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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눈부시지만 1
2013. 10. 금계
해넘이.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그녀의 머리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싶다.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이정하) 나는 이제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뿐 아니라 지구의 냄새를 오래도록 맡고 싶다. 기쁨은 너무나 잠시뿐이다. 유달산 왼쪽으로 넘어가는 태양은 너무나 휘황하고 눈부시지만 나는 지상에 머무를 시간이 길지 않음을 예감하고 눈물이 난다.
노르웨이의 여름하늘은 명징하고 눈이 시리게 푸르렀지만 한국의 가을하늘도 깊고 아늑하게 푸르렀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해수욕장 모래밭에서부터 나는 태양교 신자가 되었다. 적도 가까운 상공에서 직격탄처럼 퍼부어 내리는 빛의 알갱이들이 삼라만상의 밑바탕을 송두리째 까발리던 것이었다. 나는 모래밭에 엎드려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눈부신 해님에게 떨리는 가슴으로 경배를 올렸다. 해님은 나를 비롯하여 지상의 온갖 존재를 빚어낸 창조주였다. 해님은 무소부재요 전지전능하셨으며 우리는 해님의 분신이었다. 빛살은 해님이 베푸는 자비로운 은총이었다.
그 뒤로 빛이 눈부신 곳마다 거룩하신 창조주의 발자취임을 깨닫고 감격하여 눈물이 났다. 나뭇잎과 여울물이 그림자를 더불어 반짝일 때마다 그녀의 머리냄새처럼 창조주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안스리움.
네덜란드에서 들어온 종자라던가. 꽃 이름이 안스리움인데 이름과는 달리 안쓰럽기보다는 너무나 화사한 분위기다. 화무십일홍이라 했거늘 아내의 생일 기념으로 사왔는데 두 달이 넘도록 멀쩡하고 도리어 새 잎이 돋아났다. 창문을 파고든 해님의 은총이 잎사귀와 꽃잎에 달라붙어 올리브유를 발라놓은 듯 반지르르하다. 누군가 꽃이라고 부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씨부렁거렸지만 빛이 아니었더라면 꽃이고 잎이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자기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에서 中華라 했다지만 이스탄불에 가보니 소피아성당에도 ‘우주의 배꼽’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거기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뜻이겠지.
내 산책의 출발점은 항상 우리 집 위 철길을 뜯어낸 곳에 조성한 웰빙 공원이다. 내 우주의 중심은 언제나 이 산책로이다.
가을 햇살이 갈색으로 시들어가는 배롱나무 잎사귀를 비춘다. 배롱나무 밑의 철쭉도 갈색으로 물들었다.
피라칸사스.
정원의 가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대표적인 열매. 정열적으로 빨간 알갱이들 구석구석까지 햇빛이 파고들어 생명의 결실을 축하해주고 있다.
저게 무슨 콩인고. 산책로 가장자리 울타리를 타고 올라온 울타리콩의 보랏빛 꽃대궁과 콩깍지가 참 우아하고 예쁘다.
기쁨은 잠시뿐이라지만 나는 또 피라칸사스와 울타리콩에 봄부터 퍼부어진 해님의 은총을 떠올리며 소년처럼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10월 14일 오후, 나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버스 터미널로 이어지는 산책길에 나섰다.
햇빛은 투명했고 가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렀다. 예쁜 주택들이 밝은 햇볕 아래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양을산 소나무들도 가을 햇볕을 온몸으로 옴팡지게 쓸어 담으며 땅위의 기쁨을 은밀하게 찬양하고 있었다.
초록색 길은 인도, 고동색 길은 자전거 도로. 예전에는 자전거가 중요한 생활용품이었지만 이제는 운동 겸 취미생활 도구로 탈바꿈했다. 오른쪽 나무들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고 왼쪽 나무들은 가을 햇볕을 만끽한다. 아주머니의 자전거도 길바닥에 길게 널브러졌다. 목포에 이렇게 환상적인 산책로가 생긴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3,40년 전에 비해 꽤 윤택해진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자전거는 내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보다 기어도 달리고 색상도 세련되어 훨씬 타기 좋아진 모양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기어도 달리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언덕을 올라채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었는데 시대를 잘 못 타고 난 것 같아 조금 억울하다. 뭔 소리여. 사람으로 태어난 자체를 고마워해야지.
