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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리그의 전신 1999프로게이머 코리아오픈 99 PKO는 원래 PKO라는 회사가 투니버스에 자신들의 리그를 방영하기로 계약하고 리그를 시작하였으나, 중간에 온게임넷(당시 투니버스)측과 PKO간의 의견충돌(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로 인해서 PKO가 사실상 손을 떼고 온게임넷측이 독자적으로 리그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대회에서 손을 땐 PKO라는 이름을 끝까지 유지한 이유역시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이 대회를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1회로 보느냐, 혹은 PKO가 이후에 새로 만든 리그들(SBS PKO 멀티챔피언쉽, 한게임배 서바이벌프로리그 등등)의 1회 대회가 되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이에 온게임넷측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3부터 99 PKO를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1회 대회로 인정하지 않고 2000 하나로 통신배부터 1회 대회로 인정하기로 결정하였지만 PKO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회사라 그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참고로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36강 A조 엔딩에서는 99 PKO의 우승자인 최진우선수를 포함시켰다.) |
99PKO에 참가한 김창선해설위원 8강에 오르며 4승2패라는 괜찮은 성적을 올렸지만 최진우선수와의 테테전에서 전무후무한 노시즈 퉁퉁포온리탱크러쉬경기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다. 김대건,조정현선수등과 함께 현재 프로토스상대 벌쳐탱크메카닉을 확립한 선수이기도 하다.
기욤패트리이전 스타오리지날의 최강자라 불리며 최초의 외국인선수로 출전한 스웨덴국적의
빅터마틴
'코넷'광고로 프로게이머존재를 세상에 최초로 알린 쌈장 이기석 세계최강으로 불렷지만 그후에 배틀넷 어뷰저사건등으로 선수생명에 상당히 심각한 손상을 입기도햇다. 이대회에서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엿지만 예선탈락하는 이변이 연출됬으나 본선에 진출한 한선수가 개인사정으로 대회를 기권 와일드카드전을 통해 본선에 올라왔다. 3위에 입상했다.
영원히 남을 초대우승자 최진우 저그중심의 랜덤게이머였고 지금 저그들이 흔히 구사하는 사우론저그의 확립자이기도 하다. 이당시 최진우의 사우론저그는 지금처럼 단순 4,5해처리가 아닌 로스트템플맵에서 앞마당과 미네랄멀티만 먹고 10개넘는 해처리를 지어 온리 아드레날린 저글링만으로 몰아부치는 스타일이었다. 정석에 구애받지많고 정말 자유로운 스타일을 구사하던 선수엿으며 김창선선수와의 8강 노시즈퉁퉁포온리탱크3부대경기는 전설적인 경기로 남아있다. 결승전날 술을 존나게 처먹는바람에 숙취로인해 결승전에 기권패할뻔한 지금으로선 상상도못할사건이 일화로 남아있다.
1999년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이 끝나자 해가 바뀌어 2000년이 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2회에 해당하는 <하나로 통신배 스타리그>가 막이 올랐다. 1회 대회 우승자인 최진우, 준우승 국기봉, 3위 이기석, 4위 김태목 선수가 시드를 받아 본선에 직행하였다. 최초로 레더맵이아닌 자작맵이 사용된 대회이기도하다.(블레이즈 다크스톤 스페이스오딧세이 딥퍼플 글레셜이포크)
하지만 예선부터 상당한 파란이 일었는데 시드권을 제외한 99년을 수놓은 많은 강자들이 대거 탈락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눈에 익은 프로게이머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배틀넷의 시대가 끝이 났다는 점이고 배틀넷 세대들의 전성기는 98년~99년까지 였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밀려 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로 통신배 스타리그>최대의 사건은 바로 98년, 99년 전 세계 셀수도 없이 많았던 스타 크래프트 온/오프라인, 아마추어/프로게이머중에서도 절대 강자이자 1인자로 군림했었던 선수가 마지막으로 남은 한국마저 정복하러 나타났기 때문이다. 바로 X`ds-Grrrr...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면서 악몽같은 실력을 선사하던 기욤 패트리가 그 주인공이다.
