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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토요일에 드리는 묵주기도와 신비 묵상 환희의 신비 5단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본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당신의 신성한 사명의 표지를 받게 된 3일 동안과 무덤에 묻혀 어머니와 헤어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모님의 실제 모습이 아닌, 예수님의 성심을 그토록 기쁘게 해 드렸던 성모님의
모성애의 반영이며 아름다움의 반영인 성모상만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님의 현존이 예수님의 생애에 그렇게도 중요한 역할을 하신 것처럼
우리 삶에 있어서도 상을 통한 성모님의 현존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1696-1787) 성인은 성모님의 작은 상본 한 장의 위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를 남겼다.
어느 부인이 상담을 위해 알퐁소 성인의 수도원을 방문했다.
그녀의 남편은 28년 동안이나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 있었는데 그녀가 남편에게 그것에 대해
일깨워 주면 남편은 그녀를 때리기까지 한다고 했다.
알퐁소 성인은 남편에게 성모님 상본 한장을 주라며 그녀에게 일러 주었다.
그날 저녁에도 부인은 남편에게 고해성사를 받으러 가라고 애걸했지만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남편은
부인의 간청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남편에게 성모님의 상본을 건네주었다.
그 순간 그는 기적처럼 선뜻 성사를 받겠다고 말했다.
성사를 받은 후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지난 밤 아내가 내게 성모님 상본을 한 장 주었는데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이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은 시간이 천 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고해성사를 받으러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하게 일어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알퐁소 리구오리 성인은 성인들 중에서도 특히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깊었는데 그가 권하는
아홉 가지 성모 신심 중에는 "성모상을 찾아가 공경할 것"도 포함되어 있다.
"성모상을 방문하기 위해서 매일 또는 자주 성당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집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커튼이나 꽃, 그리고 테이프나 램프 등으로 장식한 성모상을 모신
작은 기도방을 마련하면 좋습니다. 그 앞에서 성모 호칭 기도나 묵주기도 등을 바칠 수 있습니다.
첫토요일에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께 배상해야 하는 이유 중 다섯 번째는 성모상에 대한 모욕이다.
예수님은 이스람교도들이 성모상을 공경하지 않는다 하여 그들에게 배상을 요구하지는 않으셨다.
그들은 어떤 상에 대한 공경은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모상을 모욕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한 상처를 받으신다.
마약 어떤 사람이 우리 집을 방문하여 벽이나 선반 위에 있는 어머니의 사진에 갑자기 침을 뱉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큰 모욕을 느끼겠는가! 성모상에 대한 모욕 역시도 다음 두 가지 이유로 큰 모욕이 된다.
첫째, 성모님의 성상이나 성화는 우리 각자의 어머니이실 뿐 아니라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분의 상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그 누구와도 비교를 초월하는 분이시며 또한 성모님께 대한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 때문에
성모상을 모욕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된다.
둘째, 성모상은 준성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사진의 의미를 넘어 우리들에게 성모님 현존의 효과를 준다.
교황 비오 12세는 이러한 믿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교황 비오 12세(1939-1958재위)는, 1946년 5월 13일 파티마의 성모 발현지에서 거행되는
파티마의 순례 성모상 대관식에 자신의 특사인 마셀라 추기경을 보내 파티마의 성모님을 세계의 여왕으로
선포하고 대관하게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 뒤인 1947년에는 그와 똑같은 성모상을 만들어
유럽을 가로질러 러시아를 순례하게 했는데 그 순례 여정 중 비둘기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함께했고,
환자들이 순례 성모상이 지나갈 때 치유되기도 헀으며, 놀라운 일들이 그 행렬을 따라서 많이 일어나게 되었다.
현재에도 그 성모상을 통한 성모님의 현존 체험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1951년 10월 13일 파티마 발현 기념 라디오 방송연설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이처럼 말했다.
