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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종말
다큐영화와 음악을 통해 프랑스 신교사들이 주는 메세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선교사들과 선조 천주교인의 순교정신을 기억하며.
뜻 깊은 감상 잘 했습니다.
좋은 정보 자료를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시간의 종말
( For the End of Time )
◈<시간의 종말> 영화와 음악이 주는 의미
1866년 천주교 병인백해와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체결된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헌정 「시간의 종말」 다큐멘터리 영화와 음반을 제작해 선보였습니다
150년전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서의 선교활동을 통하여 천주교 교리의 덕목이 되는
선생복종(善生福終)(선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이라는 선종을 행하며
참된 사랑을 전하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숭고한 메세지를 들려줍니다
뿐만 아니라 병인 박해로 천주교를 거부하던 조선에서
천주교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없는 자생적 신앙이 발생한 이야기를
천주교의 신앙적 신비함은 물론 역사적 궁금증까지 해결해주는 실마리를 제공하여
보는이로 하여금 그 기대를 더욱 고조시켜 줍니다
이“시간의 종말” 다큐멘터리는 국내 성지와 유럽의 성지를 배경으로 촬영했고
다큐의 총괄 기회을 맡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는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 중주를 메인 테마로 하여
그가 속한 트리오 오원이 훌륭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첼로 양성원, 피아노 엠마뉴엘 슈트로세, 바이얼린 올리비에 샤를리에), 채재일(클라리넷),
출연하는 분으로 고찬근 명동성당 주임 신부, 이영길 르망 보몽성당 주임 신부,
오은규 아메르스 성당 신부, 크리스티앙 마멜 마메르스 성당 주임 신부,
홍세안 파리외방전교회 원장신부, 임경명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이명환 한티순교성지 관장신부, 그리고 김대건 신부역을 맡은 황건 한국배우 등이
가톨릭의 진실된 사랑으로 진한 감동을 전하며
다큐에 유능한 김대현 감독의 연출로 제작되면서
성스러운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영화적 시너지를 발휘하게 됩니다.
◈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제와 순교의 역사
파리 외방전교회에서는 1830년대에 처음으로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하므로서
천주교 신유박해(1801년) 이후 꾸준히 교황청에 사제를 보내달라고 청원했던
조선 천주교인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당시 조선에서는 정치적인 상황이 빚어진 혼란
가운데
1836년 이후 입국에 성공했던 모방,샤스탕, 앵베르 세 명의 신부는
기해박해(1839년) 때 모두 새남터에서 순교합니다
그 당시 1836년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모방 신부 (1839년 순교)로부터 영세를 받습니다
그리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방지거와 함께
신학공부를 위해 마카오로 떠납니다.
1844년 부제품을 받고 당시에 만24세 미만으로 사제품은 받지 못하고
다음해 1845년8월 드디어 한국 최초로 사제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년후 1846년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를 하게 됩니다.
▲김대건 부제님이 사제로 승품되는 모습
이후 1866년에 이르기까지 20명의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여
결국 9명의 신부가 더 순교하게 되고 8천여명의 천주교인들이 순교를
합니다
박해 30여 년에 이르는 이 시기의 순교의 역사는
한국 천주교회와 조선의 역사에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시기인 가운데 1866년 천주교
병인박해가 있었고,
20년 뒤인 1886년 프랑스와 정식으로 수교를 체결하기에 이른것입니다
조선 땅에서 목숨 바쳐 신앙을 증거한 프랑스 선교사들의 숭고한 삶,
◈한국 천주교의 자생적 신앙의 역사
조선 천주교는 당시 서학서의 탐구가 자생적으로 시작된 신앙의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선비의 나라 조선에서 양반들은 언제나 글을 가까이 하였으며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앙은
이 선비들이 모여 공부하던 중에 생겨난
것입니다.
일찍이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인들이 고유의 전통과 높은 문화수준을 가졌으며
서양의 전반적인 학문과 세계관을 전하지 않고는
중국 선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회 선교사들은
서양의 과학, 철학, 음악, 지리학 등 다양한 지식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중국인들의 의식세계를 넓히고자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선교사들에 의해 집필된 한문서적을
한역
서학서(漢譯
西學書) 또는 서학서라 불렀습니다.
