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에서 무덤의 역사를 찾다.
우리 민족의 문화의 뿌리는 어디일까? 중국일까? 아니면 환인...환웅...단군...고조선...?
그 나라의 문화를 앎의 시작은 언어일것이다.
우리의 언어는 표음문자와 표의문자가 어울려진 한자+한글.
따라서 우리의 장례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한자 가운데 상장례와 관련한 어의(語義)를 통해서
옛사람들의 주검과 무덤에 대한 생각을 엿보기로 하자.
가장 먼저, 한자에서
사(死, 죽을 사) 자는 歹(부서진 뼈 알, 歺과 동자(同字), 살이 깎여 없어진 사람의 백골, 시체의 형상) + 人(사람 인)으로서, (슬퍼서) 무릎을 꿇은 사람 앞에 있는 시신을 뜻하므로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주검을 그냥 버려두면 악취가 나고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간다.
그것이 다른 가족의 것이라면 혐오감과 함께 두려움이 생길 것이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라면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여기서 죽은 자를 위한 무덤이라는 인류 최초의 건축물이 태어나게 된다.
다음,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글자로 장(葬, 장사지낼 장) 자는 艸(풀 초) + 死(죽을 사) + 土(흙 토)라고 보거나,
死(죽을 사) + 茻(잡풀 우거질 망) + 一(한 일, 여기서는 거적 또는 널빤지를 형상화한 것임)로 보고 있다.
이는 결국 시체를 땅이나 널빤지 위에 놓고 위아래를 풀섶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나타내고 있어,
장사지낼 장(葬) 자는 감출 장(藏)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와 같은 내용은 『주역(周易)』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옛날에는 죽은 사람을 매장하지 않고 그냥 들에다 두고 풀이나 나뭇가지로 덮고서 나무나 봉분도 하지 않았다.
「계사하전(繫辭下傳)」
결국 옛날 중국에서는 시체를 매장도 하지 않고 간단하게 풀이나 나무로 덮은 것이다.
그런데 이 모습은 근래까지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에서 행하던 풍장(風葬)을 연상시킨다.
또 일본 고어에서는 放る(하부루)와 같이 사용했는데, 이는 ‘(시체를) 던져버리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또한 조(弔, 조상할 조) 자의 형상은 弓(활 궁) + 人(사람 인), 즉 시신을 풀로 덮어 무덤을 만들고는 혹시 짐승이 덤빌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활을 들고 지키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좀 어이없기는 하지만, 이 역시 흙으로 덮는 매장법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짐작하게 한다.
그럼 이번엔 『맹자(孟子)』를 한번 살펴보자.
상고에 부모가 죽어도 장사(葬事)를 지내지 않는 시대가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부모가 죽으면 시체를 들어다가 구덩이에 버렸다. 그런데 뒷날 시체를 버린 이가 그곳을 지나다 보니 여우와 살쾡이가 시체를 뜯어먹고, 파리와 모기가 엉켜서 빨아먹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보자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며 눈길을 돌리고 바로 보지 못했다.
그 식은땀은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흘린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얼굴로 나타나 흐른 것이다.
그는 곧 집으로 가서 들것과 가래를 가지고 돌아와 흙으로 시체를 덮었다.
「등문공장구(藤文公章句)」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오랜 옛날에는 주검을 땅에 묻지 않고 들에다 버려두었는데 점차 사람들의 인지가 발달하면서 매장하는 방법이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맹자는 매장제가 시작된 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효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어서 무덤을 뜻하는 묘(墓) 자는 무덤 묘(뫼)라는 뜻이다.
글자의 근원을 알아보면 土(흙 토) + 莫(없을 막, 빌 막, 어두울 막, 조용할 막, 저물 모)이다.
또 막(莫)은 茻(잡풀 우거질 망) + 日(해 일, 날 일)로서, 죽은 사람을 흙으로 덮고 풀덤불로 흔적도 없이 감춘 무덤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묘(墓) 자의 본래 의미는 지상에서 봉분은 물론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는 완전 평지,
즉, 평장(平葬)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평장 무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흔적을 찾기 어렵고, 짐승이 파헤쳐 주검을 훼손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검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쉽게 찾을 수도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새로 등장한 무덤을 뜻하는 분(墳, 무덤 분) 자는 높게 봉분한 무덤이나 언덕, 구릉, 제방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글자를 해석해보면 土(흙 토) + 賁(클 분)으로 흙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봉긋하게 솟아난 무덤을 뜻한다.
또 다른 해석에서는 글자에서 보듯 흙과 조개껍질을 수북하게 쌓은 무덤이라는 뜻을 지닌다.
十(열 십) 자가 셋이니 조개껍질 30짐에 해당하는 많은 흙을 쌓은 무덤이 땅 위에 봉긋하게 올라온 형상이다. 그곳에 치장을 하고 묘표를 세우면 현대와 같은 무덤이 완성된다.
강화도에 있는 고인돌.
중국 고대 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이 황하 하류의 평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곳에는 황토로 이루어진 평야와 구릉만이 있을 뿐 돌은 별로 없다. 여기에 비해 우리 민족이 살던 만주 일대와 한반도는 산이 많고 돌도 많다.
이런 자연 환경은 무덤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중국의 무덤이 들판에서 평장으로 시작하여 흙으로 만든 봉토분(封土墳)으로 발전한 것과 비교하여, 우리 조상들은 산에다 무덤을 만들고 돌을 이용한 고인돌과 돌무지무덤(적석총)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이후 중국 문화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중국식 봉분이 등장하게 되었다.
실제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도 중국 은나라(기원전 1600~1046) 때는 매장지가 없었다고 한다.
주나라(기원전 1046~771)의 문왕과 무왕도 평장이었고, 중국 고대의 역사서인 『한서(漢書)』에도 옛날 무덤은 봉분을 만들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중국에서 봉분이 등장하는 것은 춘추전국 시대(기원전 8~3세기)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편 많이 사용하는 상(喪, 죽을 상) 자는 죽다, 잃다, 복(服), 복제(服制), 상을 입다, 상제 노릇을 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글자의 뜻을 풀어보면 哭(울 곡) + 亡(망할 망, 죽을 망)으로서, 곡(哭)은 ‘입을 벌리고 울다’이고,
망(亡)은 사람의 죽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상(喪)은 ‘무언가를 잃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잃는다는 것은 슬프고도 두려운 일이다.
사소한 물건을 하나 잃어버려도 애가 타고 허전한데, 하물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으니 오죽 슬프겠는가?
따라서 그 슬픔을 달래고 산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일정한 격식,
즉 의례가 생겨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결국 중국 한자나 고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상장례라는 의식이 자리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우리가 평소에 이들 글자에 대해 지녀온 근엄하면서도 어렵고 때로는 까다롭기까지하다는 느낌과는 달리, 이것이 사뭇 다른 뜻에서 출발하였다는 것도 흥미롭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