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교훈
남한산성을 마천역 방향에서 우익문(右翼門)으로 두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이다. 천호역에서 오전 10시 49분에 만나서 다섯지기들이 향하는 곳이 남한산성이다. 남한산(南漢山)의 높이는 460m이다. 해가 일찍 떠서 늦게 진다 하여 일장산(日長山) 또는 주장산(晝長山)이라고도 한다. 산성의 평균높이는 300~350m이며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다. 천연의 요새를 이루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성을 쌓아 왕조를 세운 바 있다. 울창한 숲과 기암절벽의 절경이 어우러진 산성의 유적을 중심으로 남한산성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36.45㎢ 산성을 비롯한 사적지이다. 남한산성은 사적 제57호로 성 내의 유물이 경기도 유형문화재이다. 축성 당시에는 규모가 작았으나 조선시대 이후 수차례의 훼손과 증축을 거듭하여 현재와 같이 되었다.
수없이 찾은 곳이나 수어장대(守禦將臺))에서 몇컷의 기념 사진을 폰에 담는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4장대 중의 하나로 인조때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이다. 수어장대란 요새 방어를 맡은 수어사(守禦司)가 지휘와 명령하는 곳이다. 근처에서 가볍게 간식으로 막걸리 더덕무침 초코칩등으로 갈음한다. 성벽을 따라서 남문인 지화문(至和門)을 통과하여 산성동 버스정류장까지 하산이다.
모란역 근처의 장어구이집으로 들어선다. " 야 ~~~ 나는 새벽 다섯시면 일어난다," "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뭐 하냐 이 녀석아 ~ 박달나무라도 휘젓냐 " " 그런 거 끝난지도 몇년이 지났을 텐데 ~~~ " 들이키는 ONE SHOT의 술잔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다. " 남자 녀석이 밥을 하다니 이놈아 너는 마누라도 없냐 " " 요즘은 너 같은 생각을 가지면 마누라들이 모두 돌아선다 " " 특히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아내 남편은 구별이 없는거야 " " 그렇지, 서로가 바쁜 일상생활이니까 남편이 밥도 청소도 설거지도 하면서 같이 사는거야 " " 야, 나는 물 한컵도 마누라가 갖다가 바쳐야 마신다, 너희 같은 인간들과는 상대가 안된다 " " 예전부터 남자가 할 일이 있고 여자인 여편네가 해야 될이 있는거야 " 다섯명의 남정네 노객들의 의견이 상충하고 있다. 집안일은 전적으로 아내가 모두 처리해야 된다는 즉 남편 우월주의를 부르짖는 동기 두명이다. 필요할 때는 남편도 아내의 일이라고 여기는 설거지 빨래 밥짓기등도 도와야 된다는 두명의 신세대파가 있다. 나머지 한 명은 아내를 도와주고 대신하려는 벗이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물 한컵도 자신의 손을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다. " 주방은 내 살림이니까 얼씬도 하지 마시라 "라는 아내의 한마디뿐이다. 다섯명의 남편들도 세가지로 주장과 생활상이 다르다. 우리들의 현재 위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예전에 나의 아버지처럼 아내를 몸종이나 시녀처럼 다루던 세월도 있다. 우리네 자손들은 어떤가.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같을 수도 있고 바뀔수도 있는 현실이다. 아내와 남편의 생활상이 명확히 구별되지는 않는 요즘이다. 삼강오륜에 명시되여 있는 사항은 남녀평등과는 동떨어진 꼰대들의 망상일 뿐이리라. 특히나 부위부강(夫爲婦綱)과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는 두개의 구절은 여성의 인권(人權)이라는 단어도 없을 때의 유물(遺物)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10대의 어린 나이때부터 내 아버지로 부터 들어온 삼강오륜과 주자십회를 떠올리게 된다. 방안의 벽면에는 아버지가 직접 붓글씨로 아로새긴 교훈이다. 왜 내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저토록 가정의 가훈으로 불문율(不文律 ,ふぶんりつ , an unwritten law)로 회초리를 드는 것일까. 그 당시는 무조건 따라 외울뿐으로 지겹고 귓등으로 흘리고 무슨 뜻인지도 관심 밖이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자녀들도 성인이 되고서야 되새긴 순간이다. " 삼강오륜과 주자십회는 항상 가슴속에 담고 살거라 " 아들이 며느리랑 신혼여행 다녀온 날에 첫 가훈처럼 보여준 기억도 새롭다. 묵묵부답이다. " 아빠 며느리는 한문을 전혀 배우지 않았어요 " 며칠 후에 아들이 들려준 대답이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세가지의 도리와 다섯가지의 행하여할 것을 말한다.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 삼강이다. 오륜은 "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불친가족소후회(不親家族疏後悔) 소불근학노후회(少不勤學老後悔) 안불사난패후회(安不思難敗後悔) 부불검용빈후회(富不儉用貧後悔)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 불치원장도후회(不治垣墻盜後悔) 색불근신병후회(色不謹愼病後悔) 취중망언성후회(醉中妄言醒後悔) 부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 " 이상 주자십회(州子十悔)이다. 열 가지 모든 일에는 항상 때가 있고 때를 놓치면 뉘우쳐도 소용없음의 뜻이다. 살아가면서 보통 때 유사시에 대비하자는 내용이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기술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 날마다 적응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내일을 준비하라'는 말은 어쩌면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른다.
