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3주일- 깨어있는 삶, 복음적 가난 실천
유승록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 1536~1541년,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예수님 당시에 유다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묵시문학의 표현으로 세상 종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묵시(?示)문학은 기원전 200년경부터 기원후 100년경 사이에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성행했던 사고와 표현방식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악의 세력이 지배하고 의인이 박해를 받지만 역사의 참된 주관자는 하느님이시며, 그 하느님께서 악의 세력을 심판하여 없애시고 의인들을 구원하실 결정적 시기가 임박했다는 것을 일러주어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북돋아 주는 것을 지향했습니다.
묵시문학에는 세상 종말이 오기 전에 여러 전조가 발생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오늘 복음에도 해와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우주적 징후들이 묘사되어 있고, 이어 사람의 아들 곧 예수님께서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다시 오시어 그분이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으실 결정적 때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깨어 기다리라는 것이 종말에 관한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도 깨어 기다리라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종말을 준비하며 깨어 기다리는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이미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담겨있다고 생각됩니다. 반대로 깨어있지 못한 삶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마치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듯 살아가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런 이들은 너무나 쉽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하거나 배제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제8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6년 11월 ‘자비의 희년’을 마치면서 매년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하셨습니다. 현대사회의 심각한 경제적 불균형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통감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희망과 신뢰를 회복하자는 취지에서 이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심각한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시면서 공정한 분배의 실현뿐만 아니라,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부족과 게으름 때문으로만 바라보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협적이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는 사회와 개인의 잘못된 태도의 교정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이루는 연대는 떨어질 수 없다고 하시며 우리가 먼저 복음적 가난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제8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중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우리 모두가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임을 말씀하시며, 하느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 목숨조차 없었을 것임을 기억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종말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는 우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지금 여기’에서 깨어있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일상의 만남과 사건들에 담겨 있는 하느님 뜻을 찾고 실천하는 노력, 그리고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는 애덕의 행위는 우리를 항상 깨어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유승록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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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