"1946년에 우리는 파티마의 성모님을 세계의 여왕으로 선포하는 대관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그 파티마 순례 성모상을 통하여 성모님은 마치 당신의 여왕권을 선포하시듯
앞장서 나가셨습니다. 그때 성모님께서 그 순례의 길을 따라 가시면서 이루신 은혜들은
우리 눈으로도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단지 성모상이 앞장서 나가셨다고 하지 않고 마치 "성모님께서 친히 당신의 여왕권을
선포하시듯" 순례의 길을 가셨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행하는 가정 봉헌 순례는 이 성모 순례의
연장이다.
순례 성모상을 지칭하여 말하거나 떠올릴 때 사람들은 종종 그 성모상을 "그것" 이라고 하기보다는
"성모님" 혹은 "그분" 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상은 하나의 나무조각이거나 석고상이라기보다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성모님을 보여 주며 우리에게 성모님의 현존 효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시라쿠스와 시칠리에서 성모상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는데 교회는 그것을 조사한 뒤 성모상의 눈에서 나온
그 액체는 사람의 눈물과 똑같은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하여 그 사건은 기적임이 선포되었고
관할 대주교는 "성모님께서 현존해 계심이 분명하며 성모님께서 이렇게까지 염려하시는 것은 우리 시대에
범해지는 모든 죄 떄문"이라고 하면서 "성모님께서는 친히 오늘의 세계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걱정과
염려로 울고 계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어머니의 상이 모욕받음으로써 주님께서 받으시는 상처가 클 것임은 당연지사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왕실 궁전에는 그의 백성들을 프로테스탄트로 이끌어 간 스웨덴 왕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엔 왕을 비롯하여 그의 발 앞에 펼쳐진 성경과 부서진 성모상이 그려져 있다.
그 왕은, 성모님을 존경하는 것은 예수님께 대한 존경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설득당했으며, 또 그는
그의 온 백성들을 설득시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시켰다. 그 결과 오늘날 그 민족은 거의 완전히 믿음을
잃었으며, 단지 국민의 3%만이 교회에 나가고 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왕이 성모님을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민족을 벌하시는 것이 아니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잃어 버린 민족은 그 아드님에 대한
믿음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어머니의 상을 불명예스럽게 한 데 대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성심을
위로해드려야 하겠는가? 성모상을 아무렇게 두거나 더럽히거나 부주의하게 다룸으로써,
혹은 타당한 이유도 없이 교회에서 성모상을 다른 데로 옮김으로써 성모 성상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이며, 갈라져 나간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좋지 않은 예를 보여 주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이 때때로 성모상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장본인은 아닌지 첫토요일 고해성사를 받을 때
성모상에 대한 나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나는 집에 예수 성심상이나 성화를, 그리고 그 옆에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상이나 성화를 모시고서
우리 가족 모두의 왕과 여왕으로서 모시고 공경을 표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자.
묵주기도를 할 때 나에게 성모님 현존의 효과를 가져다주며, 성모님이 가까이 계시고 내 모든 말을
다 듣고 계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도록 성모상을 모시고 있는가?
나는 유혹에 빠졌을 때 성모님의 상을 찾고 바라보며, 성모님의 얼굴에서 유혹을 이겨내는 믿음을 찾는가?
"성모님, 제가 어머니의 성상이나 성화를 통하여 언제나 어머니의 현존을 느끼게 해 주시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의 거울 속에 들어감으로써 제 모든 죄를 보게 해 주시며,
양심의 가책으로 가득 차서 그것을 고치려는 결심을 하게 해 주소서!
성모님,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거슬러 범한 모든 죄와 특히 어머니의 성상을 불명예스럽게 한 배상으로
첫토요일을 지내오니, 제가 성체를 받아 모실 때 바로 제 앞에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게 됨으로써
제 안에 계신 예수님을 또한 볼 수 있게 해 주소서."
<왜 첫토요일을 지켜야 하는가?/티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