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극, 상징성에 물들다

[시명수]

[Opinion] 영화 ‘패왕별희’로 본 중국의 경극[공연예술]
중국의 경극, 상징성에 물들다
2015-08-27

어렸을 적 ‘이히~~~오홍~’하고 중국의 경극을 따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이한 노랫소리 때문에 경극을 접해본 사람들에게는 ‘시끄럽다’, ‘정신없다’ 정도로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특이한 노랫소리는 경극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노랫소리로만 경극을 판단했다면 당장 그 마음을 접도록.

경극은 문화, 연기, 음악, 무용, 무술, 잡기(서커스)가 이루어진 중국의 종합예술가극이다. 북경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해서 경극이라고 불린다. 경극은 주로 고전작품을 극본으로 만들어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서양의 연극에 비해 극에 쓰이는 도구가 간단하여 배우의 연기를 중심으로 공연이 진행된다. 

어떻게 연기로만 극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경극에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 무서워 보이는 분장에도, 옷에도, 동작에도, 도구에도 하나하나 의미가 깃들어있다. 예를 들면 원을 그리며 걷는 동작은 긴 여행을 의미한다. 그래서 경극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를 미리 알고 보면 경극이 새롭게 보인다. ‘아, 이게 이런 의미구나.’하고 깨달아 가는 것도 경극의 묘미!

영화 「패왕별희」는 이런 경극의 특징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패왕별희」를 처음 보고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데, 경극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나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패왕별희」를 통해 경극을 잘 파헤쳐 보고, 경극을 통해 「패왕별희」를 이해해 보자.

그런데 잠깐만, 「패왕별희」는 무엇일까? 「패왕별희」는 중원의 통일을 눈앞에 둔 초·한 5년전쟁 때 한나라의 왕 유방에게 패하여 막판에 몰린 초나라의 왕 항우의 최후를 그린 것이다. 항우는 항우의 애첩 우희에게 ‘유방에게 가서 목숨을 건져라.’고 권고하지만, 우희는 그럴 수 없다며 절개를 지키기 위해 결국 자결한다. 우희가 자결한 뒤 패전을 거듭하며 쫓겨 다니던 항우도 오강(五江)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자결하여 우희를 뒤따랐다.

대충 스토리를 이해했다면, 본격적으로 「패왕별희」에 숨겨진 경극의 모습과 의미를 파악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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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장국영이 연기를 하게 될, 도즈(데이)는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경극을 배우는 극단에 들어가게 된다. 극단에는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도즈도 마찬가지였다. 사부님에게 맞기도 하고,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다리를 찢기도 했다.

실제로 경극 배우가 되려면 일반적으로 7~8세부터 15~6세까지, 7~8년에서 10여 년에 이르는 오랜 전통적인 배우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훈련과정은 주로 체벌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극배우들은 자신들의 학습기간을 ‘7년 감옥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극단에서 훈련을 받던 도즈의 친구도 경극에서 연기하는 패왕을 보고 “얼마나 맞았길래 저렇게 멋있을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훈련과정이 고됨을 알 수 있다.

도즈와 같이, 경극배우 지망생들은 대부분 부모가 없는 고아이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입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처음에는 대부분 끼니를 해결하고자 들어가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배우가 되면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보장되기 때문에, 희망을 품고 혹독한 수련과정을 이겨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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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즈는 남자여도 얼굴이 예쁘장하게 생기고 몸집도 작아서 ‘단’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단’은 경극에서 여자역할을 뜻한다. 어렸을 적에 훈련하면서 자신은 원래 사내아이인데 여자역할을 해야 했으므로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지사. 대사 “나는 본래 여자아이로서”를 “사내아이로서”로 잘못 말해서 끊임없이 두들겨 맞는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해내고 만다. 그 후로 도즈는 ‘단’의 역할에 푹 빠진다. 무대 밖에서도 몸짓이며 말하는 투도 꼭 여자같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파트너로 연극을 해온 시토(샬로)에게 여자 쥬산이 생겼음을 알자 질투하기까지 한다. 

경극배우 지망생들은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친 후 신인배우로 무대에 설 수 있다. 신인배우들은 그들의 선천적인 외모나 신체조건 또는 목소리의 성량과 훈련된 연기수준에 따라 배역이 결정된다. 일단 배역이 결정되면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훌륭하게 연기하기 위해 전반적인 연기술을 일생동안 연마해야 한다. 배우들은 전통적으로 여러 배역을 넘나들지 않고 대부분 일평생 자신이 맡은 하나의 배역만을 전문적으로 연기한다.

