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까지 일본 NSC 차장을 역임한 가네하라 노부카츠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 결국 눈물을 머금고 그의 책을 구매했습니다. 아직 조금밖에 읽지 못했는데, 일단 서장만 간단하게
번역해서 소개해드립니다. 그의 mission statement가 무엇인지 대강 파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서장을 읽으면 대강
그의 세계관이나 역사관 등을 알 수 있으니 좋은 참고자료가 될듯하며 현재 아베정권의 핵심인사들이 무슨 생각을, 어떤 세계관으로
사고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오늘은 일단 서장만 번역하고, 조만간 조선 관련 파트 및 러일전쟁이나 청일전쟁 관련 부분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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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유적으로부터 출토된 도자기의 파편이나 고문서를 수집하는
것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거기서부터 무엇을 읽고 취할 것인가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일본의
외교사료관을 포함하여, 각국의 외교문서관으로부터 새로운 사료가 종종 새로 밝혀지고 있다. 고난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기 또는
사문서도 시간이 지나면 공개되는 경우가 다수 있다. 새로운 사료를 읽는 것은 학문적 정밀함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수준급의
역사학자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 기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고자하는 것인가는 오늘날이라는
시대와 관련이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사고방식, 이익, 가치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의 국제정치,
경제의 조류 또한 우리의 시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서만 씌여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관련되어 쓰여지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논리적 역사가 필요하다. 그것은
백과사전과 같은 건조한 단편적 지식의 집합이 아니다. 영어로 말하자면 "네러이티브", 즉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통신수단의 발달에 의해 지구적 규모의 방대한 양의 정보가 흐르고
있는 오늘날, 세계 구석구석의 사건이 곧바로 자국에도 전달되고 있다. 우리들은 인류전체를 시야에 넣어 지구적 규모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통사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를 회상하자면 우리들은 사나운 제국주의국가 간의 투쟁 또는 선진공업국의
번영, 동서냉전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의 사람들의 마음에 팽배하게 솟구친 그들의 인간성회복의 욕구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미래를 보기 위해 과거를 본다. 공통의 미래가 있다면 과거는 공유할 수 있다. 역으로 봐도 마찬가지이다. 미래가 변한다면 과거 또한 변하는 것이다. 역사는 항상 살아있다.
우리들은 어디에 서있는 것일까?
그럼 우리들이 역사를 보는 시각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가?
20세기는 극적인 혼란의 세기였다. 그 시대를 살아간 당사자들에게는 전체양상이 보이지 않았으 것이다. 마치 놀이공원의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처럼 단편적인 풍경이 시야에 들어와 사라졌을 것이 틀림없다. 다행이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20세기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보다 잘 알 수 있다.
20세기 말, 냉전이 종결되고 그 후에 나타난 것은 미국이
자국의 건국이념을 국제사회에 확산시켜 주도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이다. 오늘날, 노회한 유럽에서는 자유주의의 쇠퇴가 보여지고
있으나 지금 아시아의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름의 등불이 켜져 그들 또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참가하고
있다.
아시아뿐만 아니다. 중남미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보편적 가치관이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거나 혹은 그것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의 홍콩사태는 경제적격차를 이유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희망하는 사람들에 의한 독재와의 싸움인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들이 신봉하는 가치관을 통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그것은 자유, 평등, 민주주의, 법치와 같은 보편적 가치관이다. 그 근저에는 사람 한명 한명을 존중하는
것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다. 피부의 색, 눈의 색, 인종, 문화, 정치신념, 종교 등을 초월하여, 국경을 초월하여,
또는 시대마저 초월하여 인류를 귀하게 하는 도덕적 가치이며 그것은 인간이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며 누구도 그 존엄을 침해받지 않게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인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전쟁, 폭력, 대량학살, 식민지배,
인종차별, 공산당독재와 다른 개발독재를 거부하는 것이 가능하다.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를 거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격차를 의회정치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중략)
일본은 무엇을 틀렸던 것일까?
본서의 시각으로 삼는 보편적 가치관으로부터 20세기의 일본의
역사를 볼 경우, 아무래도 울 수 밖에 없는 것은, "왜 일본의 외교는 틀렸던 것일까? 19세기의 약육강식의 세계가 20세기에는
보편적가치관에 기초한 국제질서에 변화한 것을 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까?" 와 같은 물음 때문일 것이다. --역자 주: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일본이 도덕적으로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국제질서의 흐름을 캐치하지 못했다는 푸념입니다.
우리들의 조부들은 결코 잔혹한 침략자도, 잔혹한 독재자도
아니었다. 당시의 세계를 지배한 백인종과는 다른 피부색으로 태어나 잔혹한 제국주의국가들의 권력투쟁의 한 가운데에 서서 어리고
가냘픈 몸 상태로 뛰어들어 새로운 이념의 국제질서를 실현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친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 나루호도!!
