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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통신 223/0825]깨꽃(사르비아)이 피다
마당의 작은 꽃밭을 날마다 바라보는데도, 언제 어느 꽃이 피었는지를 의식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어제 오후에야 깨꽃(사르비아) 한 송이(한 떨기가 맞나?)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도 기특해서 “아이고, 네가 피어났구나. 몰라봐서 미안하다”며 소리를 질렀다. 달포 전인가, 새벽 대문 옆에 놓여진 사르비아 10여포기, 누가 갖다 놓은지 지금도 알 수 없는데, 참 반갑고 고마웠다. 동네 어느 집에서도 이 꽃을 본 적이 없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살면서 ‘이런 일’이 생길 때가 제일 기분 좋다. 내가 자주 쓰는 ‘살맛 나는 세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제격'이다.
아무튼, 사르비아 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절로 읊어지는 시조 한 편. 고등학교 은사 구름재 박병순 선생님이 국어시간에 하도 여러 번 낭송한 세 편 중 하나로, 친구들도 대부분 외우고 있을 것이다. 최근 그분의 수제자가 암으로 세상을 떠, 우리를 잠시잠깐 우울하게 했다. 제목은 ‘사르비아꽃밭 앞에서’이다.
오뉴월 남방부터 벌겋게 피어나서
여름내내 내 가슴을 사르고도 남아
구월도 꼬박 이 안에 불을 질러 타누나
사르비아 넌 날 어쩌자는 것이냐
사르비아 넌 날 어쩌라는 것이냐
남몰래 활활 타는 속을 더 어떻게 사르리아!
날마다 너를 찾아와 너를 바라보는 것은
때때로 너를 찾아 너를 그리는 것은
타자던 그 불꽃 속에 뛰어들고 싶어서다.
사르비아가 피어나듯이 우리 벌겋게 피어나서
사르비아가 타듯이 우리도 벌겋게 타다가
벌겋게 벌겋게 타다가 저승길도 벌겋게
가람 이병기의 수제자였던 그분이 문학청년 시절, 어느 여인을 ‘남몰래 속이 활활 타들어’갈 정도로 연모한 듯하다. 낭송하면서‘사르비아’와 ‘사르리아’의 동음이의어같은 대비에 스스로 흐뭇해하던 은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분은 요즘말로 하면 전형적인 ‘꼰대’이셨다. 꼬장꼬장하고, 오직 시조밖에 모르는, 원칙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야단만 치는. 선생님은 사르비아처럼 벌겋게 벌겋게 타다가 저승길도 벌겋게 가셨을까? 2008년 별세. 그분의 아들은 전라고 7회. 경기대 국문과 교수이다.
그분의 대표작인 ‘음삼월’과 ‘설야’는 가곡으로도 나왔다. 시조가 아닌 자유시 ‘음삼월'은 고구려 황조가, 백수광부의 공무도하가, 백제의 정읍사, 신라의 제망매가, 고려의 가시리, 일제 치하의 아리랑과 김소월의 진달래꽃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정한시情限詩. 이별시離別詩의 계보를 이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내친 김에 ’음삼월陰三月‘도 오랜만에 읊어보겠다. 졸문칼럼을 참조하셔도 좋겠다. http://yrock22.egloos.com/2213539
달을 밟아
혼자서 거니는 밤이었다.
넘쳐 흐르는 달이
향긋한 향기까지도 풍기는
음삼월 밤이었다.
호면을 차고
호면을 차고
백조 나른 지
오랜
아아
호심에
스미는 달이여!
넘치는 달이여!
기다려도 기다려도
돌아올 리 없는 돌아올 수 없는
밝은 달이 멱감는
호심에
백조의 환영을
돌팔매 쳐보는
발길 허든한
음삼월 밤이었다.
아아, 꽃 한송이로 이런 시가 연상되어 낭송할 수 있는 ‘전원생활’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은 바로 이런 심경心境을 말하는 듯하다. 어느 선배는 술잔을 부딪치며 “인생 뭐 있나?”하면서 “알코올이지”라는 답변을 ‘강요’하는 습관이 있어 모두 웃곤 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생 뭐 있나?”하면 “꽃 가꾸기지”라고. 보름도 넘게 비를 퍼붓더니, 요며칠 머리를 벗길 정도로 폭염의 연속이다. 꽃들이 얼마나 목말라 했을 것인가? 그런데도 코스모스가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봉선화는 처자들의 손톱만한 마음을 기다리건만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미안한 마음에 30여분 동안 작은 꽃밭에 물을 주면서, 사르비아가 꽃을 피운 것을 뒤늦게 발견하여, 시 두 편을 낭송해 보았다. 자문해 보자. 우리가 눈 감고도 낭송할 수는 시는 몇 편이나 될까? 중고교 시절 좋은 시들을 많이 외웠어야 했는데. 그분이 비록 꼰대이긴 하셨지만, 그런 국어선생님으로 기억에 남아 얼마나 다행인가?
*꼰대는 은사를 폄하하려는 뜻은 아니니 오해없기 바란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우리 학교 다닐 때에는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최근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선배, 어른들을 가리키는 속어로 많이 쓰인다고 되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도록 우리 모두 노오력해야 할 일이다. ‘꼰대질’하는 어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될 일이다. 자식이나 자라나는 젊은이들의‘언행言行’이나 사고방식이 못마땅해도 ‘그저 그러려니’치부하고, 눈과 귀가 있어도 못본 듯 못들은 듯 처신해야 할 일이 많은 게 씁쓸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첫댓글 사르비아 꽃술을 따서 쪽빨면 달콤한 꿀맛이 나곤했는데 정말 요즘엔 사르비아가 잘 안보이던데 찾아봐야겠네요
이제 처서 지나가을이니 지난 2주간 집수리중 어제 책장 정리를 하면서 책 몇권을 챙겨두었다
지난 감정이 다시 생겨날지 몰라도 읽어봐야지
이렇듯 묵은 감성을 깨우쳐주는 영록친구가
고맙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