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30호
빙그레 꽃
김현순
엄마하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할머니 한 분이 길가에 앉아
나물을 팔고 계셨어
사이소
사이소
쑥 사이소, 냉이 사이소
떨이요, 떨이
마트에 가도
원 플러스 원 상품만 골라 담는
우리 엄마 떨이란 말에
할머니 앞에 있는 나물들을 다 샀어
엄마는 쑥 한 봉지
나는 냉이 한 봉지 손에 들고
집에 오려고 돌아서는데
그 할머니가 바로 옆에 놓인
우글쭈글하고 커다랗고 검은색 비닐봉지에서
쑥이랑 냉이를 꺼내서
바구니마다 가득 담으시면서
아까보다 더 신나는 목소리로
사이소
사이소
쑥 사이소, 냉이 사이소
떨이요, 떨이
그때 갑자기 길이 환해졌어
빙그레 웃음꽃이
다다닥 피어났거든
엄마도 빙그레
나도 빙그레, 옆에 선 나무도 빙그레
하늘에서 이걸 다 내려다본
해님도 빙그레
할머니, 많이 파세요!
빙그레 꽃
- 『시와징후』 2023 겨울호
***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만우절에 읽을 시를 고르다 보니까, 딱 이거네 싶은 동시가 떠올랐습니다.
- 빙그레 꽃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 옆 길가에도 나물 파는 할머니 몇 분 계시는데요.
가끔 지나는 나를 붙잡고 떨이라며 가져 가라고 하는데요.
그때마다 못 본 척 지나친 적 여러번 있는데요.
이 시를 읽고 보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찔리기도 하는 것인데요.
화자의 엄마는 차마 지나칠 수 없었던 모양인데요.
기꺼이 속아주는 것인데요.
꽃이 피는 까닭을 알 것도 같은 아침입니다.
빙그레 웃음꽃이 피는 아침입니다.
2024. 4. 1.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