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의 하나로 지난주부터 구미시민문화예술아카데미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반기에는 일이 확 줄어들기에 상반기에는 열심히 일하며 자연을 벗 삼고
하반기에는 교양강좌를 많이 듣고자 마음을 다잡던 터에 아카데미 개설 소식을 듣고 지원을 했었습니다.
선착순 마감이 일반적인데 과정 특성 상 지원서로 취지와의 부합여부를 판단하여 당락을 결정하였고
다행히 수강자격이 부여되어 기쁜 마음으로 듣고 있습니다.
12월 초까지 매주 화요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입니다.
1차 강연은 대구미술관장님이 ‘미술관 이야기’란 제목으로 열강을 하셨는데
예술에 대한 열정, 미술관에 대한 애정이 넘쳐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고
미술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차 강연은 전유성님이 ‘발상의 전환, 고정관념을 깨자’란 제목으로 청중들과 하나가 되었는데
그의 기발함과 사업 추진력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강연 내용 중 특별히 제 마음을 사로잡은 내용이 하나 있었는데,
본인도 그런 분과 교류하고 싶은데 연락처가 없어 아쉽다고 하였습니다.
내용인즉슨, 전유성 씨가 오래 전 이사할 집에 들어가 보니
전 입주자가 내부를 깨끗이 정리하고선 메모를 하나 붙여놓았더랍니다.
새로 이사 오시는 분은 잘 오시는 거라며 이곳의 좋은 입지조건을 소개하고
중국집, 통닭집 등 인근 맛집 연락처와 함께 이사 오셔서 즐겁게, 행복하게 잘 사시라는 덕담까지,
전체 내용은 물론, 단어 하나까지도 마음에 쏙 들게,
이사를 잘 왔다는 생각이 들도록 적은 내용으로 입주 첫날부터 행복하였다고 하더군요.
이런 이웃과 함께 사는 이는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생면부지이지만
그 메모를 남긴 분께 존경의 염까지 들었습니다.
그에 대비되어, 요즘 우리 이웃은 참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많이, 자주 듭니다.
이웃과의 관계 단절, 갈등과 충돌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된 일도 아니지요.
제가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온 지 벌써 십 칠년이나 되었습니다.
결혼 후 10년 여간 전셋집을 전전하다가 내 집으로 이사했을 때의 행복감이란...
이사 떡으로 시루떡을 시켜두고 이삿짐 다 내릴 시점에 맞추어 배달받아
집집이 돌리며 전입 인사를 드린 기억이 새롭습니다.
한동안은 그런 미풍양속이 지속되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웃 간 인사하고 정 나누는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아래 위층 몇 집이 모여 소주도 한 잔 하고 여행도 같이 다니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들 중 일부가 이사 가고 새로이 오시는 분들이 늘면서
떡은 고사하고 인사도 나누지 않는 것이 당연시 되는 이상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매일 아침 정겨운 인사를 나누는 1층 반장님 부부, 점집 어르신과 부부도 있긴 하지만...
예전에는 동틀 무렵 새마을 노래와 함께 쓰레기차가 골목을 누빌 때면
집집마다 사과 궤짝에 모아담은 쓰레기와 연탄재 등을 들고 나와
선잠 깬 상태에서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쓰레기통을 차에 힘겹게 던져 올리고
청소원 아저씨가 비운 궤짝을 내려주면 받아 집에 넣고선
빗자루를 들고 각자 제집 앞을 쓸던 정겨운 풍경이 있었습니다.
눈이 오면 눈 치우기는 모두의, 또한 각자의 몫이었지요.
세상이 삭막해지고 있다고 얘기들 하시는데
이웃사촌이란 말이 의미 없어진 요즘에 딱 들어맞는 말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웃과 만날 일이 잘 없고 인사도 않는 풍조이다 보니 층간소음도 더욱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웃 간에 원수가 되고 살인까지 부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웃과의 갈등 때문에 우울증이 오고, 이사 가는 사례도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층간소음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상대를 조금만 배려한다면,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갈등은 완화되거나 아예 발생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음을 내지 않으려는,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만
아파트의 구조 문제로 소음이 증폭되는 경우도 많이 있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수용의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한 요소라는 거지요.
하지만 얼마 전 이사 온 이웃의 경우는 완전히 다릅니다.
