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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삼 칼럼니스트
입력 2021-07-04 13:50 | 수정 2021-07-04 15:49
여기 그 역사적 증거를 제시한다
▲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칼럼니스트
지난 7월 1일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날이다. 그는 출마 선언 후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을 찾아가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라 친일(親日)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면서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했으니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새로 출발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발언했다.
부모의 가짜 독립운동 논란에 휘말린 김원웅 광복회장도 얼마 전 고등학생 대상 유튜브 강연에서 "해방 후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발언하여 물의를 빚었다.
결론부터 말한다. 이들의 발언은 모두 허위사실 유포의 도를 넘어 역사 날조에 해당한다. 그저 세상만사 중에서 스스로 믿고싶어 하는 내용만을 짜깁기하여 뱉어낸 망언 수준의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이런 편향을 자기 혼자만 마음속에 담아두면 그만인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중인환시리에 이런 발언을 한 것이다.
친일파들이 나라를 세웠으니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발상은 노무현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라고 비난하고, 기회가 날 때마다 "독선과 부패의 역사" "분열의 역사" "패배의 역사" "굴욕의 역사" 등 지속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폄하하는 논리와 동급이다.
그렇다면 따져보겠다.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 논리는 초등학교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38선을 기점으로 남한을 점령한 미군은 적지를 점령한 점령군처럼 행동한 반면,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은 해방군처럼 행동했을 뿐이다.
소련군은 전투 임무뿐만 아니라 정치 임무도 대단히 중시했다. 때문에 군대 내에 정치 장교가 있지만, 미군은 그런 제도가 없다. 스티코프 정치사령관, 로마넨코 민정장관을 비롯한 많은 소련군 요원들은 군복을 입었지만, 훈련받은 정치공작원들이었다. 소련군에서 정치 장교의 권한은 전투 장교보다 훨씬 막강했다. 이들은 전투장교들을 감시하고, 점령지역에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하는 프로 정치꾼들이었다.
프로 정치장교들은 입으로는 "해방군"을 자처하면서 실제로는 극악무도한 점령정책을 악질적으로 수행했다. 가장 먼저 그들은 한반도에서 북한을 분리시켜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실질적인 공산 단독정부를 출범시켰다. 이어서 지주·자본가의 토지와 자산을 약탈하여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지주·자본가의 재산을 공산당이 소유한 것이다.
헌법·국호까지 소련이 정해준 북한
소련군정 사령부는 자신들이 하바로프스크 88특별정찰여단에서 훈련시킨 김성주를 앞세워 헌법을 만들어주었고, 대한민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 명단, 내각의 장·차관, 심지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도 소련이 정해주었다.
그 증거를 제시하겠다. 북조선 인민회의는 남한의 국회에 해당한다. 민의의 수렴을 위한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북한 정치세력의 자의적 결정에 의해 추진되었다면 북한은 남한보다 먼저 국회를 구성하여 민주적 선거를 통해 국가를 수립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스티코프가 기록한 비망록(『쉬띄꼬프 일기 1946~1948』)에 의하면 모든 결정은 모스크바의 소련공산당 당중앙이 수립하고 소련군정 지도부에 의해 진행되었음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1946년 12월 19일자 스티코프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회소집과 북조선 인민위원회 수립 문제를 제기하다. 그들은 나의 제안과 계획을 검토한 후 동의하다. 로마넨코와 함께 나의 제안의 실행계획과 대회진행 및 의사일정에 대한 훈령 초안을 작성하다.
1)대회에 파견할 대의원들을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회의에서 선출한다. 인민위원 3명 당 1명의 대의원을 선출한다. 대의원 총수는 3,459명의 인민위원을 대표하여 1,135명이 될 것이다. 대의원은 비밀투표로 선정한다.
◇대회 의사일정은 다음과 같다.
-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채택한 법령 승인. 보고자 강양욱 서기장
- 1947년도 북조선 인민경제 발전계획. 보고자 김일성
- 1947년도 국가예산
- 북조선 인민위원회와 북조선 인민회의 선거, 북조선 인민위원회와 북조선 인민회의에 대한 규정 승인
◇북조선 인민위원회와 북조선 인민회의의 구성
- 대의원 5명당 1명의 인민위원을 선출하여 총 231명으로 구성한다.
