녜웨이핑(攝衛平)은 두툼하면서도 공격적인 바둑을 두는 중국을 대표하는 프로 바둑기사다. 중국바둑협회 부주석인 그는 지난 6월 월드컵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바둑을 체육종목에 포함시켜, 녜웨이핑은 국가체육총국 소속 체육선수로 활동해 왔다. 그는 월드컵 기간중 중국의 몇몇 언론에 축구칼럼을 연재했다. 그의 축구칼럼은 반상의 싸움꾼으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흥미진진하다.
중국에서 한국축구에 대한 험담이 오갈 때 ‘한국살육(殺戮)의 순간’이라는 칼럼을 통해 ‘주최국의 기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각국 언론의 온갖 추측과 평론을 무색하게 하고 한국은 아시아를 패널티킥의 자리에 서게 했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는 또 중국축구의 문제점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일부 언론의 한국축구 때리기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
각국 축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녜웨이핑의 평론은 마치 축구 자체와 접바둑을 두는 것처럼 자유분방하고 화끈하다. 힘이 있으면서 기교가 느껴진다. 그는 자국 축구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스스럼없이 끄집어 냈다. 그가 ‘어떤 책도 이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평가했던 한·일 월드컵에 대한 논평 가운데 일부를 발췌했다.<편집자 주>
축구 결과가 축구팬들을 어떻게 만들었나
‘소호체육’(搜狐體育) 6월7일자
사실 중국축구는 종래부터 아시아를 대표하는 큰 짐을 감당해 내지 못했다. 중국축구가 발전할 수 없는 데는 항상 이유가 따른다. 축구협회·언론인·축구팬….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실패를 가려 주었다. 경제와 축구, 몇년 전까지만 해도 축구협회는 돈이 없었다.
그러나 프로리그가 생긴 후 축구협회와 선수들의 수입은 모두 중국경제의 성장 속도보다 빠르게 불어났다. 갑B팀 벤치를 지키는 선수들의 수입이 성장보다 몇배라는 것을 아시는지? 오늘날 축구협회는 이미 전국 각 체육협회에서 가장 부유한 협회이고, 미국 축구협회보다 돈이 더 많다는 것을 아시는가. 아직도 경제가 축구의 발전을 제약한다고 생각하시는가.
언론과 축구, 전반적으로 언론은 항상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축구는 시종일관 한쪽은 차고 한쪽은 뜨거운 엉덩이 같았다. 어느 쪽을 원하면 그 쪽으로 붙으면 그만이다. 언론은 독자를 끌기 위해 늘 뜨거운 얼굴을 차가운 엉덩이에 갖다 대며 기삿거리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따라서 적잖은 축구 관련 평론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축구는 무릎 위에 올려놓고 구슬러야 하는 어린아이가 될 것이다.
이런 아이가 자라려고 할까.
…제일 가슴아픈 것은 축구팬들이다. 지금 이 기사를 쓰는 와중에도 팬들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남은 경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온다. 나는 이미 두 경기나 졌는데 무엇을 더 바라느냐고 했다. 우리는 축구 강국이 아니다. 우리도 축구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월드컵은 본래 멋진 축제인데, 가서 너무 체면이 깎이지 않고 모두 최선을 다한다면 만족해야 하지 않겠는가.
축구팬들은 어찌됐든 축구에 빠지는 것이다. 그들이 제일 불쌍하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어떤 좋은 책도 월드컵보다 못하다
‘경제만보’(經濟晩報) 6월17일자
사람들은 월드컵이 점차 흥미가 없어진다고 아우성이다. 기술형 축구팀에 책임이 있는 것 같다. 덴마크가 잉글랜드의 기술축구에 무릎을 꿇었고, 스웨덴·아일랜드는 예선 최종전에서 탈락이 결정됐다. 아프리카의 세네갈은 골든골로 이기고, 유럽의 스페인은 페널티킥으로 이겼다.
