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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죠. 이제 가을걷이 시즌이 되면서 우리 고주리 들녘도 농사 결실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되었다고 모든 농산물이 풍성한 결실로 우리에게 찾아오진 않습니다. 풍년이 되는 때가 있고 흉년이 되는 때가 있고 평년작이 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풍년, 흉년을 판가름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중 하나가 태풍인데 올해는 태풍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가을을 맞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 가지 요인은 여름 장마철 폭우인데 올해 이 정도의 폭우가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 지는 좀 더 지나 결실을 거둬봐야 할 듯 합니다. 매년 수확철 결실에 대한 기대를 분석하는 기사를 살펴보니 어느 해는 바람, 어느 해는 비를 흉년의 요인을 보기도 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할 때 여름철 더위는 농작물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같이 생각되지만 농사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 그렇지만은 않은 듯 합니다. 여름철에 너무 더워도 농사에 문제가 생기고 평년보다 평균기온이 1~2℃만 차이나도 농작물 작황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이건 수산물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특히 올해 우리 대한민국 주변 해역의 해수 온도가 너무 높아서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많은 해파리, 그리고 열대지역에서 사는 식인상어같은 것이 몰려오면서 조그마한 생선을 다 잡아먹고 주요 어종도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축을 키워 파는 축산물도 더위, 추위, 전염병 등이 크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농산물이나 수산물, 축산물까지 여러 조건이 맞아야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한 해 결실은 얻지 못하고 망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디 이런 1차 산업만의 문제일까요? 제조업과 같은 2차산업, 서비스업과 같은 3차산업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한 해 결실이 크게 변동한다고 합니다. 매년 갑작스럽게 생겨나 경제환경, 국제정세, 여러 가지 방해요인등이 생겨나서 매출이 줄어들고 심지어 심지어 직장폐쇄와 직업을 잃게 되는 일들을 수 없이 많이 보게 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의 생계와 우리의 수입에 방해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해 보면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 우리의 신앙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인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속에 열매를 맺어 성장해야 할 우리의 신앙이 방해받도록 만든 것들이 우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으로 열매맺고 말씀으로 성장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말씀으로 성장하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으로 성장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첫째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쳐주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입니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신앙적인 열매를 맺고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 모든 상황을 아시고 모든 일들속에서 우리 필요를 채우시고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말씀해 주신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삶 속에 있는 어려움을 해결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 삶 속에 오셔서 말씀해 주셔야 가능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태어나심”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대화자”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해결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을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공유함과 교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소통하며 함께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탄마귀의 유혹으로 죄에 빠진 인간은 그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게 되었습니다. 그 단절을 끊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수준으로 올라서든지 하나님께서 인간 수준으로 낮아지셔야 했습니다. 눈높이가 맞지 않고서는 절대 소통이 될 수 없습니다. 서로 눈높이가 맞아야 소통이 되고 대화가 됩니다. 하지만 이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과 인간이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까요? 인간이 하나님 수준의 눈높이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인간 수준으로 내려오셔야 했습니다. 인간이 가진 죄 문제를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직접 오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 자리를 버리고 죄인의 자리,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존재했던 분,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그 분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간을 살리고 인간을 유익하고 풍성하게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말씀을 들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창조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이고 영원한 구원이며 영원히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성장을 위해 가장 기초적인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장 기본이 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한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이름있는 선생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워낙 총명해서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아는 아이입니다. 좋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하고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그 어머니가 다시 와 “어떻습니까? 매우 똑똑하죠?”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아이가 말씀하신대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인 것 같습니다만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를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신앙 속에서 깨달아야 할 기본이 뭘까요?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방문하셨습니다. 이들을 대접하기 위해 언니인 마르다는 분주히 저녁식사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식사 준비를 하지 않고 예수님 옆에 앉아 예수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그 모습을 보며 예수님께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맡기고 가만히 있는데 왜 가만히 있으십니까? 