그것에는 통수권의 독립과 군의 폭주의 모습과 같은 커다란 과오도
있지만, 옳았던 메시지도 있다. 나는 1930년대 후반 이후 잘못을 저지른 국가지도자들의 시대에 괴로워도 억울해도 필사적으로
자신을 납득하려고 했었던 흩어져있던 일본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패전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신체의 일부를 잃고,
재난과 기아의 시대에 끈질기게 살아간,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 일본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유감이지만, 일본은 30년대 이후, 총력전의 악몽에 집착하여
독일과 같이 당시의 패권국이었던 영국, 미국, 프랑스에 도전하였고 아시아의 해방을 주도하면서 유럽이 주전장있던 세계대전에 아시아의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였다. 통수권의 독립이라는 잘못된 헌법을 지키려했던 총사령부(육군참모본부와 해군군령부)가 협소한 군사적
이익을 국익으로 삼아 전면에 내세워 정치와 외교를 파탄시키고 폭주해버렸다.
당시는 전간기의 자유주의적 국제협조주의가 빛을 상실하여 세계를 전체주의적인 분위기나 현상타파의 분위기에 일본도 휘말리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의 행동은 전승국이 된 구식민지세력으로부터, 식민지 침략이라고 비난당했고, 비참한 전장에 놓여버린 아시아인들로부터도
원망을 샀다. 고립되고 파괴된 일본은 전후 유럽에도 아시아에도 발을 디딜 곳을 상실했다. 그리고 깨끗하게 자신의 거쳐온 길을
도덕적으로 부정한 일본인은 세계관과 역사관을 상실했다.
보편적적 가치관과 일본
하지만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래 추구했던 것은 아시아인의 자유와 독립, 피부의 색과 무관하게 평등한 국제사회였다.
일본인이 추구했던 정의로운 국제질서는 전후가 되어 조금씩 모습을 나타냈다. 전후, 간디나 수하르토 또는 호치민과 같은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차례대로 자력으로 독립을 성취했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유감이지만 그것을 먼저 성취하려고 했던
일본은 패전국이라는 오명 하에서 그늘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세계는 냉전이라는 전승국 간의 분열과 대결의 시대에
빠져들었다. 신흥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라 나라들은 자신의 손으로 하루라도 빨리 부국강병을 이룩하고자 했고 개발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아시아의 식민지제국은 러시아(소련)을 제외하면 모두 유럽의 민주주의국가들이었다. 인종차별 또한 그대로 남아있었다. 신흥
독립국은 강력한 주권의식을 가져 종주국의 민주주의보다 경제개발을 더 선호했다. 아시아, 아프리카에는 공산권이 되거나 또는
자유주의권에서도 독재국가들이 난립했다.
전후 75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의 국가들은 대부분 반세의
개발독재의 시기를 거쳐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중산층이 성장하여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하였다. 또한 구 식민제국이었던 유럽국가들도
민족자결을 인정하고, 제도적인종차별을 철폐했다. 그리고 공산권은 멸망했다.
개인의 존엄, 자유, 평등, 민주주의, 법의 지배라는
보편적가치관이 귀해진 국제사회가 지구적규모로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이 평가되는 시대가 등장한 것이다. 그
지각변동은 오늘날 홍콩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것처럼 아시아에서 최고로 격렬하다.
일본은 전후반세기를 거쳐 냉전이 종료된 때로부터 집행유예의 범죄자와 같은 태도를 처분하고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는 말을 당당하게 입밖에 낼 수 있게 되었다. 세대도 교체된 지금 일본은 자유를 확대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을 제창하며 아시아에 출현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지원하는 리더로서 역할을 다하려고 한다. --역자주: 오늘날 일본의 외교전략에 대한 미션 스테이트먼트입니다.
보편적 가치관은 서양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아시아인이
중요시했던 인간의 온화함을 필두로 하는 규범을 그저 다른 말로 표현했을 뿐이다. 약자를 밟아 짓누르는 횡폭한 권력을 허하지 않는
사고방식은 이름만 다를 뿐 동서문명 모두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이다. 그것을 선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비유럽국가이면서 아시아에서 근대화를 성공시킨 일본이다.
https://pgr21.com/freedom/87431
영일동맹의 체결과 러일전쟁
역시 러시아는 남하하기 시작했고, 일본과 부딪혔다. 1900년
중국에서 외국배척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의화단사건이 일어나 러시아는 국제연합군을 통해 의화단을 진압하였고 그대로 만주에
눌러앉아버렸다. 만주에 주둔한 러시아군의 위협은 육지로 이어진 조선반도로도 이어져 곧 일본에도 전해졌다.