17세기 초, 서학서가 처음 조선에 소개되었을 때,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학을 무조건 배격해야한다는 비판과
적극적으로 서학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16세기 말에 저술한
⟪천주실의(天主實義)⟫의 한글어 역본은
서양인 학자와 중국인 학자의 대화와 문답 형식으로 엮어진 그리스도교 변증서로서
17세기 조선에 전래되어 천주교 신앙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입장은 서양의 과학만을 받아들이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서양의 과학관을 전하면
자연스럽게 우주의 시작이자 만물을 창조한 조물주의 존재를
동양인도 인정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천주교 신앙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교적 세계관에서 과학과 종교 서로 별개였기 때문에
다수의 조선 지식인들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서양의 천문학과 과학 기술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학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졌습니다.
18세기 중엽에는 서학을 접하지 않은 지식인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서학을 향한 높아지는 관심 가운데, 일부 지식인들은 서학 중에서도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유학을 발전 시키고자하는
보유론적(補儒論的)천주교 신앙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는 곧 천주교 신앙의 수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선 천주교의 탄생을 예견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깊은 산골 눈 덮힌 어느
겨울날 주어사(走魚寺)에서열린 한 모임은
조선 땅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천주교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결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명례방에서의 초기 종교집회도. 조선시대 초기 천주교인들은
지금의 을지로 2가에 위치한 김범우의 집에 모여 집회를 갖었으며
또한 주일을 기념하였습니다.
주어사강학(走魚寺
講學)의 본래 목적은 유교 경전을 공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들은 모여 유교 경전을 공부하였고,
그 가운데 ‘천(天)’의 실체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천'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가운데 그들은
서학서에 소개된 천주교의 ‘천주(天主)’와 유교의 ‘천’을 연결하여 이해하게 되었고
이로써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 주어사 강학 (走魚寺講學)
[출처
가톨릭대사전]
강학은 여럿이 모여 공통된 주제를 놓고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며 토론하는
학문연구의 한 방법으로, 주로 조선시대 유학자들 사이에서 성행되었다.
주어사 강학은 권철신(權哲身)의 주도로 1777년 겨울 주어사에서 열렸던 강학이다.
참석자는 정약전(丁若銓), 김원성(金源星), 권상학(權相學), 이총억(李寵億) 등
남인(南人) 소장학자들이었고 강학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벽(李檗)이 가세하였다.
강학 내용은 주로 유교적인 것이었으나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통한 천주교 교리의 연구도 이루어졌는데
주어사강학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강학이 계속되어 이를 계기로 권철신, 정약전, 이벽 등은
천주교 신앙운동을 일으키게 되었고,
그 결과 이벽의 권고로 이승훈(李承薰)이 북경(北京)에서 성세성사를 받고 귀국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을 이루게 됨으로써 주어사강학으로 천주교신앙이 싹트게 되었다.
그러나 주어사강학이 열렸던 장소에 대해 정약용(丁若鏞)의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녹암 권철신 묘지명>(鹿菴權哲身墓誌銘)에는
강학 장소가 주어사와 천진암(天眞菴)으로 기록되어 있고,
같은 ≪여유당전서≫의 선중씨 묘지명(先仲氏墓誌銘)과 이승훈의 ≪만천유고≫(蔓川遺稿)에는
주어사로만 기록되어 있어 강학 장소를 천진암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강학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녹암 권철신 묘지명 선중씨 묘지명
그리고 달레(Dallet)의 ≪조선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 Paris 1784) 등
세 자료를 종합 검토해 보면 강학 장소는 주어사가 확실하다.
주어사는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하품리(京畿道 驪州郡 金沙面 下品里)에 위치해 있었으나
지금은 절터마저도 남아 있지 않아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지로서 발굴작업이 시급히 요청된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기도생활, 파공(주일성수), 묵상 등의
천주교 가르침의 실천에도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유교를 통해 천주교 신앙을 처음으로 접한 이들은 천주교가 유교의 이해를 돕고
유교를 보완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들의 신앙을 보유론적 천주교 신앙이라 부릅니다.
조선 교회의 반석인 조선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는
중국 사신으로 파견된 부친을 따라 북경으로 가 세례를 받고 돌아와
한국 천주교회를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주어사강학이 조선 최초의 신앙 운동으로 조선 교회의 탄생의 기초를 닦았다면,
이승훈(李承薰, 1756~1801)의 세례는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자의 탄생으로
본격적인 조선 천주교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기점입니다.
강학에 열심으로 참여했던 이벽(李檗, 1754∼1786)은
정조마저 그 학문적 탁월함에 감탄할 정도로 실력있는 학자였습니다.
