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카톡 편지
아침에 책을 읽다가 머리가 띵하고, 그러다 보니 부실하기 짝이 없는 치아에까지 통증이 느껴져 판피린 한 병 먹고 누워서 폰으로 티브이 아침 뉴스를 보다가 잠들었다. 내 경우 판피린만 먹으면 졸음이 쏟아진다. 그래서 꺼려질 때도 있지만 머리 띵한 데에는 판피린 만한 것도 없다.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니 잠자리 패턴이랄까 수면 시간이 일정치 않고 수시로 변하게 마련인데, 요즘은 자정 넘어 새벽 한두 시쯤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섯 시쯤에 일어나 책도 좀 읽고 일상생활을 하다가 낮에 또 모자란 잠을 자곤 한다.
오늘도 다섯 시쯤에 일어나 커피 마시고 엊그제부터 읽기 시작한 찰스 다윈의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다윈의 진화론에 관한 3번째 저작)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작년인가 그 전해인가에 구입한 것인데 읽기에 돌입하려면 마음을 좀 먹어야 해서인지 미루어오다가 이제야 꺼내 든 것이다. 어쩌면 얼마 전 시작해서 중반쯤 진행해 나가는 중인 단편소설을 마저 쓰기가 꾀부려져 책 읽기로 선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쉬운 책은 아니다. 한 줄 한 줄 생각해 가며 꼼꼼히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이제 겨우 ‘서론’을 읽었을 뿐인데 75페이지고, 한 페이지 건너뛰어 77페이지가 기다리고 있다. 왜?, 무슨 소용이라고 이런 책을 읽는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 어떤, 알 수 없는 충족감 때문이라고 해두자.
판피린 얘기로 돌아가서, 그 약기운에 취해 폰의 작은 화면으로 뉴스를 보는 둥 마는 둥 잠들었는데 그 잠결에 카톡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두어 시간 지나서 폰을 열어보니 오랜 동안 소식이 없던 동창생이다. 더군다나 이 친구,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사실 오래 소식을 모르다가 동창회 카페를 통해 전화번호를 알고는 몇 년에 한 번씩, 5년이 지나기도 하고, 2·3년에 한 번 연락이 있을까 말까 한 정도였다. 그래도 학교 졸업하고 나서 얼마 동안은 더러 만나기도 하고, 군 입대하고 복무 중에 휴가 나오면 찾아와 만나기도 했던 것 같다.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무렵 군 복무 중 휴가 나와 만나는 친구가 어디 한둘이었을까인 까닭이다. 요즘 내가 블로그에 시를 소개하는 김기영 시인 역시도 휴가 나오면 군복이었던지 방위복이었던지를 입고 만나곤 했다.(김기영 시인이 군병이었던가 방위병이었던가는 잘 생각나지 않음.)
그런데, 오랜만에 카톡 메시지를 보내온 이 친구 얘기가, 학창시절 말다툼한 얘기를 꺼내며 미안하다고 하다니. 그건 정말이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되짚어 보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 친구는 집이 멀어 열차 통학을 했기 때문에 열차 시간에 맞추느라 여름이건 겨울이건 전교에서 가장 먼저 등교하고 가장 늦게 하교하곤 했다. 여름에는 나았지만 겨울에는 컴컴한 새벽 박명에 등교하고 어둑어둑해져서야 하교하는 꼴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어떠했는가. 이 학교 저 학교 학생들이 한창 밀리는 등하교 시간에 버스에 오르면 그 좁은 버스에 학생이며 직장인들이 뒤섞여 가득가득 들이차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공중 부양한 채로 학교 앞 정류장까지 짐짝처럼 실려가기 일쑤고, 더러는 버스를 타지 못해 합승 택시를 이용해야 되기도 했다. 그렇게 만원 버스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남들 보다 일찍 가거나 아주 늦게 가야 했는데, 늦으면 지각하기 십상이어서 될 수 있는 한 일찍 등교하는 쪽을 택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침 저녁 열차 통학을 하느라 거의 새벽이다시피 등교해 있는 몇몇 친구들과 쉽게 접하곤 하면서 놀고 공부도 하고 그러했다. 그렇게 놀다 보면 다툼도 일어나곤 하기 마련인데, 친구의 카톡 내용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어떤 학습 내용에 관한 문제로 다퉜던 것 같다. 친구도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었고 나 역시 자기 주장이 강해서 서로 지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기로서니 저 때의 일을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니. 새삼 눈물이 겨워 오누나, 이다. 친구, 모쪼록 건강하기를…….♧
오늘부터 『영혼의 비탈』을 연재 당시처럼 하루 한 회분씩 게시해 보기로 한다. 물론 ‘가능한 대로’라는 단서를 붙이는데, 그러노라면 혹 당시의 그 어떤 느낌이나 기분 따위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앞(위)에서 잠깐 밝혔다시피, 당시 처음에는 한 주일 6회분의 원고를 써서 연한 카키색 서류봉투에 넣어 봉한 다음 좀 멀리 떨어졌지만 산책 삼아 우체국까지 걸어가 ‘속달 등기’로 우송시키곤 했다. 집을 나서서 도로를 따라 걷는 대신 가로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수인 산업도로 밑으로 뚫린 굴다리를 통과해 건너편에서도 역시 가로공원 산책로를 따라 걸었던 관계로 일반 도로를 걷고 횡단보도 따위를 건너는 일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제대로 산책을 하는 셈이었다.
거의 일 년쯤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팩시밀리를 한 대 장만하면서부터는 우체국에 가는 일 없이, 한 주일 분의 원고를 미리 쓰는 일도 없이 그날그날 원고를 써서 집에 앉아 전송하곤 했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블로그 이웃인 소설가 우선덕 님이 당신도 겪었다며 기억해 줬다. 오현경 씨라고. 밎다!!!) 그 무렵 문인들을 찾아다니며 워드프로세서와 팩시밀리를 팔아먹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박완서 씨도, 이문열 씨도 자기한테서 샀다며 몇 번씩 찾아와 졸라댔다. 결국 그에게서 워드프로세서를 사고 그 다음에는 팩시밀리까지 사게 된 것이다. 그가 자기 입으로 하는 얘기로 미루어 보면 그렇게 얼마나 졸라댔는지 워드 작업을 하지 않고, 또 팩시밀리를 사용하지 않거나 굳이 이용할 필요가 거의 없음에도 팔아준(?)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그것도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당시를 추억하듯 한 회분씩 게시하다 보면 나의 고교 때부터 오랜 절친인 김기영 시인의 시집에 실린 시들을 모두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에서 몇 편 선별적으로 소개했지만 이제부터는 차례대로 소개하기로 한다. (설마 저작권 사용료를 내라고 하지는 않겠지?) ☆
첫댓글 그렇지요
학창시절에 그 수십년이 흐른 오늘에
미안하다고 함은 진정한 벗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