세네갈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아프리카의 모든 장점을 보여주였으며, 체격적인 조절 능력과 개인기로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부족한 것은 전체적인 협조력과 그룹 전술협력이며, 상대편 진영에서는 개인이 뚫고 나가는 전술이 많았다. 만약 전략이 있었더라면 경기는 더 흥미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골든골로 갑자기 지는 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운에 맡겨야 하기에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기 규칙이 그러하니 스웨덴팀은 아쉬울 뿐이다. 이 경기에서 스웨덴팀은 잘 싸웠으며 기회도 많았다. 결국 이기는 팀은 하나뿐이다. 사람들은 기술형 축구를 살리고 파워축구는 운에 의지한다고 말한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국민들의 축구는 해방되었다. 그러나 승부를 가리는 페널티킥이 없으면 월드컵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남성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잔혹하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페널티킥은 축구를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촉매제이다.
결국 나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선수들의 강인한 투지는 경기 마지막 1분까지 지속되고 페널티킥에서 도태된 후 푸른색을 두른 팬들은 여전히 자기 국가팀을 격려했다. 이 민족의 뭉치는 힘은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월드컵은 여전히 영웅들이 모이는 세계적인 축제이며, 월드컵 결승에 참가하는 국가들의 민족정신과 심리적 자질을 집중적으로 표현했고 16강 최종전, 4강전, 준결승전은 더 치열했다. 마치 한 사람이 생사를 다투듯 성격이 남김없이 드러나고, 선수 한 사람의 페널티킥하는 동작, 표정들도 드러난다. 이것은 많은 인류 문명사를 읽어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월드컵을 좋아한다.
죽음의 파란색
경제만보’ 6월19일자
…한국인들은 1966년의 북한팀을 뒤따랐다. 그때도 이탈리아팀이 졌다. 그리고 북한팀은 8강에 진입하였다. 42년이 흐른 뒤 이탈리아팀은 또 한번 고려 민족에게 수모를 당했다. 한마디로 개괄하자면, 역사는 놀랍게도 유사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하….
설령 이런 요인이 있다면 우리는 이탈리아팀이 왜 파란 옷을 입었는지 이해가 안되는 걸!
많은 사람들이 파란색의 결백하고, 우아하고, 푸른 하늘 같고, 또한 바다 같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꿔 말한다면, 한국 축구팀의 완강하게 싸우는 의지는 우리가 늘 입에 올리는 말이다. 아쉽게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이 측면을 놓고 볼 때 히딩크 감독을 초빙한 것은 한국 축구팀의 요구에 부합되었고, 마지막 중요한 시점에서 수비를 빼고 공격수를 투입시킨 것은 필승의 기회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그들이 넣은 두 개의 골은 심판과 무관하며 축구경기에서의 변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골을 넣은 것은 인정해야 한다.
안정환이 넣은 골든골은 본인과 대한민국에는 금처럼 귀중한 골인 것이다. 그러나 이 골든골은 마찬가지로 아시아인들에게도 속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강인함은 세계인들로 하여금 한국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이 경기를 본 후 중국축구의 ‘공한증’의 이유를 알 만했다. 입으로 말해서 두려워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칼을 뽑지 않으면 한가하지만 일단 칼을 뽑으면 죽음의 순간을 맞는 것과 같다.
한국‘살육의 순간’
‘경제만보’ 6월22일자
주최국의 기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각국 언론의 온갖 추측과 평론을 무색하게 하며 한국은 아시아를 패널티킥의 자리에 서게 했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모든 예언을 빗나가게 했다.
사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경기 전에 모두 한국의 승리를 예측했으리라 믿는다. 단 또 하나의 기술형 강팀이 탈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한국 대 스페인, 스페인은 기술면에서 한국을 조금 앞섰다. 그러나 한국의 강한 체력과 지칠 줄 모르는 러닝은 기술면의 약점을 미봉하기에 충분했고 선수들은 시종일관 자신감으로 차 넘쳤다.
이번 경기도 물론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 보는 사람들이 해석하기에 달렸기에 나는 여기서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경기가 진행된 120분 동안, 대부분 시간은 주심이 휘슬을 불어 경기를 중단한 시간이 아주 적다는 것이고 양팀은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단 아쉽게도 양팀 모두 승리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나는 패널티킥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은 잔인한 것이다. 행운의 여신은 주최국 편을 들었다. 5개가 모두 깔끔하게 골인했다. 스페인은 패널티킥으로 살아나고 또 이 패널티킥 때문에 패배의 고배를 들어야 했다. 이는 내가 연장전이 시작됐을 때 이미 어느 정도 예측했던 결과다. 가끔 우리는 정말 ‘하늘의 의지’가 있음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소위 고견을 털어놓는 많은 사람이 심판이 주최국을 도왔다고 맹렬히 비난할 때 나는 그들이 혹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스페인과 한국, 누가 4강에 드느냐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스페인은 현재의 전력으로 8강에 진출하는 것이 아마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팀에 졌다는 것이다.
