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본 영화 '클리프 행어' 는 로키 산맥의 구조대원으로 분한 실버스타 스텔론이
절벽에서 조난당한 친구의 애인을 구하지 못하고 놓치면서 그녀의 손이 빠져나간 장갑만을 애통하게
붙잡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산꼭대기에서 추락하는 여자의 모습이 화면에 가득찼던 영화.
작은 녀석의 컴퓨터 게임 소리를 들으며 저녁을 준비하던 중에 큰녀석이 친구 핸폰을 빌려 한 전화,,,
"왜 안 받어?"
뭐라고 답변할 틈도 주지 않고는 부들부들 떠는 목소리로 다짜고짜 화를 낸다.
조그만 일에도 두근거리는 엄마의 새가슴은 아랑곳없이 흥분해서 내는 화의 내용은
음악 수행평가를 '0' 점 받은 분풀이다.
지난번에 한번 봐 주기도 하며 이야기 했던 '음악 이론' 인지라 녀석의 부족함을 아는 나는
녀석의 '화' 보다 '평가의 정당성' 에 대한 답변을 간단히 했던 것인데,,,
'전화 끊음' 이란 녀석의 반응을 순식간에 불러온다. 당황스러워 다시 해도 받지 않고...
얼마전에도 화를 폭발한 녀석이기에 혹시나 싶어 두근거리며 있다가 기도를 한다.
'말로 설명도 안 해주고, 무조건 다시 해오래서 몇 번이나 고쳐갔는데, 시간 다 됐다고 가래.
넌 음표도 모르냐고,,, 빵점이래...'
녀석의 절망스런 목소리를 떠올리며 내 순간적인 실수를 또 후회한다.
있다 와서 이야기 하자고 하긴 했지만, 우선 화를 풀어낼 장소가 되어주지 못한 것이,
되풀이 되는 내 실수가 한심스러운 것이다.
아빠와 아직도 화해하지 못하고 있는 녀석의 상처를 알면서도 우선 끌어안아 주는 게
뭘 그리 어렵다고 이 녀석에겐 늘 이렇다. 끌어안음 보다도 객관적인 자를 먼저 내미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문자를 열심히 넣는다.
엄마한테 화내줘서 고맙다고... 다음에도 그럴때 엄마한테 또 전화하라고...
이따가 더 말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그러고도 안심이 안되어 다시 전화를 넣고 녀석의 목소리를 들으니 약간 가라앉아 있다.
마음 풀고 밥 먹고, 약도 꼭 먹으라고 마지막 말을 하는데 대답하는 녀석의 목소리도 내 목소리처럼 떨린다.
피곤한 몸 끌고 하루의 마감시간 가까이 오는 녀석을 그냥 안아주어야겠다.
내 몸집의 두 배나 되는, 아직도 내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녀석을...
이번엔 미끄러진 손 대신 장갑 잡지 않고 손까지 잡아올린 것 같아 안도의 한숨 쉬고 있는데,
게임에 열중하던 작은 녀석이 저한테 줄 사랑을 형아한테 빼앗겼나 잔뜩 긴장하고 덤벼든다.
'녀석아,,, 형아 안아줄 동안 좀 기다려 줄래??? 지금 안아주지 못하면 너무 오랜동안 안아줄 수 없다구...'
주) 극적 절정단계 부분에서 극도로 마음을 졸이게 하여 긴장과 기대를 자아내게 하는 순간이나 사건.
사람이 절벽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이란 뜻에서 클리프 행어(cliff hanger)란
용어가 붙여졌다. 초창기 연작 영화 등에서 사건의 종말을 명료하게 끝나지 않도록 하여 관객들의 기대감과
모호함을 자아내도록 한뒤, 일주일 정도가 지난 다음의 작품에서 그 해결이 이루어지도록 의도적으로 구성
한 데서 유래된 용어이다. 또는 이러한 기법을 사용한 위기천만의 활극이나 모험영화를 지칭하기도 한다.
(출처:네이버 용어 사전)
첫댓글 <<엄마한테 화내줘서 고맙다고... 다음에도 그럴때 엄마한테 또 전화하라고...>> 엄마의 현명한 대처에 아이는 엄마가 바로 자기의 쉼터라는걸 알고 있을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