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고어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하고 나온 '텔미썸딩'이 지금 난리가 났다.
왜 'th-'의 한글식 표기를 '딩'으로 했는가 라는 소모적 논란부터 대체 하드 고어가 분명하냐, 한석규와 심은하의 연기가 좋았냐 등등등 지금 장안의 모든 영화 관객은 '텔미썸딩'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있다.
본래 장르라는 것이 그 성격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요즘은 제작측의 마케팅 차원에서 갖다붙이면 뭐든 통하는 코에 거는 코걸이 모양새가 되었으니 '텔미썸딩'이 하드 고어니 뭐니 하는 것 역시 소모적인 논란 밖에 되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 역시 '텔미썸딩'이 진짜 가져다 준 논란에 비하면 조족지혈 정도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진짜 문제는 '텔미썸딩'의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바로 그것이다.
'텔미썸딩'의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들이 어리석어서? 아니다.
그 누가 와서 봐도 '텔미썸딩'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할 순 없다.
그래서 지금 관객들은 '텔미썸딩'이 생략해버린 내용들을 짜맞추는 퍼즐게임에 빠져있다.
그러나 누가 또 이 퍼즐의 정답을 풀 수 있겠는가? 정답을 모르니 설령 정답을 맞추었다 치더라도 그게 정답인지 알 수가 없다.
영화의 내용을 이 정도로 생략했다는 점은 정말로 놀랄만 하다.
아무리 끼어맞추고 끼어맞춰도 뭔가가 부족하니... 여기서 몇 가지 넷의 바다에 떠다니는 그럴싸한 견해를 주워모아 하나로 짜 맞춰 보겠다.
# 텔미썸딩의 비밀
승민은 어릴 때 수연을 알게 되었고 그녀에게 동성애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화재 사건 때 그녀를 구하려다 화상을 당하기까지 한다. 한편 수연은 대학 때까지 아버지인 채화백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녀에게 있어서 유일한 혈육이며 첫 남자.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지만 아버지란 존재 혹은 남자란 존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편집증적인 증세를 보이는 그녀. 때문에 새로운 아버지를 조합해내기로 작정하고 이로써 그녀의 엽기적인 살인계획은 처음부터 미리 그려진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도와줄 사람으로 승민을 지목하게 된다. 작전을 짜는 수연. 일부러 자살 소동을 벌인 후 승민의 병원에 실려가 승민에게 먼저 아는 체를 하는 것으로 접근, 자살 동기를 묻는 승민에게 자신이 아버지에게 당했던 일을 말해주면서 그녀의 동정을 불러 일으키고 수연을 동성애적으로 사랑하는 승민은 그녀와 같이 채화백을 살해하기로 한다. 한편 새로운 아버지를 조합하기 위해 그녀는 또한 다른 남자들이 필요했다. 때문에 그녀는 남자들을 하나씩 꾀어내 공범으로 그리고 자신의 일을 완성시킬 재료로 사용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온 사진은 최초로 최화백을 죽인 후 그들 스스로 자축하며 찍은 사진이고 그 사진에서 보이듯이 그들이 모두 어항을 나눠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점을 암시하는 의미 심장한 소품이다. 수연이 조반장에게 그들을 모두 과거의 애인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일단 거짓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설령 모두 애인이라해도 충분히 수연의 일을 도와주겠다고 나설 수 있다고도 보인다.
