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故 이상업 강제 징용 수기 10년 만에 재발간
유족, 수기 근거로 소송 제기 ... 2심까지 승소 대법원 판결 앞둬
日 활동가 야노 히데키, “日 정부 터무니없는 거짓말 정면 반박”
강제 징용 피해자 고 이상업(李相業. 1928~2017) 어르신의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소명출판)가 10년 만에 재발간 됐다.
강제 징용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는 고 이상업 어르신의 참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회고록으로 2016년 첫 발간됐다.
1928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이상업씨는 1943년 15세 나이에 후쿠오카현에 위치한 미쓰비시머티리얼(구 미쓰비시광업) 가미야마다(上山田) 탄광에 끌려갔다. 굶주림과 폭압 속에 지하 1천 500미터 막장에서 하루 15시간의 채탄 작업에 투입돼 혹사 당했다.
그는 두 번에 걸쳐 탈출을 시도했지만 붙잡혀 혹독하게 매질을 당한 뒤, 세 번째 탈출 시도 끝에 성공해 해방 후 구사일생으로 귀환했다. 이후 3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퇴임한 저자는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을 수기(<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로 남겼다. 특히 수기에는 저자가 당시 탄광 작업 모습을 직접 연필로 스케치한 그림 네 점이 포함돼 그 의미를 더했다. 2017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회고록에는 세 번째 시도 끝에 마침내 탈출에 성공해 구사일생으로 고향 영암에 돌아오기까지 겪어야 했던 비참했던 실상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고인의 수기가 다시 주목을 받은 건 고인의 유족이 이 수기를 근거로 2020년 1월 미쓰비시머티리얼(구 미쓰비시광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서면서부터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이 담긴 이 수기는 재판에서 고인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중요 자료로 채택되었고, 지난 7월 23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승소한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 야노 히데키(矢野 秀喜)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 재발간된 추천사에서 ILO(국제노동기구) 강제노동조약 29호 조약을 근거로 “이상업 어르신이 전시 중 강요받은 노동은 강제노동조약 위반이다”고 강조했다,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은 “1943년 9월 마을 이장이 ‘징용 영장’을 보여주며 동원에 응하라는 통고를 받았을 때, 이상업 어르신의 나이는 15세였다.”며 “이는 강제노동조약 제11조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하에서 자행한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 기록물 등을 공개하지도 않고, 그 실상, 실태가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지 않고 있다”며 “이상업 어르신의 수기는 이러한 일본 정부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라고 수기 발간의 역사적 의미를 각별하게 평가했다.
그는 ”강제동원 체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머지않아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며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수기를 손에 들기를 바란다”며 추천사에 덧붙였다.
강제 징용 피해자의 비참한 현실을 담은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는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세종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또 일본어판이 출판돼 강제 징용 실상을 전혀 모르는 전후 세대 일본 시민들에게도 큰 충격을 던졌다.
2016년 발간된 수기는 절판됐다가, 소송이 제기되고 수기를 찾는 독자들이 이어지면서 ‘소명출판’에서 10년 만에 이번 달 재발간 됐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피해자의 생생한 경험이 담긴 남긴 자료가 가해자를 상대로 한 인권 회복의 근거가 됐다는 점에서 이 책은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며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사례”라고 말했다.
▲p167. 16,000원
2026년 9월 8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062-365-0815)
[추천사]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 야노 히데키(矢野 秀喜)
강제노동조약(ILO 29호 조약, 1930년 6월 채택, 1932년 5월 발효, 일본은 1932년 11월 비준)은 ‘강제노동’에 대해 ‘어떤 자가 처벌의 위협 아래 강요당하거나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노동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제2조). 즉, ‘본인의 자유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노동’은 모두 강제노동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조약을 비준한 국가는 가능한 한 짧은 기간 내에 강제노동을 폐지하도록 의무가 부과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폐지까지의) 경과 기간 중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만 예외적인 조치로서 사용될 수 있다”고도 규정하고 있습니다(제1조).
다만, 예외적으로 강제노동을 시키는 경우에도 그에 대한 제한·금지 조항을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18세 이상 45세 이하의 건장한 성인 남성만 강제노동에 징집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11조). 애초 여성을 강제노동시키는 것은 금지하고, 18세 이상 45세 이하의 ‘건장한’ 남성에 한정해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입니다.
또한, ‘강제노동에 대한 징집할 수 있는 최장기간은 노동 장소를 왕복해야 하는 기간을 포함해 60일을 초과할 수 없다’는 조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제12조). 1년이나 2년 동안 일하게 하는 것은 금지하고, 강제노동 기간은 길어도 60일까지로 한정했던 것입니다.
또한, ‘강제노동은 광산에서의 지하 노동을 위해 사용될 수 없다’는 규정도 명시했습니다(제21조). 탄광·금속광산에서 채탄·채굴 등 지하 노동으로 강제노동을 시킬 수 없다고 금지한 것입니다.
