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자기 생명처럼 아낀 지도자”♡
<2012-08-20 김명배(호서대 초빙교수, 전 브라질 주재대사)>
필자가 청와대 파견 근무를 하던 시절,
1979년 1월 초 어느 날의 일이다.
‘이 편지를 모든 특보ㆍ수석ㆍ장관이 공람하시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메모가 적힌
두툼한 편지 한 통이 특보 실에 공람됐다.
8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 상당 부분이
대통령의 눈물로 온통 뒤범벅이 돼 있었다.
대통령이 이 편지를 읽는 순간 격한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눈물의 홍수’를 이룬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1975년 4월 사이공이 함락되고 월남이 공산화되는
절박한 순간에 대사관 직원과 교민들을 철수시키고
자신은 포로가 되어 4년 7개월간 혹독한 옥고를 치른
이대용 공사가 4년째 되던 새해 첫날에
순국을 각오한 충정을 담아
대통령께 드린 편지 내용은 절절이 감동을 주었다.
‘부족한 저에게 베풀어 주신 각하의
뜨거운 온정과 국민의 깊은 관심은
몽매(夢寐)에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으며 혼백(魂魄)이라도
각하와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삼가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대충 이러한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공사를 구해 내겠소”라고 절실한 심정을 피력해
회의장 분위기가 숙연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 공사의 송환을 위해 백방으로 힘을 썼고
극비 루트를 통해 편지와 비타민과 의약품을 보내는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겼다.
1980년 4월 비록 박 대통령은 고인이 된 뒤였지만
마침내 이 공사가 극적으로 송환돼 김포공항에서
조국의 땅을 밟는 순간 “대한민국 만세”를
목메어 외치던 모습이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뒤에 이 공사는, 혹독한 고문과 끈질긴
회유공작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온정과 국민의 관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희망의 끈’이 됐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국민을 아끼고 사랑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느끼게 하는 일화다.
▲1975년 4월 월남패망으로 우리 교민의 안전철수
중책을 맡아 끝까지 남아 있다가 공산 베트남
치화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를 당시의 이대용
주월 한국대사관 공사 모습.
이 사진은 외부로 보내져 고국의 가족과
정부 당국에 전해졌다.
ⓒ이대용 지음 〈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도서출판 기파랑).
박 대통령은 비전 있는 국가관과 국가 경영철학과
확고한 안보의식으로 국민을 이끌고 국정을 운영했다.
국민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아낀 피와 눈물의 지도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사명감을 갖고 일했으며,
국민은 경제건설에 기꺼이 동참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은 이후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갖지 못했다.
(글, 옮김, 編輯: 동해바다.)
첫댓글 지나간 세월이 다시금 생각나네요,
고박정희대통령님께서는 이토록 나라를 사랑하셨는데..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너무너무 그리원 집니다 코 끝이 찡하네요
영웅중의 영웅이신 분이시죠. 한송이 백합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무슨말이 필요하겠습니까.님의 그림자도 밟지못하는 정치폭군들을 보노라면 더욱 님을 떠올리게 합니다.사랑합니다♥♥♥
원조각하께서 제일 싫어 하시는 놈들이 빨갱이 새끼들이죠
빨갱이는 그렇다치고 개눈깔 리정히 이런 매국노 잡당들이 젤시러요 조져야한다 이기야요~
이 분의 발 바닦이나 닫으라 해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합니다.
고럼고럼요! ㅎㅎ쌔가 만발 빠질넘들이죠!!
역사에 길이 남으실 박정희 대통령 각하 내외분 그립네요
오늘 따라서 왜이리 원조각하 생각이 더날까~~~~
영원히 영원히 기억에 남으실 분이지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좋아요~좋아요~~~
등불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故 박정희 대통령님,육영수 국모님~
넵 공감입니다 음악 듣고듣고 또 듣고 합니다@@@
영원한 국부 국모님이십니다.
듣기좋은 음악이 너무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신대장님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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