80의 나이가 내일인 노객(老客)에게 아직도 심금을 울리고 있는 두가지가 있다. 부자유친(父子有親)과 취중망언성후회(醉中妄言醒後悔)라는 경고등이 항상 마음을 옥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55년전 내 나이 23살에 내오마니는 아들인 내 나이 35세인 43년전에 두분 모두 하늘나라에 떠나신 것이다.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요 국내여행 용돈 한번 손에 쥐여 드리지 못한 불효 막심한 아들녀석이렸다. 한마디로 부자유친(父子有親)이란 아버지의 교훈에는 근접치도 생각도 못한 존재이다. 술에 넋을 잃을 정도로 고주망태(酒鬼)가 되도록 퍼 마신(酔よいどれまで飲のんだ.) 하루 하루는 언제까지이던가. 자식들이 모두 결혼할 그 나이되도록 허발질의 계속이다. 자식은 물론 내 아내도 애비를 남편을 무엇으로 생각했을지 상상키도 어렵다. 알콜중독자(Alcoholic)로 제껴둔 인간이하의 존재는 아니었더냐.
" 이런 남한산성을 축조하느라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희생이 되었을까 " " 제대로 세끼 밥그릇도 제대로 접하지 못하던 서민이자 노동자가 아닌가 " 남한산성 성벽의 바같을 따라 걸으며 한마디씩 뱉는 벗들의 생각이다. 몇달 몇년을 산속에서 무거운 성벽의 돌들을 나르고 쌓느라 얼마나 많은 고역의 나날이었던가. 헐벗고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간 백성들은 수없이 많은 순간도 밟았을 것이다. 아내의 따스한 보리밥 한그릇과 시래기 된장국이 그립기도 하였을 테이다. 이러한 백성들의 넋과 혼이 서린 남한산성이다. 피와 땀과 통곡의 소리가 심장을 울리고 있다. 사적지로서 도립공원으로 유형문화재이기도 하다. 국민학교 수학여행을 이곳에 오던 기억도 새롭다. 을지로 4가 영희국민학교에서 버스 몇대에 나누어 타고 남한산성행이다. 수어장대를 들어섰는지 무엇을 보고 배웠는지 기억도 없다. 앞 뒤에서 달리고 있는 버스로 흙먼지가 앞을 가린다. 꾸불꾸불 산성으로 오르는 비포장도로가 풍기는 선물만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요즘은 등산객들을 비롯하여 관광객들과 행락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1636년 청나라의 12만 대군의 침공을 받아 조선시대 인조가 군졸들을 이끌고 남한산성에 들어선다. 청나라 군졸들에 둘러쌓여 결국에는 47일만에 백기를 든다. 인조는 지금의 석촌호수가 있는 삼전도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세번의 절과 아홉번이나 땅바닥에 머리를 찧는다.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가 생각만으로도 국가의 존재감도 없는 자멸감 자괴감이 얼굴을 붉히곤 한다.
남한산성을 오를 때마다 잠실 석촌호수가를 거니노라면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 필름처럼 펼쳐진다. 수 많은 세월이 물같이 흐르고 흘러도 민족의 가슴 가슴마다에 새겨진 상처는 아물지를 않을 것이다.
두번 다시 이와같은 슬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만을 가슴 깊이 다짐에 다짐을 하곤 할뿐이다.
2022년 2월 26일 무 무 최 정 남 이곳을 보시죠 https://photos.app.goo.gl/1UyqNrYNpBMw3Dkf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