인도, 말레이시아, 홍콩을 손에 넣은 영국은 아시아 중심부로부터
러시아의 팽창을 경계하였기에 일본과 동맹을 체결하게 되었다. 국력이 불안정했던 일본은 1902년 영일동맹을 체결하여 러시아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선택했다. 당시 국제정치로 보자면 유럽에서 독일이 급격하게 부상하여 독일을 상대하기 위해 프랑스-러시아가
협약을 체결하였고 영국은 영광스러운 고립을 뒤로 하고 프랑스, 러시아와 협상하는 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육군이 열세였던
영국은 세계적 식민지획득 경쟁 차원에서, 특히 극동과 인도에서 러시아를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급속한 근대화로 말하자면, 아직 국력이 작았던 일본은 대영제국
입장에서 알맞은, 영국을 위한 극동의 선발대였던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영일동맹은 통과하기 위한 선박이었다. 영일동맹 체결 후
영국이 그늘에서 일본에게 힘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와 일본의 각축은 조선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둘러싼
것이었다. 황해해전, 뤼순항봉쇄작전, 203고지의 격전, 쓰시마해전 등 러일전쟁은 모두 조선반도 주변에서 싸운 것이다.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황국의 흥망이 여기 일전에 달려있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한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파괴시켰다. 러시아측의 사망자가 4천5백명이었던 것에 반해 일본 측의 사망자는 100명 정도였다. 완승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비유럽적 전통의 국가 중에서 홀로 구미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산업국가로 발돋움했다. 그 일본이 러시아를 패배시킨 것은 "어떤 나라도 근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산업화를 먼저
이룩하여 세계를 수탈한 구미열강의 시대가 영원하지 않다"라는 생각과 희망의 메시지를 세계 각지에 확산시켰다. 러시아의 폭정에
시달린 국가들에서는 오늘날에도 러일전쟁의 일본승리를 축하하며 칭송한다. <-- 역자주: 아아.... 주모 국뽕 사케 좀 더
주시오!!
(중략)
일본의 조선통치를 검증하다
그 후 일본은 조선반도를 병합하게 되었다. 신생 대한제국을 러시아에 저항하는 강력한 국가로 변모시키는 것은 일본의 국력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 일본의 조선반도경영의 우선적 관심사항은 대러안전보장이었다. 병합 후 조선을 근대화시켜 러시아에 대한 방비를 하기 위함이었으며 그것이 일본의 국익이라 생각되어졌다.
그 후 러일관계는 안정화되었다. 또한 미일간에는 가쓰라-태프트 협정이 체결되어 필리핀이 미국, 조선반도가 일본의 세력권으로 획정되었고, 미일관계 또한 안정되었다.
한국의 학자 중에서는 가쓰라-태프트 협정이 일본의
조선통치를 가능하게 만든 원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만약 미국이 일본을 조선반도로부터 구축했었더라면 조선은
입헌민주주주의의 군주제국가로서 독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 꿈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의 지정학적 역학을
생각해보면 일본이 약체화되었다면 조선반도는 미국이 아니라 곧바로 러시아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조선사람들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혹은 부리야트인들과 같이 러시아 또는 소련의 일부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시 미국 또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광대한 서부를 손에 넣은 미국은 메이지 유신 즈음하여 남북내전을 거치고 국가통일을 이룩했고 그대로 태평양에 진출하여
여왕이 통치하던 하와이를 병합했다. 그리고 필리핀의 아기날도는 미-서 전쟁을 계기로 독립하였으나 미국은 이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그
희생자는 수십만에 달한다.
가쓰라-태프트 협정은 미일간의 세력획정을 위한 것으로 일본측의 이익과 미국측의 이익을 상호 인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조선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호국화 또는 세력권획정은 제국주의의 전성기였던 20세기
초기까지 보편적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은 오스만제국령이었던 이집트를 1882년에 사실상의 보호국으로 삼았고, 그 이후
영불양국은 프랑스의 모로코 지배와 영국의 이집트 지배를 상호 인정했다. 영국이 오스만제국에게 이집트의 보호국화를 정식으로 통고한
것은 한일합병으로부터 4년 후 1914년의 일이었다.
일본의 조선반도통치를 둘러싸고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 영향을
받은 관점, 식민통치가 "암흑 그 자체였던 지옥도였다"는 식의 주장이 70년대부터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또한 전쟁
당시 연합국의 선전에도 영향을 받았다. <--역자주: 연합국의 선전 탓이라는 건가?
물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21세기의 오늘,
어떤 식민지배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리고 조선반도의 병합 전후 발생한 의병운동진압의 과정에서 2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1919년 일어난 3.1독립운동 이후 치안이 안정화되고 조선반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고집스러운 게릴라운동도 없었다. 독립운동도 모멘텀을 상실했다.