- 북조선 인민회의의 정당별 구성 : 북조선로동당 35퍼센트, 조선민주당 15퍼센트, 천도교청우당 15퍼센트, 무소속 35퍼센트, 여성 15퍼센트.
- 사회성분별 구성 : 노동자 40명, 농민 50명, 지식인(의사·작가·교사·기사) 45명, 상인 10명, 기업가 7명, 종교인 10명, 수공업자 10명.
- 정당·사회단체의 대표자들, 각 행정국의 일군들, 각 도 인민위원회에서도 인민회의 의원들을 파견한다. 각 도 인민위원회에서 24명, 각 행정국에서 18명, 정당·사회단체에서 23명을 파견한다.(전현수, 『쉬띄꼬프일기 1946~1948』, 국사편찬위원회, 2004, 13~14쪽).
▲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일 오후 경북 안동시 경상북도 유교문화회관을 방문해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뉴시스
진짜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는 북한
이 기록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소련군 지도부는 북한의 제헌의회 격인 북조선 인민회의의 수립에서부터 실행계획과 대회진행 및 의사일정, 심지어 정당별 의석 배분 문제, 그리고 의원들의 출신성분별 구성 인원 숫자까지 세세하게 결정하여 이를 지령한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의 제헌의원 선거 실시 과정에서 미군정이 선거도 하기 전에 정당별로 의석을 배분하고, 출신성분별로 인원을 정해놓은 다음, 그에 맞춰 당선자를 결정했다면 그 선거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미군정의 지시와 지령에 의해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국호를 정하고, 헌법을 제정했으며, 대통령을 선출했다면 그것은 미국의 지시에 의해, 미국의 의도대로 국호와 헌법과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지 대한민국 국민의 민의에 따른 결정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미 점령군의 지도를 받아 세운 분단국가이니 애초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가치관을 보유한 이재명 지사나 김원웅 광복회장,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만약 우리 제헌의원 선거와 그 후 헌법 제정, 국회 제정, 대통령 선출이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믿는가?
북한은 소련공산당 당 중앙의 지령을 받은 소련군정 지도부의 결정에 의해 후보자에서부터 정당 및 성분별 비율까지를 세세하게 따진 다음 모스크바의 소련공산당 당 중앙의 재가를 받아 북한 정권을 창출하게 될 의회(북조선 인민회의)를 구성했다. 스티코프의 일기가 바로 김일성과 북한이 스탈린과 소련공산당의 괴뢰정권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다.
소련군정은 1947년 말부터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정하고 모스크바에서 파견된 법률 전문가들에게 동유럽 위성국들을 창설할 때 작성한 헌법을 참고하여 북조선 헌법 초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이 초안을 소련 외무성과 소련공산당에 보고하고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세부적으로 검토한 후 평양의 소련군정에 지령하여 소련공산당이 파견한 헌법전문가들에 의해 1948년 2월 초에 북한 쪽 인사들과는 전혀 상의 없이 헌법안 작성을 끝냈다.
북한의 정치체제에 있어 1948년 4월 24일은 결정적인 날이다. 이날 소려공산당 정치국이 '북한의 헌법문제에 대하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북한 소련대사였던 스티코프의 일기에 의하면 바로 이날,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스탈린의 별장에서 스탈린, 몰로토프 외상, 즈다노프 서기, 그리고 자신이 참석한 가운데(북한 인사 중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음) 북한의 국가건설, 즉 헌법 제정으로부터 독립에 이르는 내용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스티코프 일기 중 북한 헌법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헌법에 대해서 : 제2장을 새로 고칠 것, 권력의 소재.
종교에 대해서 : 양심의 자유만을 보장하는 것. 스탈린은 토지에 대해서 변경을 시사. 자류지(自留地)는 5~10헥타아르.
결정에 대해서 : 헌법은 임시여서는 안 된다. 남쪽에서 선거 이후 효력을 갖는 것. 남쪽 인사가 참가한 정부를 창설하는 것.(시모토마이 노부오(下斗米伸夫) 지음·이종국 옮김, 『모스크바와 김일성-냉전기의 북한 1945~1961』, 논형, 2012, 79쪽).
