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 가을호 반경환 명시감상 {사상의 꽃들}에서
‘볕뉘’라는 말
이 영 식
나무 그늘 아래
노숙자의 굽은 등에 떨어진
햇볕 한 조각
유난히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저 볕뉘만큼
나눔과 결이 통하는 말이 있을까요
지상의 낮고 그늘진 곳
작은 틈으로
살며시 부어주는 사랑
쥐구멍까지
두 손을 쬐게 하는
햇살 한 줌
그 지극한 온도
모든 강의 기원이 깊은 산 속의 자그만 샘물이듯이, 모든 기적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할 수가 있다. 북경에서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미대륙을 초토화시킨 허리케인이 될 수가 있듯이, 아주 작은 “햇볕 한 조각”이 노숙자의 미래의 희망이 되고, 이 노숙자는 끝끝내 호머와 셰익스피어와 단테와 랭보와 톨스토이와도 같은 대서사시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거목巨木과 황제와 대서사시인의 싹을 틔우는 것은 “햇볕 한 조각”이고, 따라서 이영식 시인의 「‘볕뉘’라는 말」은 모든 기적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가 있다.
「‘볕뉘’라는 말」은 희망의 말이자 혁명의 말이며, 그 모든 기적을 주재하는 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유난히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저 볕뉘만큼// 나눔과 결이 통하는 말이 있을까요”라는 시구가 그렇고, “지상의 낮고 그늘진 곳/ 작은 틈으로/ 살며시 부어주는 사랑”이라는 시구가 그렇고, “쥐구멍까지/ 두 손을 쬐게 하는/ 햇살 한 줌// 그 지극한 온도”가 그렇다. 모든 희망은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 황제의 어린 시절의 “햇살 한 줌”과도 같고,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이 ‘햇살 한 줌’을 기폭제로 삼아 최고급의 인식의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 결과, 그리스의 변방인 마케도니아 출신으로서, 또는 프랑스의 식민지인 코르시카 출신으로서 전 인류의 영원한 황제가 되었던 것이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도 쥐구멍에는 볕이 들었고, 페스트가 만연하고 세계적인 대유행병 코로나가 지구촌을 초토화시켰 때에도 쥐구멍에는 볕이 들었다. 천체물리학자인 아인시타인의 가난한 골방에도 볕이 들었고, 영원한 이단자인 마르크스와 장 자크 루소의 골방에도 볕이 들었다. 염세주의자와 회의주의자의 골방에도 볕이 들었고, 테러리스트와 패잔병의 야전텐트에도 볕이 들었다.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도 ‘볕뉘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고, 보들레르가 『악의 꽃』을 쓰고, 랭보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쓴 것도 ‘볕뉘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볕뉘란 아주 작은 틈으로 잠시 비쳐드는 햇빛을 말하지만, 이영식 시인의 볕뉘라는 말은 무한히 크고 넓은 말이며, 천지창조의 대폭발과도 같은 힘을 지닌 말이라고 할 수가 있다.
「‘볕뉘’라는 말」은 아주 작고 따뜻한 말이지만, 그러나 모든 큰 것들의 아버지인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