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 15시 5분발 비행기로 제주행. 제주의 날씨는 말 그대로 악천후, 폭우에 세찬 바람. 예보에는 폭풍 주의보에 내일까지 80 - 100mm의 비가 온다고 한다. 서귀포 시민회관에서는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전야제가 흥겹게 열리고 있는데 참가자들은 날씨에 대한 걱정으로 별 관심이 없는 듯. 비는 계속 세차게 내린다. 참가수속을 마치고 해물 뚝배기로 석식후 숙소로 와서 취침.
19일 : 3시 기상, 호텔옆 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조식. 빗줄기는 가늘어졌으나 바람은 세차다. 마라톤복에 겉에 우의상의를 입는것으로 복장을 결정한다. 출발장소인 월드컾경기장에서 비닐우의를 주어서 입었던 우의상의는 60km지점 보관물품에 포함시키고 출발준비.
5시 출발, 처음부터 힘든 오르막이다. "천천히"를 되뇌면서 5k표지판을 지나면서 시간을 보니 속도가 다소 빠르다. 1시간쯤(?) 달렸을때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하고 별똥별이 보인다. 수십년간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본 적이 있는가? 입고 뛰던 비닐우의를 벗어버리고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의 도움을 받으며 편하게 기분좋게 달린다. 처음의 오르막을 제외하고는 예상했던것 보다는 코스의 업-다운이 심하지 않다. 시원하게 뻗어있는 길, 연이어 지는 숲과 초원, 정겨운 오름들. 낯익은 이름들이 지나간다. 서광, 저지, 조수, ... 금릉으로 내려와 협제쪽으로 가다가 반환점을 돌으니 비양도와 시원한 바다, 넘실대는 파도. 해안을 따라 달린다. 월령, 판포, 신창, 용수, 신도, 무릉, ... 지나치면서 이곳 출신 동창생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55km지점을 지나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하얀 승용차 하나가 앞으로 와서 도로가에 멈추고 사람이 내려 나에게로 달려온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친구 양경수다! 인터넷에서 일간지 스포츠 서울의 기사를 보고 코스를 확인하여 왔다고 한다. 100여미터를 동반주 하고 완주후를 약속하고 헤어진다. 친구를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달리기의 기쁨중 하나가 되겠다. 다리의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데 힘이 생기고 발놀림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70km를 지나면서 확연히 다리가 무거워 진다. 양측 대퇴 사두근이 내리막 달리기에서 통증이 와서 속도를 낼수가 없다. 약 11시간 완주 페이스로 달려왔는데 초심으로 돌아가 완주만을 목표로 작전을 수정한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전진한다. 중문에서는 3회의 반환코스가 심신을 더 피로하게 한다. 코스를 만들 때 거리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금릉에서 한림쪽으로 더 가서 1회의 반환점만 있게 하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된다. 80km이후에서는 거의 혼자다. 앞에도 뒤에도 달림이는 보이지 않고 교차로에서 유도요원만 이따금 박수를 쳐 주더니 약 90km지나면서는 유도요원도 보이지 않고 길에 표시되어있는 화살표만이 방향을 알려준다. 한참을 걷다가 달려보면 힘이 나는 것 같지만 금새 다리가 무거워 진다. 마지막 95km지점의 급수지점에서 바나나와 물을 먹으며 봉사자들의 응원을 받으니 힘이 난다. 달릴만 하다. 계속 달릴수가 있다. 어디서 이런 힘이 다시 나오는가? 골인선을 통과한다. 신기하게도 처음에 계획했던 완주시간에서 1분의 오차도 없이 12시간 00분에 골인한다.
완주후 : 보관물품을 찾아 샤워장으로 향하면서 이동전화 전원을 켜니 경수한테서 메시지가 와 있다.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무거운 다리로 이동해야 하는 고역을 이렇게 덜어주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제주시로 이동하여 목욕후 식사, 완주후의 기분좋은(?) 근육통으로 계단을 내려갈 때는 옆 난간을 짚게 된다. 차나 한잔 더 하고 헤어지자며 경수의 안내로 찾아간 집의 주인은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했다는 경수의 말에 금방 나를 알아본다. 스포츠서울 기사에 나온 정형외과의사이고 책도 번역하지 않았느냐며 그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말하며 얼굴도 기사의 사진과 똑같다고 한다. 신문기사를 이렇게 상세히 기억하고 있다니, 믿겨지지가 않는다. 대회 뒷풀이를 와인 한잔으로 마무리 하고 비행기 시간에 쫒겨 공항으로 향한다.
동창생 여러분들의 성원 덕에 무사히 완주하고 돌아왔습니다.
(스포츠서울에 의하면 100km완주 45명, 60km완주 44명이라고 합니다. 참가신청자는 내국인이 100km부문에 146명, 60km부문에서 85명과 일본인 약 100명<?> 이었습니다.100km부문에 참가한 가수 현진영은 18시간 45분만에 78km에서 탈진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에로배우 하소연은 12시간 22분에 60km를 완주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