마리아에게 저를 좀 도우라고 말씀해 주세요.”라며 불평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좋은 쪽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라며 오히려 마리아를 두둔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사 준비하며 수고하고 있는 마르다보다 말씀을 사모하며 예수님 곁에 있고 싶은 마리아를 기뻐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모두 받으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배우는 방법은 바로 기록된 말씀을 받아 섭취하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심어주셔서 살아 역사하도록 우리를 성령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저 지식적으로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신실한 연구가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두뇌, 우리의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감동, 하나님의 역사,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고주리교회도 올 해 초부터 설교를 듣기 전 성령님께 우리를 맡기고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하고 말씀을 듣지 않습니까? 기도의 역사도, 찬양의 열심도, 봉사와 섬김의 열정도 말씀이 기초가 되어져야 하는데 그 말씀의 바른 이해는 성령의 조명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신앙의 열매를 맺고 참 그리스도의 제자로써 칭찬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우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가능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신 기록된 성경 말씀을 잘 읽고 배우며 신앙생활 하실 때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으로 성장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둘째로, 말씀을 방해하는 것을 뿌리쳐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예수님께서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하나님 말씀이 세상 가운데 그리고 우리 심령 가운데 심겨지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말씀이 씨고 그 씨가 열매를 맺는 것이 신앙 가운데 뿌리박힌 참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씨를 많이 뿌리지만 그만큼 뿌리내리고 싹이 나고 열매맺는 것은 정말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의 씨를 뿌리고 말씀이 열매맺는 것을 크게 방해하는 존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탄마귀’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귀에 들려지지 않도록 방해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과 병행을 이루는 마가복음 4장 1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는 말씀에 대해 이렇게 해석해 주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 15절입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사탄은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어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을 싫어하고 방해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사람들에게 들려지자마자 나타나서 말씀이 들려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에서 사탄이 사람들이 말씀을 들었을 때 ‘즉시 와서 말씀을 빼앗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여기서 자세히 살펴볼 것은 말씀이 떨어진 곳이 ‘길 가’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길 가’를 굳어진 밭이라고 생각하고 말씀을 받으려면 우리의 마음을 갈아서 옥토와 같이 만들어야 한다라고 적용합니다. 지만,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면 이 ‘길가’는 이미 굳어있는 땅입니다. ‘길 가’는 사람과 차가 다니는 도로입니다. 우리가 도로를 갈아엎지는 않지 않습니까? 도로는 이미 사람과 차들이 다녀서 굳어진 땅을 갈아엎는다고 논과 밭으로 바뀌어 지지는 않습니다. 이미 말씀이 들어갈 수 없는 상태의 땅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을 뿌려지는 곳을 우리의 마음이라고 본다면 이 길가는 아예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가까이 할 수 없는 상태의 외부를 뜻할 것입니다. 사탄은 말씀이 우리에게 뿌리내리기 전에 아예 없애버린다는 사실입니다. 혹 말씀이 그래도 조금 괜찮은 곳에 떨어져도 사탄은 말씀을 방해하고 없애버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3장 5, 6절을 보십시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사탄은 사람들에게 말씀이 찾아와서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말씀에 은혜를 받은 상태가 되어도 열매 맺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큰 은혜를 누리며 열매맺고 성장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씨가 돌밭에 떨어져서 흙이 많지 않아서 싹이 나왔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 죽었다고 말씀하시며 마가복음 4장에서 이렇게 해석해 주십니다.
마가복음 4장 16,17절입니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말씀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말씀이 삶 속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신앙생활하면서 어려운 상황이 생길 때 말씀을 버리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때문에 일어나는 환란과 박해에 굳건한 신앙이 없는 사람은 넘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가 알려지지 않은 곳, 종교로서 인정받지 못한 곳, 그런 선교지에서는 성경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박해 원인이 되고 모여서 함께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것이 핍박의 이유가 됩니다. 그런 박해와 핍박에 신앙을 포기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심령이 말씀이 열매맺지 않은 상태가 되면 말씀으로 인한 박해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고 신앙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이 사회에서 불신가정에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들었기에 그 말씀대로 살아야겠는데 그 말씀이 가정의 환경, 가족들의 가치관, 가정의 모든 활동과 경조사문제와 충돌될 때 신앙을 지키기가 정말 힘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삶이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을 싫어하고 어떻게든 막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탄이 아무리 인간보다 큰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영적인 존재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유혹한다고 해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 우리 성령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땅에 복음이 오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되어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탄마귀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미혹하고 인간에게 복음이 들려지는 것을 막으려고 처절하게 애쓰는 집요함은 정말 경이롭습니다. 