일본지배 하에서 조선의 폐쇄적인 전통적 유교사회와 결별하고 조선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매진한 사람들도 있었다. 봉건적인
신분제사회로부터 결별하고 근대일본 하에서 자기실현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세계의 식민지배와 비교해보면 일본의 식민지배가 특별히 잔혹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본의 입장에서 대러안전보장이 조선병합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조선을 부유하고 강하게 만드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합치하는 것이었다. 구미열강과 같은 수탈형의 식민지경영은 조선의 약체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오히려 러시아의 초대를 부르는 것이다. 본래 세계각지의 식민지경영을 비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전전의
학자 오카와 슈메이가 진행한 유럽의 식민지 정책과 일본을 비교 검토하는 등의 연구는 유감이지만 전후의 일본에서는 적은 편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결국 객관적인 통계적 연구가 진행되었고 경제사학의 전문가들이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소속의 연구자가 출판한 [일본통치하의 조선]과 한국 서울대학교의 이영훈 교수의 [반일종족주의]가 그것이다. <-- 역자주: 여기서 갑자기 등판하신 이영훈 씨... 앗!앗!
첫댓글 별 개쓰레기 같은 책이 다있네요. 길냥이용 침대로 쓰면 딱이겠습니다
그 개쓰레기같은 책을 쓴 저자가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차장이란게 중요한거죠 일본의 마인드가 저런거란 소리니까요
@racoon 솔직히 크게 놀랍지도 않습니다. 현 일본정부는 장차관급 인사 전원의 역사인식이 저따위일테니까요. 일본회의 얘기가 괜히 나오는것도 아니구요.
@코르 일본 각료, 의원들이 굳이 숨길 생각도 없이 기회 있을 때마다 자주 드러낸 인식이죠
핵 두 방 맞고 한번 망해보고 나서도 이렇게 달라진 점이 없으니 한일우호의 길이 참으로 멀고도 험합니다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솔직히 한일우호의 길이 열린다 해도 경쟁국인데 경쟁국 고위층의 마인드가 히틀러 수준의 마인드면 환영이죠 ㅎㅎ
연합군 지휘부도 못난 적 지휘관은 제거 하지 않기로 했던 결정과 같은거죠 ㅎㅎ
물론 일본이 자꾸 태클걸어서.. 걸림돌이 되기야 하겠지만 일본 고위층의 저정도 수준의 상황인식은 본인 나라의 잠재력을 깍아먹는 것이니
고집스러운 게릴라도 없었다-그 게릴라들 지리산으로 다 몰아서 남한대토벌작전으로 민간인이고 의병이고 다죽이니 없지...말이라고 지금 그걸 말하나...(한숨)
222 이미 남한대토벌에서 낙지 벨라루스 초토화작전 뺨치는 학살극을 벌였으니 만주로 이동한거죠. 독립운동의 모멘텀 상실도 개소리인게 압록강 너머로 밀려났을뿐, 연해주와 만주에서 일제 패망 직전까지 줄기차게 죽기살기로 싸운게 우리 독립군들인데 말이예요.
개빡치네요.
@bamdori 근데 저런 유의 생각은 쿨게이 돌대가리 신라빠들도 늘상 하는 얘기긴 합니다. 통일신라 시기에 고구려계, 백제계들이 이렇다할 무장반란이 없었으니 신라가 통일한 순간 백제계, 고구려계 유민의식은 모두 리셋되어 없어졌고 후백제니 고려니 하는 것들은 그전시기 백제, 고구려와 관계가 전혀 없다는 개드립들이 은연 중 퍼져 있습니다. 애당초 진압할 건덕지는 부흥운동 때 당나라가 다 즈려밟았으니 그 이후 무장반란이 신라 중앙정부가 무력화되기 전엔 없는게 당연한건데, 멍청한 놈들은 그걸 모르죠.
일본은 보편제국이 아니며 포용력있지 못하단 사실을 모르는건 일본사람들밖에 없는거 같아요.
"세계의 식민지배와 비교해보면 일본의 식민지배가 특별히 잔혹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표현 그대로 써서 "2차대전 당시 다른나라의 피해와 비교해보면 도쿄대공습이나 원자폭탄으로 인한 일본의 피해가 특별히 잔혹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돌려주고 싶네요
ㅋㅋㅋㅋㅋㅋ예끼 닛본 느그들 손해에 비하면 소련은 와우... 진짜 통계학적으로 갈려나갔어 ㅇㅅㅇ 독일도 전략폭력으로 드레스덴이 싹 지워지고 폴란드는 인구의 20프로 가까이 사라졌단다. 느그들 피해 수준이면 전혀 특출나지않다
우욱...씹....
결론: 우린 잘못한거 암것도 없어
변한거 없는 잣같은 새끼들이죠 끌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