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미만 의석일 때 타협정치 가능하다
2022.11.02
한국의 정치는 혁명과 쿠데타와 숱한 정치파동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시련을 딛고 성장한 만큼 성숙한 민주정치를 할 때도 됐건만 뒷걸음만 치고 있다. 21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생전에 한국정치를 4류라고 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살아 있다면 지금은 5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 정치의 퇴락의 가장 큰 원인은 압도적인 다수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수적 우위에 대한 자만심에 빠져 다수의 횡포를 일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체 300석 중 60%인 180석을 얻어 압승했다.
이 같은 총선결과는 전 국민에게 코로나 위로금이 지급돼 유권자들이 반짝 포만감을 느끼고 있던 순간 선거가 치러졌던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 총투표자 2,912만6천여 명 가운데 49.91%의 지지를 받았을 뿐인 민주당이 전체 의석의 60%를 차지했고, 그 60%의 권력을 100% 이상 행사하려고 한 결과가 대결 정치를 극렬화시키는 원인이다.
21대 총선의 투표율이 66.2%였으로 총유권자 4,399만여 명 중 1,486만여 명이 기권했다. 이들 기권자를 포함한다면 민주당의 득표율은 34%, 국민의힘 득표율도 25%에 불과하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자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민주당 65%, 국민의힘 75%나 되는데도 세상이 마치 자기들 것인 양하는 것이 양당 구조 속의 한국정치이다.
당시 민주당은 승리의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보수를 궤멸시켜, 20년간 집권하자”고 했다. 당시 그런 ‘희망찬’ 발언을 앞장서 입에 올린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달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20년 집권론’을 다시 입에 올렸다. “우리가 졌다고 해서 20년 집권론이 틀렸다고 할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 말 속에 민주당이 총선승리로부터 불과 2년 만에 치러진 지난 대선과 그 전의 지방선거, 그 전의 재보선에서 왜 잇달아 졌는지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직도 민주당은 절대다수당이라는 오만만 있을 뿐이다.
그런 오만으로 거둔 최대 성과라면 무엇보다 조국 추미애 박범계 법무장관으로 이어지면서 온갖 위법과 꼼수를 총동원한 검수완박법과 부동산 가격인상에 혁혁하게 기여한 부동산3법을 일방 처리한 것을 들 수 있다.
지금 민주당은 검수완박의 시즌 2로 대장동 특검 도입을 시도 중이다. 줄곧 특검을 반대해온 이재명 대표가 새삼 특검을 들고나온 것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유동규 본부장의 정치자금비리 폭로에 대한 물타기 시도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뻔히 알고서도 민주당이 그를 대표로 뽑은 것부터가 다수의석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여당이 어떤 공격을 하든 다수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자만의 결과이다. 민주당이 소수당이었다면 결정은 좀 더 신중했을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 정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하면 과반도 못 되는 지지를 받았으면서 전체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착각한다. 민의를 빙자해 무리한 정책을 추진한다. 압도적 과반의석이 위험한 이유이다. 이제는 사안별로 여야 사이에서 조정역할을 하는 제3의 정당이 존재해야 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여야 모두 말로는 협치를 얘기하지만, 실은 여야 모두 상대가 잘 하는 꼴을 못 보는 구조이다. 야당은 여당의 협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적을 이롭게 해 자당의 집권기회를 잃을 뿐이라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이 협치를 안 해주면 행정력이란 무기를 발동하면 된다는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기 일쑤다. 이태원사고 대책을 놓고 초당적 협력을 말하면서도 당리당략을 놓고 싸우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내각에 야당인사를 임명하는 연정을 말하곤 했으나 한 번도 성사된 예가 없다. 야당으로선 연정참여를 여당에 들러리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마뜩잖은데다, 책임을 공유하는 연정참여보다, 책임 없이 비판하는 편이 현실적으로 유리하다.
이러니 여야 간에는 상대에 대해 한마디 칭찬할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한국의 정치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정치로 빠져들게 된 원인이다. 상대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악마화해서 반사이익을 챙기느냐가 잘 하는 정치의 공식처럼 되었다.
거대 양당은 중도확장을 말한다. 그러나 이 역시 선거승리를 위한 선전구호이지 정작 중도세력이 들어가도 당의 주도세력이 되지 못하고, 양극단의 목소리에 묻힌다. 그런 극단세력으로 민주당에는 ‘개딸’과 ‘대깨족’ ‘처럼회’ 등이, 국민의힘엔 ‘핵관’들이 지적된다.
한 때 여야는 외연확장을 위해 2030세대 끌어들이기 경쟁을 폈다. 국민의힘에선 30대의 이준석을 당대표로 뽑았고, 민주당도 20대의 여성 박지현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발탁했다. 새로운 피를 수혈해 젊고 건강한 정당이 되기를 기대했으나, 그들은 조직 내에서 소통의 미숙함만 보인 채로 퇴장당했다.
젊음의 특장은 용기와 도전정신이나 그것은 인내와 희생정신과 결합할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눈앞의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성급함과 편협함으로는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두 사람의 좌절된 정치실험은 젊은 정치인들이 자라날 토양을 황폐화시켰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같은 한국 정치의 퇴행을 막을 길이 있다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30% 정도를 차지하는 거대 양당에 불만을 갖고 있는 유권자를 세력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야 정당이 40%대의 의석을 가졌을 때 최대 10% 정도의 의석을 갖는 제3의 정당이 탄생한다면 다수당의 독재적 정당운영에 대한 견제는 물론 소리 없는 다수를 대변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는다.
그런 정당이라면 정의당이 있지않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당은 의사결정이 이념편향적이어서 다수의 횔포나 이념편향을 조정할 능력면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시대전환의 조정훈 의원이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나타난 유일한 정치선진화의 싹이라고 할만하다. 40대인 그는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시대전환의 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민주당의 당적을 가진 적은 없다.
그가 주목돼야 할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정치목표가 양극화 해소라는 점이다. 경제적 양극화와 정치적 양극화의 해소가 그의 주요한 관심사다. 국회 내에 양극화해소대책 특위 구성을 주도한 것도 그다. 그의 성향은 좌파지만 추구하는 정책은 우파적이다.
그는 민주당의 특검법안 중 김건희 특검을 공개 반대했고, 대장동 특검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라고 밝힌다. 그가 반대한다면 대장동 특검은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월 국민의힘 불참 속에 진행된 검수완박법의 국회본회의 표결에서 그는 국민의힘과 합당한 국민의당 의원 2명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의힘 외의 야당 중에선 그의 반대가 유일했다.
그래서 그는 국민의힘 의원 같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것은 민주당의 무리한 입법시도에 반대한 것일 뿐 국민의힘이 다수당으로 같은 모습을 보이면 그는 민주당의원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치인이다. 22대 총선에서 시대전환이 10% 의석을 확보할 것인지 지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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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 및 사장, 한국신문협회 이사를 끝으로 퇴임했습니다. 퇴임 후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현재 한국 ABC협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입각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