나는 소년시절에 산길을 걷다가 자귀나무를 만나면 미모사인 줄 알고 자꾸 건드려보았지만 움쩍도 하지 않았다.
봄철에 선녀의 야회복처럼 매혹적인 분홍색 꽃을 피워 올리던 자귀나무는 꽃이 하늘거리던 자리에 씨앗을 품은 깍지를 달았다. 수고 많았다고 치하하는 뜻으로 해님은 깍지와 이파리에 아낌없이 빛살을 쏘아준다.
교회 첨탑도 많이 세련되었다. 예전에는 묵직하고 완강하여 위압감이 들었는데 저 현대식 첨탑은 견고하면서도 가볍고 산뜻하다. 해님은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들이 교회를 세우건 사찰을 짓든 나처럼 당신에게만 경배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십자가에도 나뭇잎에도 공평하게 다사로운 가을볕을 푸짐히 내려 보내준다. 버스터미널 부근 산책로 옆 잔디밭.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즐기기도 하는 곳. 여기저기 나무 그림자가 누워 있다. 그림자는 빛의 또 다른 이름이다. 빛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닌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가 있어야 빛이 도드라진다.
소위 신도심이라는 하당에는 이렇게 툭 트인 잔디밭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건물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버스터미널에서 평화광장으로 이어지는 하당 유일의 산책로. 그나마 중간 중간 자동차 도로에 막혀 건널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어째서 소위 신도심이라는 하당에 차 안 다니는 거리가 드문지, 설계한 사람들이 자격증이나 있었는지 의심이 간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 북유럽은 도시 전체가, 아니, 나라 전체가 국립공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산책하기 좋고 아름다웠다. 초록바다횟집. 저 집은 회가 맛깔스러울 것 같다. 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간판에 관심이 많다. 예쁜 우리말 간판을 만나면 참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뭐니뭐니해도 우리나라 말살이를 어지럽히는 으뜸 범인은 텔레비전이다. 아조 꼬부랑말로 버라이어티 쇼를 하고 있다.
우리도 프랑스처럼 법을 만들어서 게나 고동이나 꼬부랑말 내갈기면 벌금을 왕창 물려야 쓰겄다.
북경의 텐안문 광장이나 스톡홀름의 시청 광장에는 못 미치지만 평화광장은 목포 시민들의 훌륭한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기에도 안성맞춤이고 혼자 또는 여럿이 자전거 페달도 돌릴 수 있어 가족끼리 연인끼리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언젠가는 이 부근에서 봉사정신이 투철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비야 씨의 강연을 들을 수도 있었다. 평화광장에서 바다 건너 바라다 보이는 아담한 산이 목포팔경으로 꼽히는 아산이다. 아산에 아련히 안개 휘감아 돌며 봄비 보슬거리는 牙山春雨가 아름답지만 가을 저물녘 바다 위로 갈매기 한 마리 호젓이 선회하는 풍경도 썩 괜찮아 보인다. 내 시선도 갈매기 따라 허공을 가로지르며 빛이 사위어서 차츰 밝음을 잃어가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퍽이나 쓸쓸해한다.
나는 저렇게 단순하면서도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구조물을 만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왜 우리의 학교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성냥갑 모양을 하고 있을까. 목포에서 이만큼 직육면체에 변화를 주어서 현대적 감각을 살린 쌍둥이 건물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빛의 정수를 모아놓은 것이 꽃이다. 어수선한 건물을 배경으로 시청에서 재배한 꽃이 평화광장 산책길 가장자리의 공중 화분에 담겨 석양빛을 받으며 소리 없는 함성을 지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참 많이 살 만해졌다. 동족상잔으로 황폐했던 땅이 광장에 꽃을 매달아놓을 만큼 셈평이 펴졌다.
초등학생 때 우리는 식목일이면 일제히 삽괭이를 떠메고 민둥산으로 올라가 소나무 묘목을 심었다.
오륙십 년 동안 자란 소나무들은 민둥산을 푸르게 뒤덮고 이제 번잡한 도회지까지 진출했다. 목포도 좀 빤한 빈터다 싶으면 모조리 정원수로 승격한 멋쟁이 소나무들이 점령했다. 그 중에서도 이곳 갓바위 어귀의 소나무들은 제법 우거진 숲 분위기까지 자아내며 보는 이의 눈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목포 앞바다를 누비던 유람선 스타마리너가 평화광장 끄트머리 해안가에 닻을 내리고 석양빛을 받으며 까딱까딱 졸고 있다. 어쩌면 저 배는 은성했던 시절 갑판을 어지럽히던 승객들의 발자국 소리를 되살려내려고 기를 쓰며 추억을 더듬는지도 모른다. 뱃길은 늘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 심수봉의 노래라도 흥얼거려 볼까나.
