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31.土. 맑음
당신은 누구시길래, 키스를 할 때는 왜 눈을 감을까?
눈을 감아야만 더 크게 느끼는 세상.
키스를 할 때는 왜 눈을 감을까? 글쎄... 나는 키스할 때 눈을 안 감는데요? 이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거야 눈을 뜨고 키스를 하든 눈을 감고 키스를 하든 그것은 그 사람들의 개성個性에 관한 문제이자 회오리치는 열정을 오묘한 채널을 통해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자세이니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거나 재미난 영화에서 보면 거의 모든 연인들이 키스를 할 때면 스르르 눈을 감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1972년 9월5일 조선일보에 첫 회가 연재되기 시작했던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故鄕’에서는 주인공 경아가 반짝이는 별 아래서 첫 키스를 할 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그 때 남자가 말했다.
“경아! 눈 감어.”
소설 속의 장면이라 경아에게 물어볼 수는 없지만 눈을 뜨고 하는 키스와 눈을 감고 하는 키스와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눈을 감아야만 더 크게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첫 키스를 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경아의 짧은 삶은 비극적으로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경아는 당황스런 첫 키스도, 모든 것을 바친 사랑도, 해본 결코 고독하지만은 않았던 여인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우리들 중에는 아직도 그토록 설레고 당황스럽던 첫 키스도, 모든 것을 건 사랑도, 미처 혹은 여태 시도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혹여 있지는 않을는지.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영화란 이렇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항상 들었다. 사람들의 아픈 곳과 상처를 쓰다듬어주고, 주인공의 얼굴이 자꾸 내 얼굴로 바뀌어 보이는 환상이 생겨도 어색하거나 생소하지 않아, 화면에 흐르는 장면이나 이야기들이 내 기억 속의 추억을 펼쳐내는 듯한 착각 속에서 은밀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일상日常의 여백餘白 같은 것이랄까. 카렌이 데니스와 첫 키스를 할 때도 눈 위꺼풀이 스르르 풀려 내리는 듯이 눈을 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몸이었지만 카렌에게는 사실 데니스와의 키스가 첫 키스였던 것이다. 덴마크 여성인 카렌 브릭슨(메릴 스트립 분)은 아프리카에 있는 자신의 커피농장으로 가던 중 벌판에 기차를 세워 상아를 싣는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 분)와 만난다. 아프리카에서 만나게 된 데니스와 카렌은 첫눈에 반하지만 서로 안타깝고 아쉬운 눈빛만을 주고받은 채 제 갈 길을 간다. 남편과의 갈등을 끝내고 이혼한 카렌은 자유스럽게 살고 싶어 하는 데니스에게 결혼은 요구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데니스 또한 아프리카처럼 소유하거나 길들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카렌은 아프리카 생활을 청산하고 덴마크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한다. 배웅해주기로 약속한 데니스를 기다리는 카렌에게 도착한 것은 데니스 대신에 그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전갈이었다.
광활한 아프리카 들판의 풍경, 모차르트 음악이 전해주는 감미로운 정서, 조금씩 조금씩 더디 다가서는 두 사람의 잔잔한 사랑은 보는 이들로 해서 생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들어 준다. 데니스의 죽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지만 카렌의 인생과 사랑의 추억은 계속된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는 1985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7개 부분에서 수상을 했다. 그리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 전편에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은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제2악장 아다지오인데, 이 곡을 편곡해서 그 리듬에 가사를 얹은 노래가 벨지움 출신의 디바 다나 위너Dana Winner가 부른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아침이 될 때까지 머물러줘요.’이다. 그녀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모차르트의 원곡에 조금도 누를 끼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과 서정적 품격을 더해주었다. 왜 클래식이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때면 눈을 감고 들어야 제 맛이 날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뿐 만 아니라 정태춘의 촛불이나 해바라기의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도 예외가 아니다.
그때 그 사람,
사람이 눈을 감아야 하는 경우가 또 있다. 삶과 마지막 이별을 할 때 이 세상의 기억과 속박으로부터 영원의 커튼을 내려뜨리듯 고인故人은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듯이 사람들은 죽는 순간에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에게 보이는 죽은 사람의 가장 평안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일부러라도 눈을 감겨준다. 저 높은 곳의 더 큰 인연들을 위해 이곳의 사소했던 인연들을 정리하시라는 의미에서 일 것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영榮과 욕辱으로 점철된 여든세 해의 길고 긴 여정을 길 위에서 사약을 받고 나서야 이생의 질긴 인연들을 마무리했다. 당대의 거유巨儒이자 세도가勢道家였던 그분의 눈꺼풀이 내리 덮기 전 마지막 바라본 풍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당신은 누구시길래, 키스를 할 때는 왜 눈을 감을까? -)
첫댓글 눈을 감으면 더 달콤한 사랑의 키스 . . .
눈을 감고 죽음의 세상으로 들어가면 . . .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는 정말 영과욕의 세월을 사셨네요.
긴울림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