱깨 하는거 아니냐고 놀리기도 하지만 대가리 한대 쥐어 박으면서 웃을 뿐이다. 난 내 불만과 울분을 여기에 쏟아부었다.
편입 준비생 여러분. 근성을 가지고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옵니다. 방법은 2차 문제일 뿐입니다. 전적대 학점 학고 포함해서 2.3 김영 모의고사 최대점수 60점(딱~~60) 준비생 여러분중에 저보다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계신분은 별로 없으시리라 봅니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십시오.
지금까지 허접하기만 한 조금은 늦은 감이 있는 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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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수기 감사드립니다 힘이되네요 ^^
감동적이네요....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