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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는 축복의 통로다
20: 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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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창조의 원리가 있습니다. 새는 공중에 살고, 물고기는 물에 살고, 나무는 흙에서 살고, 소는 풀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소는 초식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소에게 육식을 시키자 광우병이 나타나 소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창조의 원리를 따라 살게 하셨는데, 그 원리 중의 하나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프랑스 무신론 혁명 당시의 일입니다. 주일예배를 막기 위해 일주일을 10일로 바꾼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산업의 생산량이 40%나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러시아 혁명 당시의 일입니다. 레닌이 주일을 없애기 위해서 전격적으로 일주일을 8일로 늘렸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 생산량이 30%나 감소했습니다. 레닌은 당황해서 이번엔 일주일을 6일로 줄여보았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줄어든 생산량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주일을 7일로 되돌려 놓자 신기할 정도로 생산량이 원래대로 회복된 것입니다.
핸드폰은 사람이 만들었는데 배터리를 정기적으로 충전해야만 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자동차도 연료를 정기적으로 채워야 합니다. 사람도 1주일에 하루, 주일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재충전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는 영육의 탈진의 예방책이며 스트레스가 가득한 이 세상을 이기기 위한 예방약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400년 동안 쉬어본 적이 없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쉬라고 하시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사람도 가축도 400년 동안 잔인한 노동과 무서운 채찍 아래 자유를 박탈당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루 쉬도록 안식일을 정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배려였습니다.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5-10계명은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련된 4계명입니다. 이 말씀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개인의 영육에도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에 잘 가질 수 있는 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은 살인이나 간음보다도 안식일에 대해 하실 말씀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제 4계명은 십계명 중에서 내용이 깁니다. 길다는 것은 그 만큼 중대하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안식일 제사를 지내는 것은 세상 일이 잘 풀리나 막히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때 건강의 복을 누리고 물질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11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복되게 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을 거룩하게 했다는 것은 그 날은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일에 참여하는 자는 그 영혼이 거룩해집니다. 그 마음과 육체도 거룩해집니다. 육체가 거룩해지면 모든 육체의 질병까지 깨끗하게 치유를 받고 건강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약의 율법이라고 오늘 안 지켜도 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명령대로 안식일은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올바르지가 않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주일로 바뀌어졌습니다. 예수님께 부활하신 날, 즉 안식 후 첫 날을 주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에 불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시고 부활하신 날이 안식일의 실체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주님의 날, 즉 주일이 안식일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8에서 주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셔씁니다.
누가복음 24:1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 후 초대교회는 안식 후 첫 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 날 즉 주일에 주일예배를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주일예배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주일예배를 받으시고 건강과 물질과 자녀의 축복을 주십니다.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는 자는 축복의 통로가 막힙니다. 마치 수도관이 막혀서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안식일 날 제사를 드리지 않을 때 개인과 사회와 국가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의 품안은 어디입니까? 바로 주일예배가 하나님의 품안입니다. 주일예배 즉 하나님의 품안을 떠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지켜 주실 수가 없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미국으로 이민 간 지 10여년쯤 된 교포 부부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일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바닷가로 놀러가자"는 것이었고, 부인은 "그래도 명색이 교회 집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주일날 예배 안 드리고 놀러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주장도 일리가 있고, 부인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민생활이란 것이 고달프고 힘들고 피곤한 생활의 연속이 아닙니까? 미국사람들의 생활자체가 즐기기 위해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생을 즐기고 다시 쓴 돈을 갚기 위해 일하는 생활을 반복하기 때문에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저마다 앞 다투어 야외로, 바닷가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사람들의 삶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들의 삶에서도 보편화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부인은 한주간의 일속에서 너무 지친 남편이 모처럼 꺼낸 말이고 자신도 피로를 씻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태평양, 우거진 나무 숲....., 그늘 아래 앉아 밥을 짓고 고기를 굽고 해서 함께 온 친구들 부부와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으례 뒤따르게 마련인 술을 주거니 받거니 마시고 떠드는 가운데 해가 질 때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 돌아가야겠기에 짐을 다 쌌습니다. 친구들이, 걱정이 되어서 "너 운전할 수 있겠니"라고 하자 집사인, 그 남편은 "야 걱정하지마 이 정도는 아무 문제가 안 돼."하면서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바닷가를 떠난 지 채 30분도 안 되어서 앞에 오는 콘테이너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현장에서 죽고 남편은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죽고 말았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남긴 두 마디는 "주일 날 교회에 갔더라면..." "술이 원수야"라는 말이었습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일 날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안됩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이 있더라도 바쁜 일과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일예배를 드리고 다른 일을 해야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가지고 주일예배에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안식일 제사를 잘 드릴 때는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다윗 왕, 솔로몬 왕 때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오늘날도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일예배를 잘 드리면 평탄과 형통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에릭 리들은 영국대표로서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 경기의 금메달 후보였다. 그러나 100m 경기 일정이 발표되었는데, 첫 예선 일자가 7월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였다. 그는 그 일정표를 보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 뜁니다."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습니다. 그의 그런 결정은 그의 주일성수를 위한 자기 희생적 결정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한 일만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에릭 리들의 100m 출전포기 소식을 들은 영국 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 척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100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6일 주일에는 스콧츠 커크 장로교회에서 간증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날 에릭 리들은 경기장에 나가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100m 경기에서는 영국의 헤롤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에릭 리들보다 약간 뒤졌습니다. 에릭 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릭 리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200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m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400m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였습니다. 예선에서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 같은 선수들은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후보로 각광을 받았었습니다.
드디어 결승전이 왔습니다. 에릭 리들은 신들린 사람과 같이 무서운 속도로 첫 코너를 돌았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불안감을 표현하였습니다. 에릭 리들은 임바흐, 피치등의 우승후보를 제치고 47초6 이라는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쪽지가 응답되었던 것이다.
"구약에는 이런 글이 있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 최선의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 바로 사무엘상 2:30의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내가 존중할 것이고 나를 멸시하는 사람들을 나도 멸시할 것이다.’라는 말씀이지요.
에릭은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처음 200m는 내 힘으로 뛰었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뛸 수 있었습니다
에릭 리들은 고국으로 돌아와서 얼마 후 "내가 받은 메달보다 더 위대한 영광의 메달이 있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고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보장된 출세, 안정된 삶 등을 뒤로 하고 중국으로 떠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돕자 일본군은 그를 스파이로 몰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에릭 리들은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감옥에서 신앙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그는 42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숨을 거두지만 숨질 때 얼굴에서 빛이 났고, 찬양과 경배 속에서 인생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감옥 옆 작은 동산에 그를 묻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웅, 에릭 리들 여기에 잠들다."
결국 에릭 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1981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불의 전차’라는 영화의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의 핵심인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주일예배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주일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자녀들이 잘 되는 복을 주십니다.
주일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품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거하는 가장 중요한 거룩한 행위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일예배가 무엇이며, 주일예배가 왜 중요하며, 주일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축복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주일예배를 무시하지 맙시다. 주일예배를 가볍게 여기지 맙시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에 주일예배를 둡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주일예배를 통해서 놀라운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