이 강제노동조약과 그 관련 규정에 비추어 보면,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라는 수기를 쓴 이상업 어르신이 전시 중에 강요받은 노동 동원은 강제노동조약 위반임이 명백합니다.
1943년 9월 마을 이장이 ‘징용 영장’을 보여주며 동원에 응하라는 통고를 받았을 때, 이상업 어르신의 나이는 15세였습니다. 이는 조약 제11조 위반입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미쓰비시광업 가미야마다 탄광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맡은 업무는 탄광 안에서 석탄을 채굴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조약 제21조에 위반됩니다.
이상업 어르신은 결국 다음 해인 1944년 11월경에 도망쳤지만, 약 1년 동안은 가미야마다 탄광에서 지하 노동을 강요당했습니다. 근무 기간은 60일을 훨씬 초과했습니다. 이는 제12조 위반입니다. 이상업 어르신은 수기를 통해 위와 같은 사실을 밝혔습니다.
또한 이 수기에는 식사가 형편없어 늘 배고픈 상황이었고, 탄광 현장에서는 일본인 감독자 등으로부터 일상적으로 폭력을 당했으며, 갱내에서는 낙반·발파 사고가 자주 발생해 사망 사고를 포함한 산업재해가 빈번했던 일, 근무 시간이 16시간에 달했으며, 점심시간은 겨우 30분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이상업 어르신이 일제의 침략 전쟁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 강제동원 피해자였음은 명확합니다.
이처럼 혹독한 강제 동원을 경험한 사람은 이상업 어르신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전시 중 일본에 노동을 위해 약 80만 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었습니다. 그중 30% 이상이 탄광·금속광산에 동원되었는데, 대부분은 이상업 어르신과 같은 혹독한 경험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탄광 등에 동원된 사람들 대부분은 배울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해, 일본어를 읽고 쓰는 것은 거의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조차도, 그 고통스럽고 가혹했던 경험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 경험을 구전으로 전한 분들도 계셨지만, 많은 분들은 해방 뒤에도 침묵 속에서 살아가셨고,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상업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가 발간 되었습니다.(2017년 1월).
그로부터 9년여가 경과했습니다. 이 수기 발간의 의의는 분명합니다.
첫째로,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체험을 기억을 바탕으로 재현-문자화하고,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다음 세대에 강제동원의 역사를 계승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하에서 자행한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 기록물 등을 공개하지도 않고, 그 실상, 실태가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유신회 소속 국회의원이 제출한 “‘강제연행’·‘강제노동’이라는 표현에 관한 질문 의안”에 대해, “한반도에서 본토(일본)로 이입한 사람들의 경위는 다양하며, 일괄적으로 ‘강제연행되었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답변서를 각의(국무회의) 결정했습니다(2021년 4월 27일).
이 답변서에서 일본 정부는 ‘이입’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입’이란 ‘옮겨 넣는 것’, ‘어떤 땅에서 다른 땅으로 물건을 옮겨 넣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단순한 ‘물건’으로 간주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무심코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건’에는 자유로운 의사나 주체성이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고 ‘물건’이나 다름없이 취급하며, 그저 일을 시키기 위해 ‘본토로 이입’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강제연행이라고 하지 않고 무엇을 강제연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답변서에서, “일괄적으로 ‘강제연행됐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등 일관성이 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업 어르신의 수기는 이러한 일본 정부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수기를 바탕으로 이상업 어르신의 유족들은 미쓰비시 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 후계 회사)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서울과 광주에서 미쓰비시 머티리얼을 상대로 한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상업 어르신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을 포함하여,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강제동원 책임을 묻는 소송이 총 5건 제기되어 현재 4건이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이상업 어르신의 수기가 강제동원 기업에 과거 청산을 촉구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일본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의 피고 기업은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철, 후지코시, 일본강관(현 JFE), 도쿄마사방적(현 TEIJIN)으로, 모두 군수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이 가장 많이 동원된 탄광·토목건설 관계 기업을 상대로 하는 소송은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특별법’ 제정(2004)으로 강제동원 피해 조사가 이뤄지고, 다양한 동원 현장의 강제노동 실태 등이 밝혀진 가운데, 마침내 한국 소송에서 토건·광산 관계 기업도 피고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모든 강제동원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모든 강제동원 기업이 고발되어 피고석에 앉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의 강제동원 소송에서 피고 일본 기업의 범위가 확대되는 데 이상업 수기가 크게 기여한 것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2026년 1월 1일 현재, 생존해 있는 한반도 외 지역 강제동원 피해자는 434명(남성 376명, 여성 58명)입니다. 이 중 100세 이상의 초고령자는 179명입니다. 강제동원 체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머지않아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업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가 재간행되는 의의는 대단히 큽니다.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수기를 손에 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