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받는 살로메(Salome receives the Head of Saint John the Baptist)’, 1609∼1610년, 캔버스에 유채, 91×167cm, 영국 런던국립미술관 소장.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 카라바조는 38년 생애 마지막 해에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받는 살로메(1609∼1610)’를 그렸다. 예수의 선지자였던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설교를 한 인물이다. 예수도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의롭고 존경받는 삶을 산 요한은 왜 참수를 당한 걸까?
성경에 따르면, 로마제국의 헤롯왕은 동생을 죽인 뒤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누가 봐도 패륜이었지만,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요한은 의롭고 용기 있는 자였다. 왕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책망했다. 그 죄로 투옥됐다. 헤로디아는 자신까지 비난하는 요한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계략을 짰다. 헤롯의 생일 연회에서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열정적인 춤으로 왕을 기쁘게 했다. 왕은 만취한 상태에서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살로메는 어머니의 지시대로 요한의 목을 요구했다. 왕은 많은 이들 앞에서 한 약속이라 어쩔 수 없이 참수를 명했다.
카라바조는 잘린 요한의 머리가 살로메에게 건네지는 장면을 묘사했다. 배경을 완전히 어둡게 하고 명암 효과를 강하게 해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했다. 살로메는 자신이 초래한 일에 마음이 괴로운지 쟁반 위의 머리를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형집행인의 얼굴도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이 든 하녀만이 이 모든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요한은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구원을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 왕비의 농간으로 벌어진 참으로 허망하고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사실 진짜 살인자는 왕이었다. 왕은 그를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 요한이 죽은 진짜 이유는 백성들에게 받는 존경과 지지 때문이었다. 의로운 삶을 살아온 그의 말과 행동에 백성들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왕은 요한의 인기가 반란으로 이어질까 두려워 제거를 택한 것이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39세).
✵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39세)는 16~17세기 이탈리아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와 <바쿠스> 등이다. 카라바조 후작의 집사 겸 건축가인 페르모 메리시의 아들로 11세에 고아가 된 후 밀라노의 시모네 페테르차노의 도제로 들어갔다. 초기에는 카라치가의 작품들과 마사초, 조토의 영향을 받았으며 수수한 주제들로 사실적 표현을 강화했다. 1597년 콘타렐리 예배당의 장식을 의뢰받아 마태오의 생애에서 따온 장면으로 이루어진 3편의 그림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당대의 모든 화가들을 능가했다. 난잡한 사생활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조는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미술가로 평가되었으며 그의 기법은 후대에까지 모방되고 있다.
카라바조, 〈의심하는 도마(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요한복음20장)〉,
1602~1603년, 캔버스에 유채, 107×146cm.
12사도 중 한 명인 도마는 직접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에 손을 집어넣어보고 난 후, 비로소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만져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믿음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돼라."―요한복음 20장 27절
카라바조, 〈성모의 죽음〉, 1601~1605년, 캔버스에 유채, 369×245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카라바조, 〈엠마우스에서의 만찬The Supper at Emmaus〉, 1601년, 캔버스에 유채, 141×196cm, 내셔널 갤러리.
카라바조, 〈다윗과 골리앗〉, 1600년경, 캔버스에 유채, 110.4×91.3cm, 프라도 미술관 소장.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1598년경, 캔버스에 유채, 145×195cm, 국립고전회화관, 로마.
카라바조, 〈이삭의 희생〉, 1603년경, 캔버스에 유채, 104×135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소장.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The Calling of St. Matthew)〉, 1599–1600년.
카라바조, 〈십자가에 매달리는 성 베드로〉, 1600-01년, 체라시 경당,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로마.
카라바조, 〈젊은 바쿠스(Bacchus)〉, 1598년경, 캔버스에 유채, 95×85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젊은 바쿠스’는 카라바조의 초기작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술의 신으로 알려진 바쿠스(디오니소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의 머리를 뒤덮고 있는 포도나무 잎은 포도주와 연관되어 그가 술의 신임을 상기시킨다. 이 그림은 로마 체류 시절 그의 후원자였던 프란체스코 델 몬테 추기경(Francesco Maria del Monte, 1549~1627)이 자신의 친구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Ferdinando de’ Medici)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그림 속 바쿠스는 화가의 친구로 역시 화가였던 마리오 미니티(Mario Minnitti, 1577~1640)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술잔을 든 바쿠스의 손톱에 때까지 그린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이 역시 늘 품위 있게 묘사되던 ‘신’을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일반인들의 모습으로 묘사한 탓이다. 바쿠스가 들고 있는 술잔 속 포도주는 막 술을 따른 듯 거품이 일었다. 그의 앞에 놓인 한 폭의 정물화 같은 과실들은 얼핏 보면 탐스럽기 그지없으나, 자세히 보면 신선함을 잃어가고 있다. 시간이 다해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뜻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허무함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카라바조,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Boy with a Basket of Fruit)〉,
1593년, 캔버스에 오일, 70×67cm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카라바조, 〈나르키소스(Narcissos)〉, 1599년, 캔버스에 유채, 110x92cm, 로마 국립 고전미술관.