최초의 살인 후 수연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가 짠 살인 밑그림대로 하나하나 남자들을 불러 죽이고 필요한 부분을 떼어낸다. 영문도 모르고 방부제를 구해준 기현은 불안하기는 하지만 자신도 최초 살인의 공범이기에 섣불리 신고할 수도 없다. 그런 기현도 끝내 수연에게 자신의 신체 일부를 헌납하고 만다. 기현이 죽기 전 용의자로 지목되어 수사팀에 끌려갔을 당시 수연이 무언가에 놀라 기절하는 것은 그녀의 자작극이다. 왜냐하면 기현이 형사에게 최초의 살인을 불어 버릴지도 모르며 또한 기현은 그녀에게 필요한 재료이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기현을 풀려나게 해야만 했다. 그래서 마치 기현이 범인이 아닌 것처럼 꾸며 그를 풀려나게 하기 위해 연극을 했던 것이다. 한편 시체를 절단한 702호 아파트에 사는 한 꼬마는 거기에서 뭔가를 훔치려다가 불현듯한 인기척에 창문에 매달려 숨지만 수연에게 단추 한 짝만 남긴 채 떨어져 죽는다. 영화 도입부에서 추락사한 소년이 바로 그 꼬마이다. 얼마 후 그 꼬마의 동생은 거기에 다시 들어가 그림을 훔쳐나오고 장물로 접수된 그 그림을 계기로 오형사는 702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만 그만 승민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서로 연민을 느끼게 되는 조반장과 수연... 남자의 표상이자 자신 아버지를 대신할 조합의 마무리 단계, 즉 마지막 남은 부분인 머리를 실제 아버지의 머리를 사용하기 위해 남겨두었었지만 수연은 계획을 바꿔 조반장을 그 머리로 사용하려 한다. 그에게 경고를 하는 수연. 그러는 와중에 승민은 이 모든 살인이 수연의 치밀한 계획이었으며 거기에 자신도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진다. "넌 자살할 애가 아니야..." 그런 승민 때문에 불안한 수연. 또한 승민 역시 자신의 동성애적 사랑의 무모함과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에 대한 절망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 쓴 채 수연 대신 잡혀가려 한다. 그래서 살인에 사용된 수술도구를 집에 갖다 놓고 욕실에 피를 칠해 시체 절단 현장처럼 꾸민다. 그러나 그전에 그녀에게는 할 일이 남았다. 자신의 사랑을 좌절시킨 수연을 없애는 것. 거의 증오와 사랑이 교차하는 정신 상태다. 그러나 이를 훤히 꿰뚫고 있던 수연은 조반장이 보는 앞에서 승민을 없애버리고 만다. 그리고 조반장에게 의미심장한 어항만 남겨둔 채 프랑스로 떠나게 되고 비행기 안에서 다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낼 재료를 만난다.
# 사라진 40분-그 비밀의 열쇠
장윤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기를 바랬다고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영화에서 폐쇄된 사람들과 단절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보고자 했다 한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배려인가! 단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본 관객들이 단절되지 않게끔 다시 서로 이야기하게 만들다니... 실제 이 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대화를 불러 일으켰고 그러니 감독의 의도는 정확히 적중한 셈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정말로 감독이 의도한대로 작품이 나온 것이고 그 의도대로 관객의 반응이 쫓아오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한 마디로 장윤현 감독은 위선에 찬 사기꾼이다.
영화의 런닝타임을 몇분으로 계산하고 촬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텔미썸딩' 최초 완성본은 2시간 40분이였다고 한다. 그랬던 것을 영상물 등급 위원회의 등급 심의에 걸릴까봐 알아서 삭제한 분량이 40분이며 지금 우리가 보는 '텔미썸딩'은 그 중 40분이 삭제된 2시간 분량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감이 오는가? 그렇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해결의 열쇠는 삭제된 그 40분에 남겨져 있다. 실제 40분이란 분량은 총 영화의 정확히 4분의 1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더군다나 반전에 반전을 노리고서 꽈배기마냥 비비 꽈놓은 내용에서 4분의 1을 빼버렸으니 우리가 이해하기는 만무하다. 그럼 왜 그렇게나 많은 분량을 삭제했을까? 첫째, 지랄맞은 등급위 때문이다. 하드 고어를 표방한 만큼 영화에는 잔인한 부분이 많았을 테고 등급위는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심의에 앞서 제작사측에다가 알아서 삭제하라는 압력을 넣는다고 한다.(이게 검열하고 대체 뭐가 틀리단 말인가!!) 그 와중에 잘려나간 부분이 만만치 않을 듯 싶다. 둘째, 극장 상영회수 때문이다. 과거에 제오원소의 런닝타임이 길어서 일일 상영회수를 일이회 정도 줄여야 했는데 극장측에서는 오히려 상영회수를 늘리기 위해 영화를 몇분정도 삭제하기를 원했고 우리의 친절한 배급사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기 맘대로, 꼴리는대로 영화를 줄여버렸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뤽베송이 그 당시 얼마나 열받았었던가!(한마디로 국제적인 망신이지) '텔미썸딩' 역시 2시간 40분이란 시간은 일반적인 영화의 상영회수와 맞추기에는 상당히 긴 시간이다. 한석규, 심은하 나오면 못해도 대박일텐데 이런 영화로 한 몫 건져야 될 극장주측에서 상영회수를 늘리지는 못할 망정 줄여야 할 판이니 어떻겠는가? 분명히 제작사와 배급사에 뭔가가 들어갔을테고 거기에 뽕짝을 맞춰서 놀아난 그들은 40분이란 시간을 낼름 잘라버렸다. 젊은 감독이라서 아니면 너무 유순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자신의 영화가 잘리는 것을 허락했을까? 이럴 때는 장선우나 박광수와 같은 똥고집이 아쉽다. 그의 생김새처럼 장윤현은 지나치게 패기나 뚝심이 모자랄 뿐이다.