여전히 우리 심령에 복음이 뿌리내리는 것, 우리 삶에 말씀으로 열매맺는 것을 막고 있는 사탄의 집요함으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신앙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방해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을 방해하는 모든 환경이 사라지도록 기도하며 말씀으로 성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으로 성장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셋째로, 말씀을 잘 받을 수 있는 심령밭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 8,9절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신앙의 열매 맺음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을 때 깨닫는 것이 허락된 사람이 있고 보여줘도 보지 못하고 들려줘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이해되고 깨닫게 되어서 감동받고 변화되어야 제대로 된 신앙인이 되어 말씀으로 열매 맺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고 그것이 완전한 진리가 되시는데 오늘 본문을 보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시는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신이신 예수님, 말씀을 계셨던 분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말씀하시는데 들을 귀가 없어도 들을 귀가 열려지고 들을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임하지 않고 우리 속에 구원이 허락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천국복음을 완벽하게 보여주며 완벽하게 말씀주셔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여줘도 믿지 못하고 들려줘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12장 2절입니다.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제가 제 대학교 학창시절 얘기를 몇 번 말씀해 드려서 제 대학 학부시절 교수님들에 대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알다시피 저는 학부를 일반대학교 문과대학에서 독어독문학 학사학위를 전공했습니다. 독어독문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성경의 내용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미 박사학위를 가지신 교수님들 대부분은 학문적 영역에서 성경을 많이 연구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다닌 학교 그 당시 교수님들은 성경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 안다고 하지만 깊이 있는 본질적 내용은 알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목회자의 목회자로 불려지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성령이 함께 하지 않기에 성경을 알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성령 안에서’ 읽지 않으면 성경은 단지 시집이나 소설집 등 문학작품 중 하나로만 여겨질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가장 존경한 설교자 조지 휫필드의 설교에 대해 평가하면서 “죠지 휫필드의 설교는 지적인 능력이나 논리적 설명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책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는 바입니다. 조지 휫필드는 성령의 능력과 기름부음을 느끼지 못하고 설교한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그러나 이와는 다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이드존스는 설교에 대해 말할 때에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달하는 연설, 이것이 설교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로이드 존스목사님은 성령의 능력과 기름 부으심을 사모했던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풀이하는 것이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교하는 것이나 결국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전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입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신앙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하나님 백성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행복과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냥 듣는다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지식와 성경적인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성경적 지식, 성경적 지혜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고 깨닫게 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가 똑똑해져서 성경이 이해되고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이 나를 주장하시고 나를 깨닫게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공부할 때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신앙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열매맺어 신앙의 귀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8절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말씀이 우리에게 뿌리내리고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풍성해지고 말씀 속에서 우리가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을 우리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집중할 것은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적용하고 말씀이 신앙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탄은 어떻게든 말씀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개인사정, 가정형편, 직장의 분위기, 사회적 상황등을 이유로 말씀이 우리에게 오지 않도록, 말씀이 오더라도 내가 받아들일 상황이 안 되도록,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도록 사탄은 방해합니다. 말씀과 가까이 하지 못하고 말씀과 내가 괴리되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어떻게든 말씀과 내가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어떤 때는 육체적으로 피곤하게 만들고 여러 가지 일이 복잡하게 얽히도록 만듭니다. 말씀을 읽거나 말씀을 연구할 형편이 안되도록 만듭니다. 말씀을 읽을 때 마음이 집중할 수 있도록, 육신이 피곤하거나 바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람들이 찾아와 세상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해서 말씀을 읽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탄은 어떻게든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묵상하거나 배우는 것을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말씀으로 30배, 60배, 100배 결실 맺는 영적 은혜가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이해되고 말씀 속에서 큰 힘을 얻고 말씀대로만 살았더니 항상 하나님의 은혜, 사랑, 인도하심을 경험했다는 간증으로 살아가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께 매여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님, 우리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탄이 어떤 계략으로도 우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말씀 깨달음과 말씀에 뿌리박히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