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달팽이 정거장 [고선경]
나는 나를 엿듣기 위해 벽에 바짝 붙는다
너의 영혼은 너의 바깥에서 자주 노숙하고
이따금 비바람이 우리를 아무 데나 수놓는다
우리가 궁금한 건 더 재미있게 놀 방법이었는데
사람들은 우리에게 살 걱정 죽을 걱정을 하라고 한다 별걱정을 다
나는 이미 내 몸을 무덤으로 만들어두었다 너는 네 몸을 영화관이나 전시회장 취급을 하는구나 시간이 남을 때 들르기 좋은
집에서도 공간이 필요했다
호흡법 또는 영법을 익힐 공간이
필요해서 우리는 해변을 기르기로 했지
서로를 구분하면서 뒤섞이는 석양과 수평선이 아름다워 울다가 웃었다 해변은 입구와 출구가 따로 없고 하루를 시작하거나 멈출 줄 모른다
벽에다 씨앗을 심어볼까
궁금증이 자라는 모양을 보고 싶어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고 전시를 보고 음악을 들어도
돌아서면 기억나지 않는다 네가
자꾸만 나를 깜빡한다
우리는 왜 충분해지지 않는 걸까
씨앗은 홀로 이사 간 뒤
감감무소식이었다
너는 소풍을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빈집은 저녁이 오기도 전에 어둠에 잠기고
젖은 나방이 유리창에 달라붙는다
우리의 집이 날개거나 등껍질이거나
혹은 우리이거나
나는 영혼과 습기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이 영 걱정되지 않는다
바깥을 나서면 비바람이
시원하게 이마를 훑고 지나간다
어느 날 네가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않을지라도
나는 너와 함께 만든 해변을 접었다 펼친다 아코디언처럼
소리를 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상상력으로
관심을 끌고 싶어
맞아 죽은 영혼들이 떠다니는
우주를 등껍질 하나가 가로지른다
- 문학과 사회 2023년 봄호
첫댓글 달팽이의 우주에는 맞아죽은 영혼들이 떠다니는군요... 비 온 뒤엔 발 밑을 더 살펴야겠습니다^^;;;
봄비가 내리면 달팽이가 보도블럭 위로 스멀스멀 기어나올까요?
늘 그 작은 놈들이 몰려나오면 발걸음이 불규칙해지지요.
어디 숨었다가 나오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