99년 PC통신상에서 기욤 패트리만 꺽는다면 세계최강이라는 말이 곧 잘 나왔을정도로 당시 기욤패트리는 이견이 없는 전 세계의 정점에 서있었다. 99년 당시만 하더라고 전 세계를 돌면서 약 40개의 메이저급 대회를 (아쉽게도 현재 남아있는 기록은 몇 안되지만 공통적으로 당시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증언하고 있다.) 우승한 절대 실력가였기에 당시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반응은 올 것이 왔다 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기욤 패트리가 한국에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스타 크래프트>는 대세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욤 패트리는 한국에서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얻고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아예 완전 짐을 싸들고 와서 한국에 눌러살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그리고 대회 예선장에 나타난 기욤 패트리는 그 명성답게 놀라운 플레이를 선사하며 본선에 가볍게 진출하는데 그중 인상적인 것은 섬에서 프로토스 VS 프로토스 전의 경기였다. 당시 기욤 패트리는 자신의 리버를 격추당하고 일꾼마저 몰살당하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프프전에서 이런 상황이면 패배나 다름이 없었다.) 기욤은 웃으면서 침착하게 역전을 이루던 장면이었다. 동시에 다른 게임에서는 대규모 부대를 컨트롤 하는 장면을 선사하면서 대회 예선장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16명의 선수를 선발한 끝에 4개의 조가 나누어진 <하나로 통신배 스타리그> 역시 본선에서도 화제의 중심은 단연 기욤패트리가 어떤 조에 속하는지가 문제였다. (당시 누구나 피하고 싶은 상대였다.) 그리고 기욤 패트리는 B조에 속하게 되는대 여기서 사건이 터져버렸다. 온 게임넷 스타리그 역사상 최악의 조 중 하나로 언급되는 조가 바로 <하나로 통신배 스타리그>B조 였기 때문이다. 당시 B조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B조 - 국기종 (준우승 시드) , 기욤 패트리, 김정민 , 유병준
국기봉? 최진우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저그, 기욤? 세계최강! 김정민? 배틀넷상과 각종 오프라인에서 최고의 테란으로 급부상한 실력가!, 유병준? 우주방어테란으로 명성을 떨친 실력자. 4명다 전부 명성과 실력을 보유한 실력자들이 포진되어 있어 B조는 그야말로 죽음의 조로 편성되면서 최고의 빅카드를 구비한 조였다. 그리고 운명의 B조 개막전 기욤 VS 국기봉의 대진이 시작되는데 기욤 패트리는 개막전부터 충격으로 몰아넣으며 국기봉을 가볍게 제압한다.
당시 기욤은 랜덤 테란이 나왔고 국기봉은 저그, 하지만 초중반 무렵 기욤은 한순간에 게임을 제압해버리는데 지금도 올드 팬이라면 잘 아실 옵틱컬 플레어 러쉬를 보여주었다. 당시 기욤은 탱크 한기와 베슬1기 마린 메딕 합쳐서 12기 가량으로전진하고 있었으나 국기봉의 럴커에 진군이 곤란하다고 생각될 찰나에 메딕의 옵틱컬 플레어를 개발하면서 (옵틱컬 플레어 - 시야를 0으로 만들어버리는 기술. 그때나 지금이나 볼 확률은 거의 없다 -_-) 럴커에게 시전, 당황한 국기봉은 후퇴를 하나 바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욤은 러쉬를 감행해서 끝내버린 경기였다.
