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집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을 넘어 어떤 인연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면우 시인이 보일러 앞에서 박용래전집을 표지가 닳도록 봤다는 것 같은 일 말이다. 일독으로 독자와 어떤 인연을 맺는 시집이 있는가 하면 재독하면서 몹시 새롭게 느끼게 된 경우도 있다. 오래 미루어두었다 빼서 재차 읽은 시집, 박지웅 시인의 시집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좋고 나쁘고를 떠나 되우 성실하게 평을 쓴 정병근 시인의 자세가 좋았다.
시가 기복없이 균질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좋았다. 시인이 자신의 근간을 다루어서 거기서 울리는 개성적인 서정이 와닿았다. 공감할 여지가 많은 시적 서정은 공감을 주기는 쉽지만 더 높고 또 새롭기는 쉽지 않다. 박시웅 시인의 시는 한 차원 높은 시적 성취를 이 시집에서 보여주고 있다.
북아현동 주민의 아픔을 담은 시는 그러한 사실에 관심을 가지고 안타까워했다는 의미를 넘어서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내가 좋게 본 시가 여러 편이지만 그 중 한 편을 보여드리기로 한다.
명수우물길에 사는 아낙은
소리에 이불을 덮어씌우고, 한다
그 집 창가에 꽃이 움찔거리면
어쩔 수 없이 행인은
아낙이 놓은 소리의 징검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야 한다
생각지도 않은 오후,
악다물고 움켜쥐다 그만 놓쳐버린
신음과 발소리가 딱 마주친다
아, 서로 붉어진다
소리의 정면이란 이렇게 민망한 것
먼저 지나가시라
꽃은 알몸으로 창가에 기대고
나는 발소리를 화분처럼 안고
조용히 우물길을 지나간다
―「소리의 정면」 전문
‘아낙’이란 말이 참 좋다. ‘명수우물길’이란 지명도 참 적절하다. 2연의 반점도 적절하다. 적정한 드러냄과 적정한 긴장, 천천히 지나간다.
#박지웅 #구름과집사이를걸었다 #소리의정면 #윤관영 #부자부대찌개
첫댓글 지난 달 이면우 시인님의 박용래론을 잡지에서 몇 번 되새겨 읽었네요. 가슴에 많이 남았는데 여기서 흔적을 보게 되네요. 직조가 잘된 시를 보면 살짝 성긴 삼베 같기도 하고 아껴둔 비단 같기도 하지요. 한 순간의 포착이 마치도 딱 한 번, 눈을 떴다 감는 것처럼, 숨을 참는 것처럼 선연해서 좋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예, 잘 지내시지요? 시는 끝이 없고 끝인 듯하면 또 시작이던데요 ㅎ
전, 지금 오태환 시인의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를 5독째 오독하고 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