# 진짜 피해자들
그러나 정말 속타는 것은 관객만이 아니다. '텔미썸딩'은 그 영화의 내용에서처럼 피 칠퍼덕 팔다리 데굴데굴하듯 잘린 필름때문에 중간 중간이 토막나서 문제이지 나머지는 너무나 훌륭하다. (아, 그러나 이 역시 완성본이 아닌 이상 뭐라 평가할 수 없다. 분명히 훌륭했을텐데 빌어먹을 40분이 날아간 바람에 우리는 확실히 평가하기 어려워진다.) '접속'에서도 호흡을 맞췄던 김성복의 촬영은 다리우스 콘쥐와 흡사하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걸출한 맛이 있다. 특히 특징적인 앙각 촬영은 유기된 시체가 발견되는 장면들에서 프레임 내의 주요 대조와 같은 시점의 높이로 카메라 앵글를 가져가 강조시키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데 계속해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인물 쇼트에서도 지평선의 높이를 높임으로써 그 구도에서 인물의 무게감 혹은 압박감 등을 살려낸다. 또한 '접속'에서 보여준 쇼트, 운전석에 앉은 사람을 프레임의 한 구석에 몰아넣고 차를 반으로 잘라서 잡은 후 차의 뒤쪽까지 보여주는 쇼트들 역시 아직도 인상적이다.
조명 역시 촬영과 함께 뛰어나다. 조명과 촬영은 거의 하나와 같이 유기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촬영이 뛰어난 영화가 조명은 떨어지는 경우는 보기 힘든 것처럼 스릴러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살려내는데 조명의 효과는 지대하다. (그러나 아직도 세트에서 벗어날 경우에는 조명의 한계가 조금 보이긴 하더라.) 음악 역시 장윤현 감독 영화는 특출나며 '오필리어'의 그림과 '캄브세스왕의 재판'(정확한 지는 모르겠다)이라는 그림 또한 내러티브상 중요한 motif로 사용된다. 이렇게 motif를 잘 사용한 영화 역시 국내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그리고 편집도 마찬가지다. 인과관계에 얽매이는 사건 중심의 편집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중심 혹은 인물의 심리 중심으로 맘껏 점프하는 편집은 깔끔하고 구태의연하지 않은 맛이 있어 좋다. 이런 편집의 특징은 '접속' 이후에도 여전히 건재한 듯 하다. 병원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손의 컷트에서 곧바로 어머니의 산소 곁에 혼자 서있는 조반장의 컷트로 편집되는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가타부타 불필요하게 늘어놓지 않아서 좋고 심리나 분위기, 이미지 중심으로 그것들만 살리고 강조해서 좋다.
이처럼 너무나도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영화가 40분이 날아가서 정당한 노력의 보람을 찾지 못했으니 그 스텝들은 얼마나 화가 날 것인가! 아마 관객 못지 않게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여러명의 조각가가 뜻을 합쳐 2미터40센티의 조각을 몇달 며칠간 잠도 안자고 피땀흘려 만들었는데 그 중 가장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어떤 인간이 무성의한 바람에 전시장 높이가 2미터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몰라 조각상의 대가리 높이 40센티를 잘라내고 전시하는 꼴과 매한가지다. 그들의 고생이 개런티로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영화의 런닝타임도 염두해 두지 않고 영화를 찍어낸 감독은 분명 그 기초적인 자질에 문제가 있다. 단 한 명의 실수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 것이다. 런닝타임을 설령 2시간 40분으로 계산하고 찍었더래도 문제는 있다. 끝내 40분을 지켜내지 못하고 너무도 쉽게 잘라야만 했던 것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열의의 부족이나 패배주의로 밖에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면서도 아직까지 각종 인터뷰에다 대고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가식적이고 위선적이지 않은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다니.... 그리고 더욱 의심가게도 그 숨겨진 내용, 잘려진 내용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다니....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선량해 보일 것이다.
