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향(禪香)이 밴 103편의 짧은 글이란 부제(副題)를 붙인 졸저(拙著) “보려고 하는 자가 누구냐?” (후동 편저(編著) 98년 12월 도서출판여래)의 전문이다. 그중 총 91편을 2, 3편식 따로 간추려 이 카페에다 올려놓겠다.)
사리(舍利)
"스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시면 장례절차를 어떻게 할까요?"
문중 스님들의 물음에 혜암(惠菴)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도시에서 죽으면 영구차에 실어다가 화장장에 집어넣을 것이고 또 산중에서 세상을 버린다
면 상여도 할 것 없고 마구잡이로 들어다가 석유 한 사발로 불에 태울 것이요, 들어와서는 상단에
향(香) 하나 꽂고 삼정례하고 영단에도 향하나 꽂고 심경(心經) 한 편 외울 뿐이지 물질을 소비하
지 말아라. 또 나는 부처님 사리도 숭배하지 않기 때문에 사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또 사리가 난다
하더라도 부처님 같은 사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땅 속에 파묻든지 아무 데나 버릴 것이자 만일, 돌
한 덩어리라도 탑을 해서 쌓는다고 하면 나하고는 대천지원수가 될 것이다. 사리라는 것은 본래 정
법을 갖춘 대선지식(大善知識)이 택(擇)사리를 할 때에 사리를 손바닥에 놓고 법력으로 관(觀)을
하면 음(淫)사리는 피고름으로 화하고 탐(貪)사리는 구렁이, 배암으로 화하고 치(痴)사리는 도깨비
로 화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리라는 것은 방금 말한 바와 같이 명안종사(明眼宗師)가 택(擇)사
리를 해야 사리로 인정되는 것이지 택사리 하기 전에는 인정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부처님 사
리에도 공경심을 내어 예배한다면 그것은 다 지옥으로 갈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부처님께서 이르
시기를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이라, 무릇 있는바 상(相)이 다 허망하다' 하신고로 그 상
에 집착하는 업과(業果)만으로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옛날 운거(雲居)도인께서 회상(會上)을 여신 산내(山內) 어느 암자에는 수십년 동안 혼자 정진해
오던 한 스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암자승은 운거도인께서 여러 해 동안 이 산에 머물며 법을 펴도 한 번도 내려와서 인사
를 한다거나 법문을 듣는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운거도인이 그 암자승을 점검해 보고자 시자
에게 잘 지은 삼베옷 한 벌을 싸 주면서 암자승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다. 시자가 시키는 대로 그 암
자에 가서
"
이것은 큰절 조실스님께서 주시는 옷입니다."하며 전하자 암자승은
"부모로부터 받은 옷만 해도 일생 입고 남는데 어찌 이런 걸, 입을까 보냐?" 하면서 옷 보퉁이를 도
로 내밀었다.
시자가 돌아와 사실대로 아뢰니 운거도인께서 다시 이르셨다.
"그러면 네가 한 번 더 걸음을 해봐라. 가서 '부모로부터 나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습니까?'하고
물어보아라."
시자가 다시 암자로 올라가서
"부모로부터 나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습니까?" 하고 묻자 암자승은 여기서 그만 말문이 막혀 벙
어리가 되어버렸다. 운거도인께서 그 사실을 전해 들으시고는
"내 일찍이 그 놈을 의심했노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암자승이 앉은 상태에서 몸을 벗어버려 산중 대중들이 화장을 했는
데 이때 오색광명의 사리가 나왔다. 이 일로 인하여 온 산중이 떠들썩하자 운거도인께서
"앉은 채로 몸을 벗어버리고 사리가 나와서 오색광명을 놓더라도 내가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무
슨 옷을 입었느냐고 묻던 당시에, 한마디 바른 답을 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행복한 마음)
(문수보살 친견기(親見記) 1)
신라 때 대국통이란 높은 벼슬을 한 큰스님인 자장(慈藏)은 말년에 벼슬을 떠나 오대산에 입산하여 살면서 문수보살의 진신을 감응하고 친견하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한 노(老)거사 (居士)가 남루한 도포를 입고 찾아왔다. 이 늙은 거사는 칡으로 엮은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 를 담아 메고 와서 자장의 시자(侍者)에게 말하였다.
"자장을 만나 보려고 왔다."
다짜고짜 자장에게 안내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자장의 시자가 꾸짖었다.
"내가 우리 큰스님을 모신 후로 오늘날까지 스님의 함자를 함부로 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 는데 도대체 당신은 누구기에 이다지 무례한가?"
이에 노거사는 의연히 말했다.
"무슨 잔소리냐?" 너의 스님에게 내 뜻이나 알려라."
시자가 할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서 자장에게 알렸더니 자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미친 사람이로군"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에 시자가 밖으로 나가 늙은 거사를 업수이여겨 욕설을 퍼붓고 내쫓았다.
이때 거사가 쫓기면서 말했다.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으리오?"
하고는 등에 걸머졌던 삼태기를 거꾸로 들고 터니 그 속에 있던 죽은 강아지가 별안간 사자 로 변하였다. 그리고 노거사는 사자 등에 올라 앉아 빛을 내고 가버렸다. 이 소식을 전해들 은 자장은 황망히 위의를 갖추고 빛을 따라 남쪽 고개까지 뒤쫓아 올라갔으나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그 늙은 거사야말로 문수보살의 진신으로서 자장의 거처에 나타났으나 자장은 아상(我相=자기의 학문이나 지위를 내세워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때문에 결국 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선가구감(禪家龜鑑)에서 이르기를 굽히는 것은 교(敎)를 배우는이들의 병통이고 높이는 것 은 참선하는 이의 병통이라 했으니 부자굴(不自屈)은 스스로 비굴하지 말라는 것이요, 부자고(不自高)는 스스로 교만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