이렇게 하여 북한 헌법과 그 이후 국가건설계획의 골격이 모스크바에서 결정되었다. 모스크바는 북한에서 스탈린 헌법에 따라 작성된 초안에 대해 특히 제2장, 제14장을 다시 작성했다. 1948년 9월 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통과된 북한 헌법은 전적으로 스탈린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 자체를 왜곡 날조
레베데프 비망록에 의하면 소련은 미국의 분단계획을 폭로하기 위해 당분간 북한에서 헌법 시행을 보류하고 신헌법에 의한 선거는 남한보다 늦은 시기에 실시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었다(「레베데프 비망록」(11), <부산일보>, 1995년 2월 17일).
소련 외상 몰로토프는 "남조선에서 미국인들이 유엔 임시위원회의 협조 하에 금년 5월 10일로 예정된 선거를 실시하고 남조선 단독정부를 수립한 뒤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북조선 영내에서 실시하고 최고인민회의 선거(남한의 총선에 해당)를 실시하며 내각제 정부를 수립하라"고 그 시기까지 세세하게 지령했다(김국후, 『비록(秘錄) 평양의 소련군정』, 한울아카데미, 2011, 241쪽).
참으로 미안한 얘기지만 북한의 건국과정과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은 이런 문제에서부터 판이하게 다른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이런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는 근원은 무엇일까?
이재명 지사,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이 나라 좌익들의 역사관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길사가 펴낸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나타난다.
총 여섯 권이 발간된 이 저작을 관통하는 핵심 논리를 정리한 논문이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4권에 수록된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이라는 논문이다. 논문 저자는 초판본에는 최장집·정해구 공저로 되어 있었는데, 최신판에는 최장집 이름이 빠지고 정해구 단독 논문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해구는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성격을 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을 비롯하여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 위원장, 새 헌법안 제정을 위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문재인 대통령의 이념적 동지다. 정해구의 논문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해구는 해방과 더불어 한국에서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났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혁명주체세력이 인민정권을 수립하고, 이들이 국가권력을 바탕으로 친일파·민족 반역자를 처벌하고, 친일 매판자본가의 기업을 국유화하여 식민잔재 세력의 물적 기반을 박탈하고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약화시켰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구가 주장하는 혁명세력은 노동자·농민 등 기층민중이고, 이들은 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남조선신민당을 통해 정치세력화 되었다(좌익세력). 반면에 그들이 타도해야 할 반(反)혁명 세력은 미군정을 중심으로 한 지주계급·매판적 자본가·친일 친미파로서, 이들은 한민당과 이승만 세력을 통해 정치세력화되었다(우익세력).
정해구는 해방공간을 혁명 대 반혁명 구도로 갈라 혁명 세력은 선(善), 반혁명 세력은 악(惡)의 구도로 설정했다. 해방 전후사의 기본 축을 혁명적 한국 민중과 미 제국주의의 대립 구도로 설정하고, 북한은 남한을 반혁명 세력으로부터 해방하고 민족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기 위한 '민주기지'로 평가한다.
정해구의 거짓말을 성경 말씀처럼 신봉한 좌익들
해방공간에서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은 새 정부 수립 과정에서 국가권력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놓고 격돌했다. 정해구는 미소공동위원회 합의를 거쳐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연합군이 이 정부와 협의하여 5년간 신탁통치를 실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주장한다.
남한에 주둔한 미 점령군은 반민족적인 지주·자본가·친일 관료·친미 세력 등 반혁명 세력을 동원하여 혁명 세력을 파괴하고 반혁명 분단정책을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시각으로 해방공간을 바라보면 1946년 9월부터 박헌영이 미군정을 상대로 총파업, 대구 폭동을 일으켜 무장 공격에 나선 것은 정당방위가 된다.
정해구의 이런 주장은 어떤 근거나 사료를 통해서도 입증되지 않는 거짓말이다.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남북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심지어 박헌영과 조선공산당, 북한의 공산주의자들까지 반탁을 주장했다. 김일성 집단과 박헌영이 찬탁으로 선회한 것은 소련으로부터 "모스크바 협정을 지지하라"라는 지령을 받은 후의 일이다.
