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길 人生二路步-인생은 두 가지 길을 걷는다 一道不順路-한쪽 길은 일마다 꼬이는 길 他道每解决-다른 쪽길은 매사에 잘 풀리는 길 兩道生涯步-두길 다 인생이 살아가는 길이다. 自欲之道有-자신이 가고 싶은 길이 있어도 如意不能道-뜻대로 못가는 것이 인생길이다 김인후(金麟厚)
건너뛸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Should we skip it or go back?)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한국 속담(俗談)이 아니다 !!
우리는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는 말을 중고등학교시절에 배웠다. 송도(松都)는 지금의 개성(開成)의 옛름이다. ※송도삼절(松都三絶)-송도에 있는 시(詩) 서예(書藝) 그림(畵)이 빼어남
먼저 조선 중기의 최고 기생 시인(詩人) 황진이(黃眞伊)의 “송도(松都)”제목의 한시(漢詩) 한수를 쓴다.
寒鐘故國聲-차가웁게 들리는 종소리는 옛나라때 그대론데 南樓愁獨立-누각(樓閣)의 남쪽 망루(望樓)에 수심(愁心)에 겨워 홀로 섰노라 殘廓暮烟香-허물어진 성터에는 저녁연기 모락모락 한데 雪中前朝色-흰눈 속에 바라보는 지난왕조의 역사흔적이여! 황진이(黃眞伊)
송도(松都)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다. 즉 송도(松都)에 있는 세 가지 뛰어난 것이 있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뛰어난 학문 기생 황진이(黃眞伊)의 미색(美色)과 시문(詩文). 박연폭포(朴淵瀑布)의 절경(絶景)을 가리키는 말이다.
약 40여 년 전에 읽은 내용인데 어느 책인지 기억이 안 난다. 지금의 북한 개성(開城)에 있는 송도삼절(松都三絶)이야기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남북이 잘 화해되어 북한에 관광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금강산은 관광했는데 개성의 역사유적지를 꼭 답사하고 싶은데 도로를 폭파하는 김정은 하는 짓을 보니 살아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개성(開城)에는 조선 제 2대왕 정종((定宗)의 후릉(厚陵)이 있다. 조선 개국(開國) 초기에 조성되어 현재 북한 개성에 있는 능(陵)이다.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정비(正妃)인 신의왕후(神懿王后)의 무덤도 있다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의 친어머니다. 서울 (貞陵)은 신의왕후(神懿王后)가 죽은 후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가 묻힌 곳이다. 원래는 도성(都城)안에 있었는데 이방원이 왕이 된 후에 꼴 보기 싫다고 지금자리로 쫓겨난 무덤이다. 개성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송도삼절(松都三絶)”중 박연폭포(朴淵瀑布)에 관한 이야기다. 40여 년 전에 필자가 읽은 책의 내용에는 박연폭포를 가기 위해서는 약700m 높이인 만경대(萬鏡臺) 청량봉(淸凉峰) 성거산(聖居山)등의 암봉(巖峰)이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는 천마산(天摩山)을 지나야 된다고 했다.
박연폭포(朴淵瀑布)를 가기 위해 천마산(天摩山) 산길을 한참 가다보면 두 갈래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한쪽 길은 천마산(天摩山) 허리를 반나절 돌아 걸어가야 되는 길이다. 산길은 안전하게 잘 되어 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다른 길 하나는 조금가다보면 천야만야(千耶萬耶) 낭떠러지를 만나는 곳에 길이 끊어져 있다. 그런데 끊어진 폭이 약 1m 정도로 보통 사람이 멀리뛰기를 하면 건널 수 있을 정도다. 떨어지면 죽는다. 그 길을 건너뛰어 조금 돌아가면 바로 박연폭포(朴淵瀑布)가 나타난다.
한쪽 길은 안전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다른 길은 가깝지만 목숨을 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 갈림길 앞에서 어느 길을 갈 것인가를 택하기 위해 망설인다고 한다. 인생행로(人生行路)중 갈림길과 마찬가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을 우리는 잘 안다. 우리 속담인줄 알았는데 한국 속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중국 속담도 아니다. 이 속담은 뜻밖에도 일본속담(にほんぞくだん日本俗談)이라고 한다 조선일보에 있는 기사 내용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いそがばまわれ)”의 원래 어원은 일본 속담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를 우리는 대부분 한국 전래(傳來)의 속담(俗談)으로 알고 있었다. 뜻밖에도 일본에서 전해진 수입(輸入) 속담(俗談)이다.
일본어로는 “이소가바 마와레(いそがばまわれ-急がば回れ)”라고 한다. 이 말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천천히 가라(ゆっくりいけ)”도 아니다. “조심하여 가라(きをつけていけ)”도 아니다. “돌아가라(もどれ(모도레)”고 했다 돌아가라!! 왜 하필 이렇게 말했을까?
“이소가바 마와레(いそがばまわれ)”는 15세기 무로마치(むろまち室町) 시대에 종장(宗長)이라는 시인이 지은 연가(連歌)의 한 구절이다. ※연가(れんが連歌)-두 사람이 노래의 1절 2절을 번갈아 부르는것 ※무로마치(むろまち室町)는 일본 사무라(さむら)이 정부다.
노래 배경(背景)은 이렇다. 일본의 동서를 연결하는 간선도로인 도카이도(東海道)에는 구사쓰(草津)와 오쓰(大津)라는 두 마을이 있다 교통 요지다.
두 마을 사이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코(びわこ琵琶湖)가 있다. 이 두 마을을 오고가려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거나, 조금 떨어진 곳의 다리를 돌아서 건너야 한다. 뱃길은 7㎞다 우회로 돌아가면 13㎞다 약 2배다
당연히 뱃길이 빠른 길이다. 그런데 이 뱃길은 시시때때로 강풍 돌풍으로 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위험해도 2배 빠른 뱃길을 가느냐? 안전하게 2배의 길을 둘러 걸어가느냐?
위에 박연폭포(朴淵瀑布)로 가는 천마산길 낭떠러지와 같은 상황이다.
우리는 이 두길의 인생길을 걸어왔고 지금 걸어가고 있다 ! 어느 길을 택하고 있는가?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