그는 천주교에 대해 더 알고 싶었으나 그 방도가 없어 답답해하던 중에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구 이승훈(李承薰, 1756~1801)이
북경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벽은 이승훈에게 천주교에 관하여 알려주며
북경에서 선교사를 찾아 세례를 받을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북경에는 천주당이 있고, 천주당 안에는 천주교를 전교하는 서양 신부가 있다.
자네가 가서 그를 만나 신경 한 부를 구하고 아울러 세례 받기를 청하면,
신부가 반드시 그대를 아주 사랑하여 기묘하고 신기하며 보배로운 물건들을 많이 얻을 것이다.
반드시 빈손으로 돌아오지 말라'
이벽을 통하여 천주교를 처음 접한 이승훈은 북경에서 예수회 선교사를 만나
필담을 통해 천주교와 학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1784년 그라몽 신부(Jean Joseph de Grammont, 1736~1812)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조선으로 돌아온 이승훈은
권철신(權哲身, 1736~1801), 정약종(丁若鍾, 1760∼1801),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등
천주교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학자들에게는 물론 양반사회 밖으로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때문에 중인 층에서도 천주교 신자가 생겨났습니다.
1784년, 이승훈은 서울 중구의 수표교 근처의 이벽의 집에 모여
정약용, 권일신 등 10명에게 대세를 베풀었습니다.
신자들의 공동체가 태어난 1784년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 가운데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되었습니다.
조선은 단 한 명의 선교사도 없이 교리서 연구를 통해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수용한
것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이와 같이 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곳은 없었습니다.
특별한 하느님의 뜻으로 조선의 천주교회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다큐멘터리 영화에 담겨진 음악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Quatuor pour la fin du Temps)
트리오 오원 연주 모습
(작곡 시기와 초연, 악기편성 에 대하여)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1908~1992))은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5월
괴를릿쯔(Goerlitz)에 위치한 독일군 포로 수용소(Stalag 8A)에 전쟁 포로로 수용되었고
그곳에서 성경을 묵상하던 중 영감을 받아 곡을 씁니다
그의 대표적 실내악 작품인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Quatuor pour la fin du Temps)는
이곳에서 작곡되어 그이듬해인 1941년 1월15일 5천명의 전쟁 포로들 앞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작품은 Clarinetti, Violin, Cello, 그리고 Piano를 위하여 작곡되었는데
이러한 독특한 편성은 포로 수용소 라는 "특수상황"에 기인 하는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절망에 가득찬 올리비에 메시앙이 포로수용소에서 하느님에게 울부짖은 말은
"대체 왜 이러십니까"의 원망의 소리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고백이 었다고 합니다
당시 전쟁은 멈출 줄 모르게 계속 되었고, 올리비에 메시앙을 비롯한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종말의 때를 보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다행으로 수용소 관리들은 자신들의 수용소에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가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올리비에 메시앙을 찾아 그에게 노역을 면제 해주고
오선지와 연필, 지우개를 마련 해 줍니다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포로수용소의 추운 막사에서 메시앙은 오선지를 채워 나아
갔습니다.
우연히 수용소에는 첼로, 클라리넷, 바이올린 연주자가 함께 수감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올리비에는 자신을 피아노 연주자로 삼아 피아노, 첼로, 클라리넷, 바이올린을 위한
묘한 구성의 사중주를 완성합니다.
올리비에 메시앙은 셰익스피어 문학을 번역하는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일찌기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시작하고 파리음악원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후 트리니티성당의 이름을 날리는 오르가니스트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1930년대 그의 초기 작품은 이미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었습니다.
이 메시앙의 작품에 나타나는 종교적 색채는 보다 詩적이며,
전례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음악본연의 순수성에 더 다가서 있습니다.
따라서 메시앙의 음악은 서구문화의 본질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교정신이
메시앙 자신의 신앙을 바탕으로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메시앙의 음악은
다소 생소하지만 영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고합니다
“불협화음들에서 울림을 찾을 수 있고 새로운 희망이라는 믿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메시앙의 마지막 곡은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인간과 소통하고자
부활하신 예수님과 인간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인 사랑으로 느린 템포로 격양되는 마지막 곡으로
인간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그의 아버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신적인 존재가 천국으로 나아가는 것을 담고있다” 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La Nativite), '그리스도의 승천'(L'Acession),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12시선'등 모두 성경에서 소재를 취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전례음악이 철저하게 Text에 종속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 작품은 성경의 요한 묵시록에 언급된 세상의 끝(fin du temps)을
표현하는데
여기서 '세상' 이라고 번역한 'temps'는 시간과 공간을 동일하게 취급한 개념일것입니다
(작품의 악장 구성)
이 작품은 모두 8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1악장은 전주곡(Prelude)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이를
제외하면
모두 일곱 개의 악장(서양문화권에서 7은 완벽한 數)으로 구성된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I. Liturgie De Cristal
Amici Ensemble
Joaquin Valdepenas, Clarinet
David Hetherington, Cello
Patricia Parr, Piano
메시앙의 수용소 동료였던
Jean Le Boulaire(Vn.),
Henri Akoka(Cla.),
Etienne Pasquir(Vc.)가
이 수용소 내에서 악기를 연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악장 Liturgie de cristal (수정체의 예배)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 새들의 눈뜸,
무수한 음과 나무 사이를 빠져나와 멀리 사라지는 트릴의 빛에 싸여 꾀꼬리들이 즉흥 연주를 펼친다.