당시 한국은 빌드에 의해 거의 대부분 승패가 갈릴 정도로 빌드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었지만 기욤은 <스타 크래프트>는 전략과 전술이 있는 게임이다 라는 것을 깨우쳐주는 듯이 빌드 보다는 전략과 전술의 운영을 보여주면서 당시 한국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후 기욤은 4강에서는 변성철을 완파하고 결승에서는 강도경을 맞아 3:2로 제압하면서 한국에서 첫 우승을 일군다. 그 후 기욤은 각종대회를 우승하면서 우승상금만 7000만원이 넘어가면서 (지금도 한해 7000만원을 넘 길수 있는 프로게이머는 한~두명이 유일하다.) 2000년을 자신의 시대로 만들어버린다.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경기 온게임넷 FINAL 2000 왕중왕전결승 기욤 VS 국기봉 건국대학교 새천년기념관
2000년 7월24일 세계최초의 게임방송 온게임넷이 개국을 하였다. 이당시만해도 온게임넷은 음악채널 엠티비코리아에 편재되있어서 하루에 6-7시간정도만 방송을 하고 나머지는 엠티비가 나오는 방식이었다. 2001년부터 완전한 독립채널이 된다.
그리고 8월부터 온게임넷정식최초스타리그인 프리챌배온게임넷스타리그가 개막한다. 이대회부터 지금의 오픈스튜디오의 본산이라 할수있는 코엑스메가웹스테이션피씨방이 오픈스튜디오로 만들어져 지금처럼 스타리그관람문화가 시작되었다. 일반언론지상에 스타리그기사가 나가는 최초의 대회이기도하다.
프리챌배스타리그 결승전은 스타리그도 축구나 야구처럼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보러와주진않을까라는 당시로서는 정말 웃기지도 않는 발상의 전환으로 2000년11월1일 연세대학교백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이것이 지금의 야외결승전의 시초이다. 당시에도 기념관이 꽉꽉들어차 천명조금안되는 관중들이 왔으며 이것을 계기로 스타리그가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있다는 믿음을 주게되었다.
당대최강저그로 불리며 압도적인 승률로 올라온 봉준구(봉준구의 저그전은 지금의 이제동의 저그전만큼 강한것이어서 지금도 저그전 10승3패로 랭킹에 올라와있다.)와 지금은 프로토스의 아버지를 넘어 신화가 되어버린 당시에는 신예프로토스에 불과한 김동수의 대결로 봉준구의 압승이 예상되었지만 예상외로 김동수가 일방적인 경기로 3:0우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김동수는 대회의 엉성한 규정으로 인해 당연히 받아야할 차기리그(한빛소프트배)시드를 받지못하는 바람에 예선에 참가했으나 떨어진불운을 겪게된다. 한마디로 대회우승자가 다음대회에 참가를 못하는 지금으로서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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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겜블러
기욤 겜블러도 관두고 회사다니고잇음 우리나라에서 다니는지 캐나다에서 다니는건진 모르겟다 저번에 인쿠르트결승전에 온거보면 우리나라에서 아직사는듯 거의 반한국인임
더올려줘
아학아학.. 이런거 좋다.. 갠적으로 올림푸스배를 가장 재밌게 봤었지만.. 16강 부터 결승까지 내용이 너무 알차다.. 질렛트도 재밌었고
나 김동수랑 친했는데..같은 아파트 살았었고 동수형 엄마랑 우리엄마가 친구임 ㅇㅇ .참고로 김동수가 수원에 유신인가 창현고 나왔는데 모의고사 380/400 정도 찍었었음(스카이 갈 정도)..근데 고3때 게임에 빠져서 좆망하고 대충 용인명지대에 걸쳐놓고 군대연기하다가 병역특례받았음 ㅇㅇ
그렇게하면 이주영이 최고임 비평준명문고인 안양고출신에 전교10등권안에서 놀앗으나 고3때 스타하다 좆망하고 성균관공대다니다 게이머로 지금은 중퇴
나도 고3때 스타에 빠져서 스타 존나보고 스타 존나하다가 연대옴...
아... 봉준구. 봉준구도 공부 잘했다던데, but 지금은 겜방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