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스페인의 첫 인상은 ‘헐벗었다’는 느낌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밀밭. 우리의 호남평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끝을 모를 평야에 온통 밀뿐이다. 이름하여 라만차 평원. 돈키호테 소설의 산지 콘쉐그라 가는
길은 언제 끝날지 모를 밀 평원이었다. 이른바 밀 단작monoculture의 본산이다. 그러나 말로만 듣던 단작의 정수를 본 충격은 그게
시작이었다.
밀만 보이는 단작도 너무 낯설지만 중간 중간에 보이는 벌거숭이
민둥산은 더 낯설다. 나무가 있지만 듬성듬성한 게 온통 기계충으로 머리가 벗겨지고 몇 올 머리카락만 남은 것 같다.
중국과 수교하고 얼마되지 않아 만주벌판을 다녀온 선배 한 분이 얘길
해주었다.
“기차로 만주 벌판을 달리는데 온 세상이
옥수수뿐이야. 처음엔 장관이다 싶었는데 그렇게 8시간을 달리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옥수수 뿐이니 이게 미치겠는거야. 그렇게 달리다 드디어 옥수수
밭이 끝나고 수박밭이 나타나는데 이제야 살겠다 하고 한숨 내 쉰 것도 실수였지. 온 세상이 수박뿐인 밭을 5시간이나 달려야
했거든.”
옥수수는 가장 물을 적게 소비하는 작물이다. 연작을 해도 장해가
없는 특이한 작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른바 다비성 작물이 옥수수다. 거름을 많이 투입해야 한다. 특히 질소 비료를.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옥수수 심은 밭은 딱딱해지고 망가진다는 사실이다. 옥수수는질소만이 아니라 칼슘, 마그네슘 등 무기질도 많이 먹기 때문에 그런 무기질이 빠져나간
흙은 척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수수를 엄청난 면적에서 단작을 하게 되면 땅은 점점 망가지게 되어 있다. 아마도 남미의 잉카 마야 문명이
옥수수를 주식으로 했던 게 그 문명의 붕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런 옥수수로 북한의 식량 문제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던 김순권
옥수수 박사의 노력이 안 쓰러워 보인다. 내가 볼 때 북한은 더욱 옥수수가 맞지 않을 것이라 사료되기 때문이다. 질소 비료도 턱없이 부족한데다
산을 더 민둥산으로 만든 큰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없는 밀 평원을 지나고 포르투갈로 들어서니 경관이
스페인보다 훨 낫다. 군데군데 숲도 있고 땅도 비옥해 보인다. 끝없는 스페인 평원에서 볼 수 없었던 새들도 포르투갈에서 처음 보았다. 그동안
포르투갈을 이베리아 반도의 구석에 쳐박혀 있는 나라로 생각했던 게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좋은 땅은 포르투갈이 차지하고 스페인은
넓지만 척박한 땅이나 차지한 꼴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단작은 끝없이 펼쳐진다. 온 세상이 온통 포도뿐인 경관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끝없는 올리브 밭이 나타나니 이를 두고 단작의 본산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좀더 소개해보도록
하자.
첫댓글 바람골님 !
그래도 당신은 행복합니다,
스페인, 포르투칼 가려면 쉬운것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