또 1946년 9월의 총파업, 대구 폭동은 스탈린이 박헌영을 모스크바로 소환하여 "남한의 미군을 무력을 동원해 공격하라"는 '신전술'을 지령함으로써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정해구는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미국이 분단 정권 수립을 공개적으로 추진했으며, 이를 위해 유엔을 동원했고, 분단 정권 수립이 분명해지자 남한의 정치세력은 분단 지지세력(반혁명세력)과 분단 반대 세력(혁명 세력)으로 재편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완전 거짓말이다. 분단 정권 수립은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의 "소련군 점령지역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라"는 비밀 지령에 의해 북한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출범이 그 명백한 증거다.
정해구는 남한에서는 미군정의 폭력적 탄압으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실패한반면, 북한에서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민중들의 혁명 열기가 소련군의 후원이라는 유리한 조건 아래 식민 잔재와 봉건 잔재를 척결하는 혁명 성공으로 이어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주장한다. 소련으로부터 공산화 법률을 제공받아 지주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고, 기독교인 숙청, 주민 재산을 강탈한 공산화 정책을 정해구는 '민주개혁'이라고 정의했다.
정해구는 분단 정권이 수립되자 인민정권을 세우려 노력한 혁명 세력(좌익)은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무장투쟁으로 나갔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이 6·25전쟁이라고 주장한다. 6·25에 대해서도 정해구는 김일성의 남침이나 스탈린의 음모가 아니라 "일제 하부터 시작되어 해방과 분단과정을 통해 폭발적으로 분출된 국내적 갈등의 최종적 판가름"으로 해석한다.
정해구와 좌익세력은 일관되게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전쟁 발발 책임 문제가 과대하게 고려될 필요는 없다"라고 말한다.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가 따위를 시비 걸지 말라는 뜻이다.
정해구는 3년여 전쟁을 통해 혁명 세력인 북한은 사회주의 혁명을 완결했고, 자립적 민족경제정책으로 나아갔다고 주장한다. 정치적으로는 단일 지도체제, 사상적으로는 자주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주체사상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반혁명 세력인 남한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종속적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반공 체제가 구축되었다고 비판한다.
정해구의 논문을 요약하면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은 정의롭지 못한 반혁명 세력이 외세를 등에 업고 당시 국민들의 뜻과는 달리 분단 정권을 수립한 '정의롭지 못한' 행위가 된다. "대한민국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쓰레기 집단이란 뜻이다. 대한민국은 반민중·반민족·반민주 세력이 외세와 결탁하여 만들어낸 분단 정권이기 때문에 민중·민족·민주혁명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불의(不義)의 체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관을 가진 사람이 또 다시 대통령이 되면?
하지만 비밀 해제된 구소련 문서들로 인해 이런 주장은 완벽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명쾌하게 드러났다. 구소련 문서들은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과 그 협력자들이 남쪽보다 훨씬 일찍 공산화된 분단국가 건설에 총력전을 전개했음을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다.
리영희·조정래·정해구 류의 저작을 자양분으로 삼은 이재명 지사의 가치관은 반대한민국·반미·반일·반자유민주·반시장적인 동시에 친북·친중국·친사회주의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정당성과 정통성을 동학 농민운동→구한말 항일의병 봉기→3·1운동→상해 임시정부→항일무장투쟁→해방 후 단선단정 반대 투쟁→4·19→전태일 분신→5·18→1987년 6월 항쟁→촛불혁명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런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정해구를 비롯한 좌익세력이 주장하는 해방공간 상황은 북한 정권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일 뿐 사실이나 사료로 입증되지 않는 허구이며, 사료의 수집과 분석도 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정해구가 쓴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은 저자가 믿고 싶은 사안을 믿고 선전하는 확증편향에 의한 선동물이란 뜻이다.
이재명 지사를 비롯하여 문재인·노무현은 리영희나 정해구 등 좌익 학자들이 대한민국 현대사를 날조한 책을 탐독하고 운동권이 되었다. 이처럼 붉은 사상의 세례를 받았기에 "미 점령과 합작한 친일세력이 분단된 대한민국을 세웠으니 그 나라는 빨리 폐기하고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발언이 무시로 튀오나오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또 다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대한민국 해체작업부터 본격화하지 않을까?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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