이것을 종교적 플랜으로 바꾸어 놓는다. 하늘의 해탈의 정적을 얻게 될 것이다."
2악장 Vocalise, pour I'Ange qui annonce la findu temps (시간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을 위한 보칼리즈)
"제1, 제 3부분이 강력한 천사의 힘을 나타낸다.
천사는 머리에 무지개를감고 몸은 구름에 싸여 한쪽 발은 바다에, 또 한쪽은 땅위에 놓는다.
피아노에 배당된 불루 오렌지 화음의 감미로운 폭포가 멀리서 들리는 종의 울림으로
바이올린과 첼로의 성가풍 멜로디를 감싸준다."
3악장 Abime des oiseaux (새들의 심연)
"심연, 그것은 슬픔과 권태의 '때'이다. 새들은 '때'와 대립한다.
이것은 별과 빛과 무지개, 그리고 환희의 보칼리즈로 향하는우리의 희원이다."
4악장 Intermede (간주곡)
"스케르초, 다른 악장들에 비해서 외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멜로디를 순환시키면서 연관성을 맺고 있다."
5악장 Louange a I'Eternite de Jesus (예수의 영원성에의 송가)
"예수는 여기에서 '말씀'으로 고찰된다.
첼로의 끝없이 이어지는 장대한 프레이즈가 힘차고 감미로운
'말씀'의 영원성을 사랑과 경건함으로 찬양하고 있다."
6악장 Danse de la fureur, pour lessept trompettes (7개의 나팔을 위한 광란의 춤)
"음악의 돌, 강철의 저항할 수 없는 움직임, 절망적인 운명의 거대한 벽,
자포자기의 얼음, 결정적으로악장의 말미에 이러저리 움직이는 공포의 포르티시모를 들으라."
7악장 Fouillis d'arcs-en-ciel, pour I'ange qui anonce la fin du temps
(시간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을 위한 무지개의 착란)
"나의 꿈 속에서 나는 낮익은 색과 모양으로 분할된 화성과 멜로디를 보고 듣는다.
그리고서 이 변화하는 풍경 뒤에 나는 비현실속을 지나가고
초인적인 색채의 소용돌이치는 침투 속에 현기증나는 황홀경으로 빠져든다."
8악장 Louange a I'mmortalite de Jesus (예수의 영원성에의 송가)
"바이올린의 장대한 독주, 왜 두 번째의 송가인가. 이 송가는 특히 예수의 제 2의 모습,
즉 인간 예수로서 육화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소행한 '말씀'으로 향하고 있다.
고음역의 정점에 이르는 온화한 고양은
인간이 '하느님'에게, 하느님의 아들
성자가 '성부'에게 피창조물이 '천국'을 향하는 상승이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4 중주
그의 마음에 다가왔던 성경구절 요한 묵시록을 잠시 묵상합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요한 묵시록 10장 1절 - 7절)
10 1 나는 또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구름에 휩싸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둘려있고 얼굴은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 같았습니다.
2 그는 손에 작은 두루마리를 펴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발로는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디디고서,
3 사자가 포효하듯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가 외치자 일곱 천둥도 저마다 소리를 내며 말하였습니다.
4 그렇게 일곱 천둥이 말하자 나는 그것을 기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울려오는 어떤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일곱 천둥이 말하는 것을 기록하지 말고 봉인해 두어라.”
5 그러자 내가 본 천사 곧 바다와 땅을 디디고 서 있던 천사가
오른손을 하늘로 쳐들고서는,
6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을 두고,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분을 두고 맹세하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7 일곱째 천사가 불려고 하는 나팔 소리가 울릴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선포하신 대로
그분의 신비가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Quatuor pour la fin du Tem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