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9번째 편지 - 가왕 조용필이 하고 싶은 말
지난 일요일 조용필 콘서트를 다녀왔습니다. 조용필은 가왕이라 불립니다. 1950년생 72세이지만 코로나 전까지는 매년 전국 투어 콘서트를 했습니다. 코로나로 4년 만의 공연입니다.
공연 내내 팬들의 ‘오빠’와 ‘형님’ 구호가 장내를 뒤덮었습니다. 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때론 웃고 때론 울었습니다. 그의 노래는 그저 한낱 유행가가 아니라 제 삶의 동반자였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와 그가 부른 23곡 가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조용필이 코로나 시대의 팬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코로나로 지친 팬들에게 처음 던진 화두는 <꿈>입니다. 아무리 험한 시대를 살아도 꿈을 잃지 않아야 하지만 현실은 냉정합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꿈>
현실이 힘들 때마다 찾는 것이 있습니다. 추억입니다. 그 추억 속에는 늘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를 데려간 세월을 원망합니다.
“내 마음 외로워질 때면 그날을 생각하고/ 그날이 그리워질 때면 꿈길을 헤매는데/ 음/ 못 잊을 그리움 남기고/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단발머리>
그리움에 그리움이 더해져 그 소녀를 꿈속에서 만나 추억의 재회를 합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 소녀를 추억에서 지우도록 강요합니다.
“떠나버린 날들을 이제는 사랑이라 부르지 않으리 영원히/ 기약 없는 이별 뒤에 찾아와 추억의 서러움만 남기네/ 미워할 수 없는 그댈 지우며 눈 감은 내 가슴엔 눈물이” <추억 속의 재회>
그러나 조용필이 추억에만 머물고 있다면 그는 가왕이 아닐 것입니다. 그는 신곡에서 가왕답게 사자처럼 세렝게티 초원을 향해 달려갑니다.
“빌딩들 사이로 좁아진 시선을/ 더 넓은 곳에 놔두고/ 사람들 틈으로 구겨진 어깨를/ 두려움이 없이 열어봐/ 여기 펼쳐진/ 세렝게티처럼 넓은 세상에/ 꿈을 던지고 예/ 그곳을 향해서 뛰어가 보는 거야” <세렝게티처럼>
그는 팬들에게 우리는 뿔뿔이 흩어진 개인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화면에는 낯익은 가사가 흐릅니다.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친구여>
조용필은 세월을 통해 드디어 깨닫습니다. 삶의 해답을, 그것은 사랑입니다. 남녀의 사랑에서 시작하여 더 넓고 깊어진 그 사랑 말입니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바람의 노래>
결국 조용필은 세렝게티 평원에서 킬리만자로 산으로 올라갑니다. 조용필은 읍조립니다. 그 자신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됩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젊은 날에는 이 가사가 그리 좋았습니다. 친구들 모두 표범이 되고 싶었습니다. 비록 굶어 죽더라도 썩은 고기는 먹지 않겠노라 다짐했지요. 그러나 이 날은 다음 가사에서 주룩 눈물이 났습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환갑이 넘은 나이에 과연 내가 산 흔적은 무엇일까 되짚어 봅니다. 가뭇없이 사라진 연기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젊은 날에는 많은 시간이 무모한 꿈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무모하게 꿈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용필은 여전히 무모한 꿈을 꾸자고 충동질합니다.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킬리만자로의 표범>
남자들은 그렇게 생겨 먹은 모양입니다. 아무도 아는 이 없어도 이유도 없이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DNA를 가진 모양입니다. 저 역시 또 오르고 싶습니다. 그 꼭대기에 아무것이 없더라도 말입니다.
조용필은 우리 모두 떠나자고 유혹합니다. 방황하는 우리들, 꿈을 잃어버린 우리들 모두를 미지의 세계로 내몹니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떠나요/ 사랑의 노래를 멈추지 말아요/ 언제나 끝이 없어라/ 알 수 없는 질문과 대답” <미지의 세계>
조용필은 앵콜 마지막 곡으로 결정적인 노래를 합니다. 우리 모두 여행을 떠나자고 외칩니다. 공연장은 모두 하나가 되어 외칩니다.
“여행을 떠나요/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함께 떠나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여행을 떠나요>
조용필은 2시간 콘서트를 통해 코로나 시대에 도시의 한 켠에 살고 있는 초라한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려 한 것 같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기 위해 단발머리 소녀와 만나게 해 주었고, 우리는 그 추억에서 사랑의 힘을 되찾았습니다.
조용필은 사랑의 힘을 원동력 삼아 세렝게티로 달려가자고 신곡을 통해 우리들에게 외치고, 그 옛날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노래한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다시 기억나게 해주었습니다.
이날 우리 모두는 그의 노래를 통해 절망에서 희망을 만났고, 좌절에서 도약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조용필은 역시 가왕이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11.28.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