# '파업전야' '접속' '텔미썸딩'....장윤현
나는 92년도에 우연히 학내에서 '파업전야'를 본 적이 있다. 노동자를 다루었다는 것말고는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었던 영화로 기억되는데 그 '파업전야'의 감독이 바로 장윤현이다. (사실 그 당시 내가 어려 잘 몰랐지만 노동자를 다룬 것만으로도 너무나 특별하고 위험했던 영화다) 그리고 '파업전야'는 독립영화나 대안영화의 커다란 대명사와 같이 자리매김했다. 그런 '파업전야'의 장윤현이 '접속'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을때 나는 내심 실망하고 말았다. '접속' 역시 여러 파트가 훌륭하긴 했지만 그 패배적이고 비관적이며 비현실적인 면이 과연 '파업전야'의 감독이 만든 작품인가라는 의심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접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삶이 과연 현실적인 삶과 흡사한가? 인물 중 어느 누구도 가족 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채 개인적인 삶만 영속하고 있으며 모두 풍족한 물질적 환경을 누리고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천착하고 있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가 자신을 억압하는 부르조아에 대항하여 개인성을 벗고 집단화되어 맞서야 한다는 '파업전야'의 그 장윤현이 대체 그간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런 폐쇄적 개인 혹은 염세적 비현실의 나락으로 떨어졌는가 극히 궁금했고 실망했다. 어쩌면 이 때문에 장윤현은 '파업전야'라는 굴레를 벗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텔미썸딩'은 장윤현 자신이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한 작품이다. 그러나 '접속'에서의 그 분위기가 극복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음울한 비현실적 공간이 스크린에는 가득하고 인물은 더욱 폐쇄적이고 그의 말대로 단절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단절에 대해 이토록 말하고 싶은 것일까? 무엇때문에 그 자신을 격리시켜가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그의 영화에서 그는 '파업전야'가 디디고 있는 현실이 아닌 전혀 다른 현실의 공간을 딛고 서서 그렇게 폐쇄, 단절, 소외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정치적 성향의 감독들은 자신의 정치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할 때 그것을 곧잘 성이나 에로티시즘에 빗대어 표현한다고 한다. 그것이 어쩌면 권력관계를 잘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라서 그러나? 여튼 이는 곧 정치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 정치성을 다른 방법으로 토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표적으로는 장선우나 혹은 여균동이 있을테고 저 유명한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역시 이런 경우일 것이다. 그럼 그러한 정치성이 제거되어버렸거나 완전히 좌절되어 버렸을 경우는 어떤 방향으로 선회할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바로 그 자리에 장윤현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가 왜 그렇게 좌절되거나 거세되어 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완전히 자신의 80년대적인 현실을 잃어버린 고등어일지도 모른다. 발딛고 있을 현실이 사라진 이상 그는 새로운 현실에 뿌리박아야 하며 그것이 일상적이지 못하고 적응되지 못하는 이유로 그의 단절과 소외는 깊어간다. '파업전야'의 장윤현을 떠올리고 '접속'의 장윤현을 떠올리면 웬지 모르게 서글퍼지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텔미썸딩' 역시 마찬가지다. 40분을 잘라내야 한다면 나같은 경우 차라리 조반장의 초반 인물 설정 장면들 즉, 뇌물 수수로 조사받는 장면들, 병원 장면, 어머니 상 당하는 장면들을 다 잘라 버렸을텐데 감독은 오히려 그런 장면을 살려놓았다. 완전히 단절되어 가는 조반장을 극구 관객에게 보여주려 한 것이다. 사실 조반장의 그런 개인적인 소외가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접속'에서 그가 던진 단절과 소통 또는 이번에 '텔미썸딩'에서 보여준 폐쇄된 단절이라는 화두는 진지해진다. 어쩌면 그것은 80년대 90년대 초를 휩쓸었던 학생운동만이 아닌 지금 현재 대중 문화에까지 맥이 닿는 광범위한 말걸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살아남은 자가 그리고 살아가야 할 자가 고민할 것은 대중이며 그 대중이 원하는 것은 그가 한때 버티고 서있으려 했던 그 현실의 보드랍고 향긋한 토양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새롭고도 이질적인 대중의 토양에 발을 디뎠고 잘 적응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는 흉내만 내고 있을 뿐 대중은 처음부터 멀리 있을 따름인 것이다. 무의식적인 대중에 대한 자기 검열. 그 부조화가 이상한리만치 서글픈 불협화음을 읊조리며 처량하다. 그의 영화에는 이 처량함이 알게 모르게 배어있다.
그렇더라도 그는 너무 돌려치고 있고 너무 돌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말걸기는 힘이 없으며 나약하게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 결론
이야기가 너무 멀리 흘렀다. 자, 결론을 짓자. '텔미썸딩'은 40분을 잃어버린 미완성품이다. 미완성품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고 비록 장윤현 감독의 그 상실된 속내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런 미완성품을 내놓은 채 마치 완성품인양 숨기고 있는 감독과 제작사는 부부사기단이다. 어찌 됐든 '텔미썸딩'이란 텍스트 그 자체가 그외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니까. 이 정도 결론이면 됐나? 여튼 텔미썸딩이여. 나에게 말해달라고 하기 전에 말할 수 있게끔 무언가 달라. 부디. 기브미 썸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