쓰레기봉투를 집 앞, 복도 중앙에 며칠씩 두기도 하고 자기 집 문에 붙은 전단지를 떼어서는 복도에 던져둡니다.
위층 올라가는 계단에 던져둔 때도 있었습니다.
짜장면을 시켜 먹고선 반쯤 남은 음식과 젓가락 포함, 덮지도 않고 계단 중간에 놓아둡니다.
얼마 전에는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두 개가 복도 중앙에 상당량의 전단지 위에 턱 하니 놓인 채
일주일 이상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건 순전히 개인의 특질 문제이지요.
관계의 문제는 풀어갈 수 있지만 상대방의 기본 특질에 관해서는 함께 풀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 집을 방문하여 정중하게 얘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아직 얼굴도 못 본 이들에게 첫 만남에서 그런 얘기를 꺼내기도 뭣하고,
자칫 잘못되어 원수처럼 될 수도, 신체접촉까지 가는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만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 대신 반장님께 말씀드려 특정 호실은 밝히지 않고
어지럽혀진 복도 사진만으로 서로가 조금씩 조심하자고 게시판에 올리도록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웃이 바로 앞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17년 정든 집도 정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든 집에서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단점이 별로 없는 집입니다. 하지만 장점은 엄청 많은 집이지요.
남향집 5층 건물의 4층이라 집이 덜 춥고 덜 덥고
도시계획 상 5층 층고 제한이 있었기에 앞을 가로막는 높은 건물이 없다는 것,
바로 앞에 도서관이 있고 공원이, 거기다 테니스장까지 있다는 것, 등산로가 곳곳에 있다는 것,
걸어서 5분 거리에 우체국, 동사무소, 파출소, 종합병원, 걸어 10분 거리에 시청과 문화예술회관이 있다는 것,
차로 5분 거리에 기차역, 버스터미널, 재래시장, 대형마트가 있고 도립도서관이 있다는 것
등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장점이 많습니다.
반장님이 수시로 빗자루 들고 주변 청소하시는 것도 참 인상적입니다.
단점을 굳이 꼽으라면 다세대 주택이라 17년 전 샀을 때와 지금 집값의 변동이 크지 않다는 것인데
어차피 팔 것이 아니니 집값은 의미가 없긴 하지요.
그리고 요즘 새로 온 이웃의 의식수준인데 이건 어디건 별 차이가 없을 터이니
굳이 우리 집의 지정학적 단점은 아니랄 수 있겠지요.
큰 아이는 이웃집 행태 얘기를 듣더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어쩌겠습니까? 요즘 세상이 다 그런데,,,”
통달한 듯 얘기를 합디다만 저는 아직 그 정도까지 깨우치려면 멀었나봅니다.
공중도덕 제로인 그들과 한 통로에 산다는 것이 갈수록 싫어집니다.
그래서 이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갈까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이런 불편한 마음이 이번 문화예술아카데미 과정을 수강하면서 희석되고 정화될 수 있을까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가 더해지고 이해도가 높아진다면
깨달음의 경지가 조금 더 높아지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해 봅니다. ㅎ ㅎ
꼭히 강좌 수강의 덕이 아니더라도 아래 모셔온 글처럼 ‘괜찮아’라는 주문을 자주 걸어보면 나아질까요?
5년 전 또 다른 이웃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린 기억이 있어 모셔왔습니다.
요즘 갈수록 이웃들이 이렇게 좋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그분들은 집 팔아 이사하시고 그 자리엔 원룸이 들어섰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http://blog.naver.com/bornfreelee/50102103707
혼탁해진 심신을 정화하는 데는 자연만한 게 없습니다.
대구수목원의 이른 가을 풍경을 보며 잡념을 날려 보시죠.
http://blog.naver.com/bornfreelee/220471564835
괜찮아...(모셔온 글)=====================
우리는 하루 24시간 중에 한두 번쯤은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이나 사건을 접하게 된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맞닥뜨리거나
차가 밀려서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하거나
일부러 찾아간 가게가 임시휴업 중이거나
지갑을 잃어버리는 등과 같은 일이다.
그럴 때는 내키지 않더라도 '괜찮아' 라고 말하자.
이 한마디가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게 되면
틀림없이 인생이 크게 변할 것이다.
-----사토 도미오의 '성공 유전자를 깨우는 생각의 습관'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