한국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강팀 킬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이들 세계 축구의 유럽 대가들이 선후로 한국팀이 휘두르는 도끼에 산산이 부서졌다. 전통적인 강팀 앞에서 한국팀이 내세울 만한 것은 단지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생사를 건 용기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바로 이런 한국이 4강에 들 줄이야. 이 결과는 아시아 축구의 인지도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스페인의 탈락의 이치로 본다면, 한국은 수준으로 본다면 16강에서 멈춰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의 이변은 정말 큰 이변이어서 몇천만명이 참가한 월드컵 복권에는 아무도 당첨되지 않았다. 8강 가운데 5강을 맞춰도 좋은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4강 진출은 어찌 보면 아시아 축구사상 획기적인 사건이다. 단 아쉬운 것은 한국의 성적은 아시아 축구의 전반적인 수준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수준 차이를 더 확실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위로로 삼는 것은 중국팀이 속했던 조에서 두 팀이 준결승전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대가 이렇듯 강한 팀이었으니 그들에게 졌어도 체면이 너무 구겨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불굴의 투지… 삼바의 제왕, 춤을 추시라
‘경제만보’ 6월26일자
한국과 독일의 경기는 유럽과 아시아 양대 진영을 위수로 한 전세계 축구팬들이 주목했던 초점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런 긴장된 심정이 결승에 대한 기대치를 훨씬 넘어섰다고 나는 믿는다. 월드컵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사람들 마음속의 영웅은 이미 발길을 돌렸고, 4회 우승 브라질마저 그다지 높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심판의 도움을 받은 한국이 어서 빨리 탈락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다행히 한국팀은 마침내 깨끗하고 명예롭게 독일에 졌다. 힘과 힘, 체력과 체력의 대결에서 발라크는 힘있는 두 다리로 한국의 기적에 종지부를 찍었고 판정 시비에 관한 논쟁을 일단락지었다. 유럽과 중국의 적잖은 축구팬들의 눈에 발라크는 영락없는 한국 대항전 영웅이었다.
그러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도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150 dB을 넘는 응원이 계속 이어졌다. 경기 결과를 모르는 사람이 이때 입장했다면 틀림없이 한국이 승리한 줄 알았을 것이다. 2002년 6월25일, 한 민족의 정신이 영화속 정지화면처럼 이곳에서 멈췄다.
나는 텔레비전 앞에서 오랫동안 이 감격적인 장면을 지켜보았다. 나는 불현듯 아일랜드인들을 생각해냈다. 2,000명 정도밖에 안됐지만 그들도 팀이 패배한 뒤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응원했다. 똑같은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이들 두 민족은 모두 역사상 많은 침략과 고난을 겪어왔다. 그들의 외침은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감정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1990년 아시안게임에서 나도 같은 상황을 겪었다. 관중들이 높은 소리로 응원하는 공인 체육관에서였다. 사후에 내가 쓴 감상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한 민족이 한 기치를 들고 단결하였을 때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다.’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축구팀은 경기에서 졌다. 그러나 스포츠는 이겼고, 정신은 지지 않았다. 그때의 그 광경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진 것은 축구뿐이 아니다. 언론과 축구팬들도 많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라는 이 한 페이지를 넘겨보자. 이 페이지에는 판정 시비와 온갖 비난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들의 투지와 존경심을 잊지 마시라.
넘겨진 페이지는 참신한 것이었지만 그 다음 페이지는 낡아빠진 진부한 것이었다. 유럽과 남미의 대결, 운이 좋은 터키가 물론 유럽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는 황제라도 끌어내릴 만한 용기가 있었다. 우리가 경기 전에 이 강강약약 네팀에 대한 분석대로 독일이 이겼다. 나는 이제 노랑색 삼바축구 브라질팀을 걱정하게 된다.
첫댓글 하지만 중국넘 일부 지식인들만 이 사실을 알고 있슬뿐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