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바는 인구 1119만여명, 국토 면적은 남한과 비슷한 10만9884㎢로 성장잠재력이 매우 큰 국가다.
쿠바는 1949년 대한민국을 승인했다. 그러나 1959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한국과의 교류가 단절됐다. 이후 쿠바는 북한과 '형제국'으로 불릴 만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최근까지 쿠바는 개방 속도는 더디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난과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가 북한과의 관계를 무릅쓰고 최근 우리와 손을 잡았다. 그 이유는 이런 경제적 상황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쿠바가 북한과 수교한 지 64년 만에 우리와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심화된 경제 위기가 배경이다.
한국과 쿠바는 미국 뉴욕에서 양국 유엔 대표부가 외교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
쿠바가 2005년 현대중공업의 진출을 허용한 것은 양국 관계가 확대되는 계기였다. 현대중공업이 소규모 패키지형 발전소를 쿠바 전역에 설치할 때 피델 카스트로가 공사장을 방문하여 “쿠바도 한국을 빨리 배워야 한다”고 했다. 카스트로는 아예 10페소짜리 지폐에 현대중공업이 수출한 이동식 발전설비(PPS) 도안을 집어넣어 ‘한국 배우기’를 장려했다.
2007년 1월 쿠바 정부는 새로 발행한 10디에즈페소(Diez pesos, 한화 약 1만8천원) 지폐 뒷면에 현대중공업의 이동식 발전설비(PPS) 도안을 삽입했다. 국내 대기업이 수출한 제품이 다른 나라의 지폐에 도안으로 들어간 것은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쿠바 정부가 이러한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2005년 쿠바 정부는 전력시설 부족으로 잇따라 정전사태가 빚어지면서 민심이 폭발 직전에 이르자 '에너지혁명(Revoucion Energetica)'으로 명명한 대규모 국책사업을 시작했다.
'쿠바를 밝혀라'를 슬로건을 내걸고 대대적인 발전 설비 확충에 들어간 것이다. 일본과 독일 등 내로라 하는 글로벌 발전설비 업체들이 모두 뛰어 들었다. 그러나 이 사업을 따낸 곳은 다름아닌 당시 발전설비 사업의 초년병과도 같았던 현대중공업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쿠바는 우리나라와 국교를 맺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현대' 특유의 부지런함과 성실성에 매료된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외상거래가 관행화돼 있던 쿠바 정부는 이례적으로 공사 선수금까지 10%를 내 줄 정도였다. 현대중공업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총 125만킬로와트(kW) 규모의 PPS 644기를 쿠바에 수출했다.
현대중공업이 세운 발전소는 쿠바 수도 아바나의 전력 30%를 책임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쿠바를 밝혀준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5년부터 쿠바 전역에 쿠바 전체 전력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888MW(464기) 규모의 힘센엔진 발전설비를 설치했고, 현대글로벌서비스는 발전소 운영을 위한 기술지원 및 자재 공급을 담당하며 쿠바전력청의 깊은 신뢰를 얻고 있다.
1921년 멕시코 한인 중 288명이 쿠바로 재이민을 갔다. 그 후손 1100여명이 생존해 있다. 1996년 제작된 영화 '애니깽'으로 알려진 멕시코 이민 1세대의 일부가 쿠바로 건너가 한민족의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쿠바에서는 10여년 전부터 K드라마 열풍이 불었고, 최근 들어 문화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어 배우기 바람이 불고 있고, 양국을 오가며 영화제도 열렸다. 한 해에 약 1만4000명의 한국인이 쿠바를 방문한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