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티모르와의 첫만남
8시간이 넘는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동티모르 수도 딜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하루에 항공편이 두세 개가 끝이고 에스컬레이터 하나 없는 자그마한 시골 버스 터미널 같은 공항에서 나와 동티모르에 첫 발자국을 내 딛었습니다. 나오자마자 적도 태양에 한껏 달궈진 공기가 저를 반겨주며, 원래도 까맸지만, 더 까맣게 탄 선배 수사님을 만나 “아, 나도 곧 저렇게 되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수도원이 있는 리퀴도에(Liquidoe)로 출발했습니다.
딜리에서 두 시간 떨어진 1300미터 고지에 위치한 수도원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여기가 과연 차량이 갈 수 있는 길인가를 수사님에게 계속 물으며 아까 먹은 기내식이 벌써 소화될 정도로 차는 덜컹거리며 계속 산을 올라갔습니다. 선배 수사님은 조수석 창 바로 아래 낭떠러지를 지나가며 불안해 보이는 제 얼굴을 보았는지 곧 익숙해질 거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차는 어느새 산 중턱을 넘더니 갑자기 창밖으로 넓은 평야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국적이지만 묘한 익숙함이 느껴지는 나무와 꽃들의 풍경에 저는 넋을 잃고 구경하던 중 조금씩 마을들과 집들이 보이더니 갑자기 곳곳에서 ‘Amu!, Amu!’(아무: 신부님)라는 소리가 들리며 아이들이 뛰쳐나왔습니다. 천천히 가고 있는 차량으로 다가온 아이들은 누구나 할 거 없이 너무나 해맑은 표정으로 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바로 ‘Bensa’(벤사: 축복)라고 하는 것으로 동티모르 사람들이 주로 공경을 표할 때 하는 인사였습니다. 제 얼굴이 보일 정도로 맑디 맑은 아이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니 아까까지 불안했던 저의 마음은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이 해외선교가 언제까지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차량은 고즈넉한 종각과 기다란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자그마한 수도원에 도착을 했습니다. 곧 저녁이 되어 수도원 형제들과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수사님들이 하나둘 자연스럽게 수도원 밖을 나가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25m, 30m, 50m 정도 즈음에 의자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왔을 때 왜 저 곳에 뜬금없이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까 하며 눈에 들어왔었는데, 알고 보니 리퀴도에에는 물이 모자란 지역이고 전기는 자주 끊기기 때문에 당연히 인터넷 상태도 좋지가 않아서 보통 일과를 다 마치고 수도원 밖으로 나가 밀린 업무와 한국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인터넷이 제일 잘 터지는 곳을 찾아 의자를 놓아둔 거였습니다. 저는 “이야, 여기까지 걸어와서 인터넷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잠시, 혹여 홀로 있는 의자가 외롭지는 않을까 어느새 덩그러니 놓인 의자 옆으로 저도 조용히 또 다른 의자를 슬며시 가져다 놓았습니다.
다음날 동티모르의 첫 아침, 경북 군위에 외가댁에서만 들었었던 풀벌레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잘 자고 일어나 동티모르의 첫 미사를 형제들과 함께 집전하게 되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제의실에 들어가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복사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그마한 키에 끌리는 복사 옷을 입은 한 아이가 자기보다 훨씬 큰 제의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손을 번쩍 들어 까치발로 들어도 바닥에 반이 끌리는 제의를 건네 받으니 미사 집전하는 동안 내가 업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습니다. 그리고 곧 미사 시작을 알리는 종이 당겨지며 아름다운 종소리와 함께 저의 동티모르 선교 생활도 첫 출발을 알렸습니다.
이형우 루카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