카라바조, 〈로사리오 기도 중의 성모〉, 빈 미술사 박물관.
카라바조, 〈메두사(The Head of Medusa)〉. 1597년, 60x55, 유채, 우피치미술관.
카라바조, 〈브레라 미술관에서 늘 자랑스러워 하는 카라바조〉.
카라바조, 〈류트 연주자(The Lute Player)〉, 1595년경, 캔버스에 오일, 100×126.5cm, 와일덴슈타인 컬렉션.
카라바조, 〈큐피드의 승리(Cupid as Victor)〉,
1600년경, 캔버스에 유화, 156.5x113.3cm, Gemäldegalerie(베를린 국립회화관)..
큐피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사랑의 신이다. 미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와 아레스 사이에서 태어나 사람들 사이에 애욕을 불어 넣는 일을 한다.
그림 속의 소년이 관객을 향해 눈웃음을 짓고 있다. 아이의 순수함과 성인의 섹시함을 함께 지닌 이 소년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神) 큐피드(아모르)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는 커다란 날개와 오른손에 쥔 두 자루의 화살로 소년의 정체가 큐피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소년의 발밑에는 건축용 T자, 컴퍼스, 바이올린, 현금, 악보, 갑옷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과학도구는 냉철한 이성, 갑옷은 육체적 힘, 바이올린과 현금, 악보는 교양을 상징한다. 즉, 사랑이 인간에게 필요한 기술문명, 군사력, 예술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카라바조는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도구로 자신이 개발한 명암법을 활용했다. 소년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 배의 주름살, 허벅지를 애무하는 날개의 감촉, 사랑의 승리(victory)를 의미하는 V자 모양으로 벌린 허벅지, 노출시킨 성기 등 강조할 부분에는 강한 조명을 비추고 나머지는 어둠 속에 숨겼다. 극적인 명암대조법으로 관능적이며 촉각적인 사랑의 속성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카라바조, 〈과일 바구니(Basket of Fruit)〉, 1599년, 비블리오테카 암브로시아나 도서관.
이탈리아 리라(Italy Lira) 지폐, 1990년 발행.
난간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고리버들 바구니를 보여주고 있다. 바구니에는 다음과 같은 여름 과일이 들어 있다.
「... 줄기에 붙어 있는 적당한 크기의 연한 붉은 복숭아. 잎에 벌레구멍이 있어 마치 동양과일나방(Orthosia hibisci)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인다. 그 아래에는 두 개의 곤충 진입 구멍이 있는 줄기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2색 사과가 있다. 잎 롤러(Archips argyospita)에 의한 피해와 유사한 곤충 포식으로 얼굴을 붉힌 노란색 배 1개; 무화과 4개, 흰색 2개, 보라색 2개—죽어 익어서 옆으로 갈라진 보라색 무화과와 탄저병(Glomerella cingulata)을 닮은 두드러진 곰팡이 그을린 병변이 있는 큰 무화과 잎; 그리고 곰팡이 반점을 보여주는 잎이 많은 박차를 가진 흠집 없는 모과 한 개. 검은색, 빨간색, 황금색, 흰색의 네 가지 포도송이가 있다. 오른쪽의 빨간색 클러스터는 여러 미라 과일을 보여준다. 왼쪽에 있는 두 개의 클러스터는 각각 지나치게 익은 베리를 보여준다. 포도 잎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심하게 말라서 오그라드는 반면 다른 하나에는 반점과 알 덩어리의 흔적이 있다. 바구니의 오른쪽에는 두 개의 녹색 무화과가 있고 왼쪽 뒤쪽에는 잘 익은 검은색 무화과가 자리 잡고 있다. 바구니의 측면에는 두 개의 분리된 새싹이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두 개의 잎이 있는 포도 새싹이 있다. 둘 다 메뚜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유사한 심각한 곤충 포식을 보여준다. 왼쪽에는 모과 또는 배의 떠 다니는 박차가 있다. 오른쪽에는 두 개의 잎이 있는 포도 싹이 있는데, 둘 다 메뚜기 섭식과 유사한 심각한 곤충 포식을 보여준다. 왼쪽에는 모과 또는 배의 떠 다니는 박차가 있다. 오른쪽에는 두 개의 잎이 있는 포도 싹이 있는데, 둘 다 메뚜기 섭식과 유사한 심각한 곤충 포식을 보여준다. 왼쪽에는 모과 또는 배의 떠 다니는 박차가 있다.」
벌레가 먹고, 곤충을 잡아먹으며, 일반적으로 과일의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것이 많이 만들어졌다. 시대의 문화에 따라, 일반적인 주제는 퇴색하는 아름다움과 만물의 자연적인 쇠퇴에 대한 것 같다. 학자들은 또한 과일 바구니를 교회의 은유로 설명한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4년 04월 11일(금) 「이은화의 미술시간(이은화 미술평론가)」/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