데크라고 불리는 나무다리가 작년 여름 태풍 때 처참하게 부서졌는데 다시 말짱하게 고쳐놓았다.
나무다리 아래가 옛날에는 해수욕장이었다. 여기저기 천막에서는 닭고기 굽는 냄새가 요란하고 피서객들이 북적거렸지만 다른 곳에서 날라다 부어놓은 모래가 씻겨나가면서 해수욕장은 종언을 고했다.
목포팔경의 하나인 입암낙조(笠岩落照)- 갓바위로 지는 해.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영락없이 늙수그레한 할아버지가 목을 움츠리고 갓을 쓴 형국이다. 빛과 그림자가 하찮은 바위에 얼마나 절묘한 조화를 빚어냈는지 모르겄다.
갈매기 두어 마리가 저물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고별 비행을 하고 있다.
바위에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사람들의 자유지만 ‘갓바위’는 참으로 이름과 어울리는 바위인 듯하다.
산발치께의 숲을 배경으로 석양빛을 등지고 두 노인네가 우두커니 졸음에 빠져있다. 으슥진 곳을 좋아하는 관광객들이 한사코 둘러보는 곳, 그리하여 나도 평화광장 산책길에 나설 때면 꼭 두 노인네의 안부를 살피곤 하던 것이었다.
저기 해양유물전시관 앞바다로 해기둥이 섰다.
바야흐로 다도해 상공에 노을을 흩뿌리며 오늘날의 나를 태어나게 해서 산책길에 나서도록 손을 쓴 나의 원조 해님이 몸을 숨기려 한다. 해님은 캄캄해진 다음에도 날더러 쓸쓸해하지 말라고 별빛과 달빛을 쏘아줄 것이다.
썰물인가 보다. 무엇하는 배일까. ‘뉴해양’호가 스즈끼 선외기를 고물에 얹고 개펄 위에 얹혀 얌전히 밀물을 기다린다. 선체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석양빛이 눈부시게 매혹적이다.
겉으로는 다소곳하지만 지금 저 배의 엔진은 두둥실 물위에 떠서 파도에 너울거리며 항해하는 꿈으로 가슴을 부풀릴 터였다. 전시용인지, 실제로 운항하는지는 모르지만 기둥이 선 걸로 봐서 돛단배인 것 같다.
나 어렸을 적에는 목포에서 영산포까지 돛단배가 올라왔다. 이미자의 노래처럼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싣고’ 미끄러져 들어오는 황포돛대는 얼마나 요지경처럼 환상적으로 황홀하였던가.
해님은 갈대 꽃줄기 끝자락마다 선명하게 손도장을 찍었다. 바람기가 잤는지 고개들을 닥수굿이 수그리고 있다. 누가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 했던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람기가 일면 흔들리게 마련이었다. 나는 흔들릴 때마다 양촌리 커피 한 잔으로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곤 한다.
남도문화예술회관 정원 조각 작품들.
나는 유달산 조각공원의 추상적인 작품들보다는 이처럼 힘차고 사실적인 작품들을 더 좋아한다. 이 작품들은 빛의 각도와 세기에 따라 시시각각 느낌이 달라진다. 갓바위를 돌아 나오면 문화의 거리에 다다른다. 사진은 문예역사관,해양유물 전시관, 문화예술회관이다. 해질녘이라 사진들이 침침하다.
그 밖에도 문화의 거리에는 자연사 박물관, 문학관, 남농 기념관, 생활도자박물관, 목포개항 100년 기념탑 등 문화 예술과 관련된 시설들이 빼곡히 들이차 있다. 나는 문화의 거리를 사랑한다. 목포가 문화와 예술의 고장임을 증명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거리를 지난다. 해가 저물면서 나의 산책길도 거의 끝나간다. 집이 가까워 온다. 참으로 가을볕이 좋은 하루였다. <계속>
첫댓글 ^^ '울타리콩'은 '까치콩'이고, 다 아시겠지만, 아래서 두 번째 꽃은 '페튜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