경극의 등장인물들은 고도로 유형화되고 세분화 되어있다. 크게 ‘생’, ‘단’, ‘정’, ‘축’, ‘말’로 나눌 수 있다. ‘생’은 영웅이 아닌 일반 남성을 가리키고, ‘단’은 여자역할을 말한다. ‘정’은 중요배역으로 왕후장상역할을 한다. ‘축’은 광대역할이고, ‘말’은 단역이다. 또 이것들을 세분화할 수 있는데 ‘생’도 ‘노생’, ‘소생’ 등으로 나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보면 시토(샬로)는 초나라의 패왕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정’의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리고 도즈(데이)는 패왕의 애첩인 우희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단’의 역할을 맡았다.

패왕과 우희, 둘의 분위기는 정말 다르다. 우선 화장이 다른 것이 눈에 확 띈다. 모두 상징하는 바가 있다.

우선 화장을 하는 이유는 경극이 화장을 통해 그 배우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배역이 악역인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 색깔을 바탕으로 하고, 다시 얼굴형태에 따라 더욱 세분화되고 상징화되어 극중 인물의 성격을 나타낸다. 즉, 얼굴 모양과 색깔을 통해 극중 인물의 성격과 신분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배우의 이마·눈썹·눈·입 등에 다시 여러 가지 문양이 그려짐으로써 극중 인물만이 지닌 독특한 개성이 더욱 강조된다. 문양은 상당히 다양한데 이마는 19가지, 눈썹은 무려 25가지, 눈은 9가지, 입은 7가지로 나뉜다고. 그러니까, 처음 봤을 때는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아도 그냥 그리는 게 아니라는 거!

예를 들면 얼굴이 검은색이면 강직하고 엄숙한 성격을, 흰색은 유분기가 있냐 없냐에 따라 나뉜다. 유분이 없는 분백은 교활한 성격을, 유분기 있는 유백은 거만하고 고집불통의 성격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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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역할을 맡은 도즈를 어여삐 여기는 한 사람이 있었다. 원대인이라고 불리는데, 원대인은 경극을 사랑하는 일본의 부자이다. 당시 배경은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즈음. 그래서 일본인들을 위한 경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원대인은 도즈를 사랑했고, 시토의 여자 쥬산 때문에 자신이 시토에게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도즈는 원대인의 사랑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둘만의 비밀스러운 행동이 오가기도 하는데….

주목할 점은 도즈가 ‘우희’를 연기하듯이 남자가 여자역할인 ‘단’을 연기한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바로 유교적 전통 때문이다. 유교사상으로 여성들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래서 남자배우가 여장을 하고 연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에는 동성애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로 더 이상 남성이 여성역할을 연기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령이 내려졌고, 지금은 대부분 여성연기자가 여자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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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토(샬로)가 일본군에게 잡혀가고, 도즈는 그를 일본군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위해 일본 장교와 그의 동료들 앞에서 극을 하였다. 이는 쥬산의 계략 때문이기도 한데, 쥬산이 도즈에게 일본 장교를 위해 극을 해주어 샬로가 풀려나면 더 이상 샬로 곁에 머물지 않겠다고 했다.

도즈 덕분에 샬로가 풀려났지만 일본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좋아하지 않았다. 이후 샬로는 경극에서 떠났고 데이(도즈)는 대신 원대인에게 패왕의 얼굴을 그려주며 좋아한다.

일본군을 위해 극을 할 때 데이 역할을 하는 장국영을 자세히 보면 여성스러운 손짓이 보인다. 그리고 뒷배경에는 소품이랄 것도 별로 없다. 그 이유는 경극무대에서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극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특징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경극 배우들은 손가락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움직이는데, 이런 동작들은 매우 규정화되어 있고 의미하는 바가 정해져 있다. 따라서 배우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연기할 수 없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 한다. 이런 정해진 연기동작을 ‘정식’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발걸음까지 몇 보인지 세어야 할 때도 있다.

원대인이 했던 말 “원래는 7걸음인데 당신은 5걸음 걸었소.” 왜 원대인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는 알 수 있다.

연기동작의 상징적인 의미는 때로는 귀엽다. 네 명의 병사와 네 장수가 무대 양쪽에 횡렬로 서는 행동은 수천의 강한 군대을 뜻하고, 탁자에 손을 비스듬히 고이고 있는 것은 자는 것을 뜻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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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샬로가 배우를 그만둔 것을 알고 데이와 샬로를 불러서 혼낸다. 데이는 스트레스로 아편을 했다. 이후 일본군이 항복하고 데이는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간첩죄로 끌려간다. 재판에서 원대인이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노래를 불렀다”고 진술해서 데이를 석방시키려고 했지만 데이는 “강제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찌되었든 결국 데이는 가석방되었다.

샬로와 데이가 혼날 때 뒷배경을 본 적이 있는가? 배경에는 옷들이 널려져 있다. 경극에 쓰이는 옷들인데 평소에 입는 옷이라기엔 지나치게 화려하다. 의상에도 상징성이 깃들어있기 때문인데, 극중 인물의 신분이나 지위·특성·나이·성격 등을 적절히 표현해 내도록 설계되었다. 아울러 기능적으로도 무용과 무예의 고급동작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특히 의상의 색을 통해서 극중인물의 신분과 지위, 나이, 성격을 나타낸다. 그리고 상황을 암시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남녀가 붉은색 피(帔)를 쌍으로 입으면 경사로운 일이 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붉은색은 때로는 붉은 피를 의미하기 때문에 남녀가 붉은 색의 죄인 옷을 입으면 위태로움을 상징한다.

경극 의상에 그려진 문양에서도 화장과 마찬가지로 종류와 그려진 형태, 배치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용문양은 옛날부터 용을 신령하게 여겨왔던 전통의 영향으로, 고귀한 신분과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며 주로 황제나 재상 등 신분이 높은 남자들이 입는 옷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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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난 후에 데이는 아편에 찌들고 샬로도 장사를 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은 공산군이 북경에 입성하는 시간이었다. 데이와 샬로는 다시 만나게 되고 샬로는 데이의 아편을 끊으려고 손까지 묶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이때 데이가 엄청 괴로워하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샬로를 두고 라이벌 관계였던 쥬산이 그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안아준다.

마침내 데이는 아편을 끊었고 다시 경극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데이는 더 이상 우희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밀려난다.  

데이가 우희 역할에 밀려날 때 경극 배우 중 한 명의 뒷모습이다. 깃발이 여러 개 꽂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냥 보기 좋으라고 깃발을 꽂아놓지 않았다. 무사의 등 뒤에 꽂힌 군기(깃발)는 수천수만의 군대를 의미한다. 처음에 얘기했듯이 경극은 고전작품을 각색한 경우가 많은데 고전작품에서 대부분 수천수만의 군대가 등장한다. 하지만 한정된 무대에서 표현할 길이 없으니 깃발로 대신하였다. 

이렇게 도구에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갈색 채찍은 갈색 말을 상징하고, 검은색 채찍은 흰색 말이나 검은 색 말을 타고 있음을 의미한다. 깃발에 불꽃 그림을 그려놓고 흔드는 것은 불이 남을 뜻한다고.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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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이 이끄는 문화대혁명 시대가 다가왔다. 반동세력을 타도하고 모든 권위에 도전하자는 목표로 문화대혁명이 진행되었다. 중국 내부에서 끊임없는 자기비판이 이어졌고 “문화계의 요괴들을 타도하자”는 슬로건으로 경극배우들을 잡아들여 서로를 비판하게 했다. 샬로는 홍위병의 협박에 못 이겨 데이가 일본인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아편도 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에 데이는 “경극은 종말이야.”라고 외치며 쥬산이 화만루의 창녀라고 이야기한다.

쥬산은 이후 자결한다. 

그리고 11년 후, 데이와 샬로는 다시 모인다. 경극 '패왕별희'를 함께 연기하는데, 마지막에 우희가 패왕을 이별하듯이 데이도 샬로의 칼을 들고 그 자리에서 죽는다. 또한, 영화에서 데이의 역할을 했던 장국영도 자결을 하게 된다.  

영화 「패왕별희」에는 이렇듯 곳곳에 경극 정보를 흘리고 있다. 경극을 알고 나면 재미있지만, 알지 못한 상태에서 패왕별희를 먼저 본다면 섬세한 의미를 지나치고 갈 수 있다. 이렇게 경극에 대해서 알고 나면, 하나하나 보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다음번에 실제로 경극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아는 척도 할 수 있다.

“어! 저것 봐. 배우가 탁자에 손을 비스듬히 고이고 있으면 자는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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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 『상징의 미학 경극』, 차미경 지음

수업 - 『연극과 뮤지컬의 이해』, 『중국정치론』

출처 :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18726#link_guide_netfu_64709_77360

[시명수]

참고 : https://chufs.net/2021/05/27/경극-패왕별희의-상징성-연구김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