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전문가며 모더니즘의 김경린시인
청와대 삼청공원에는 김경린시비가
서울시 수도과장 역임한 1세대 수도인
문재인정권말기 1개월을 남기고 청와대 뒷산인 높이 342m의 북악산이 54년 만에 전면 개방되어 감사원을 거쳐 삼청공원을 따라 산을 올랐다.
예부터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떠다가 마신 ‘만세동방 약수터’(만세동방 성수남극’((萬世東方 聖壽南極)로 가는 길목인 삼청공원 초입에는 김경린시인의 시비가 있다.
시비에는 김경린시인의 필체로 각인된 조선일보에 발표한 데뷔 시 ‘차창’(車窓,1939년)이 나그네를 맞는다.
삼청공원에 시비가 있는 것은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출생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구기동에 안착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수족관에 온
한 마리의 어족
미끄러지는
바깥 세계가 뿜는 향수로
안경은 차웁다 ( 시‘차창’전문)
김경린 (金璟麟.1918.4.24.∼2006)시인은 '20세기와 21세기의 모더니즘을 아우른 시인'으로 평가된다.
1939년 조선일보에 <차창> <꽁초> <화안(畵眼)>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1940년 일본의 시잡지 [Vou]의 동인으로 모더니즘 운동에도 참여했으며 해방 후에 귀국하여 1950년 [후반기] [신시론(新詩論)] 동인으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썼다.
1980년대에는 광의의 모더니즘을 표방한 소한진시인이 발행하는 계간지 ‘시와의식‘의 편집고문으로 구상,김규동,김남준,김요섭,김차영,김춘수,이석,이원섭,임영창,정귀영(평론가,한국초현실주의문학연구회장역임),정한모,조병화,홍윤숙,황금찬과 함께 활동했다.
시와의식을 통해 문단활동을 하는 시인으로는 박남훈(편집장역임),이활,이형기,전규태,정열,김찬호,임명희,윤동진,권정남,장영기등과 평론으로 등단한 문광영(86년 여름호,‘이상시의 성격학적 분석연구’),김동환 (86년 겨울호,자정의 바다.무녀,산다는 것)등이 있다.
김경린시인을 만난 것은 시와의식을 통해 문단을 들락이던 87년이다.
사무실(세기종합기술공사)겸 서재이면서 주거지였던 구기동에서 85년 출간한 시집‘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을 받았다.
김경린시인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것은 시인이면서 수도전문 1세대 토목인이기 때문이다.
1918년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태어나 1942년 일본 와세다 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한양대 토목공학과 1970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한 인물이다.
해방이후에는 시인으로서의 활동보다는 서울시 수도과장, 건설부 국토보전국 도시과장, 공무원교육원장, 영남국토건설국장, 수자원개발공사(산업기지개발공사) 이사를 역임하고 개인회사인 세기종합기술공사 대표이사로 말년을 보냈다.
토목전공이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던 김경린시인은 우리나라 문단사에 있어서 건축가이면서 시인이였던 이상(김해경,1910-1937년,경성공고 건축부 수석졸업)과 함께 특이한 삶을 산 시인이다.
김경린시인처럼 당시의 토목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일본으로 유학해야 했는데 후에 우리나라 수도산업(상,하수도) 건설 토목의 1세대로 주역을 담당했던 토목인으로는 도화엔지니어링을 설립한 김혜림,서울시 초대수도국장과 건설부장관을 역임한 최종완,연합밸브를 설립한 이봉춘,서울시 상하수국장을 역임한 정규영,한양대 교수를 역임한 김원만등이 있다.
시인이면서 수도토목의 1세대 주인공인 김경린시인이 태어난 1918년은 <병든 서울>의 오장환<역사는 흐른다>의 소설가 한무숙,<얄개전>의 조흔파, 황금찬, 박남수 시인,사회운동가이자 목사며 7권의 시집을 낸 문익환 목사등이 있다.
토목인으로 서울시의 상하수도 시설의 현대화를 진두지휘했던 김경린시인과 같은 인물에 대해서는 서울시 수도박물관(뚝도정수장)등에 조각상을 설치하여 후배 수도인들에게 기억의 흐름을 이어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예고도 없이
김경린
오늘도
성난 타자기처럼
질주하는 국제열차에
나의
젊음은 실려가고
보라빛
애정을 날리며
경사진 가로에서
또다시
태양에 젖어 돌아오는 벗들을 본다
옛날
나의 조상들이
뿌리고 간 설화가
아직도 남은 거리와 거리에
불안과
예절과 그리고
공포만이 거품 일어
꽃과 태양을 등지고
가는 나에게
어둠은 빗발처럼 내려 온다
또다시
먼 앞날에
추락하는 애정이
나의 가슴을 찌르면
거울처럼
그리운 사람아
흐르는 기류(氣流)를 안고
투명한 아침을 가져 오리
[김경린 시인,토목인의 연보]
1918 함경북도 종성 출생(4월 24일) 한학수학,종성국민학교졸업,
1938 경성전기공업학교 토목본과 8회
1939 《조선일보》에 시 「차창(車窓)」외 2편으로 등단
1939 〈맥(脈)후기〉동인에 참여
1940.3~42.11 와세다(早稻田) 대학 고공토목공학과 졸업
1941 일본 모더니즘 동인 「VOU」에서 활동
1941년 3월부터 「장미의 경기」를 비롯하여 작품 다수 발표
1942 일본에서 귀국(1942.11)
1943 중앙청 도시국에 근무하면서 《국민문학》 등에 작품발표 했으나 전쟁에 비협조적인 親 英美의 詩라는 비판으로 일시 활동 중단
1947 박인환이 중앙청 도시국으로 찾아와 모더니즘 시운동을 함께하자고 제의
1948 〈신시론〉동인 구성, <新詩論> 1집(1948.4.20.) 발간
(김경린, 박인환,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 5인 참여)
1949 신시론 동인지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4.5.) 발간(김경린, 박인환, 임호권, 김수영, 양병식 5인 참여)
1950 「후반기」동인. 1차(1950년 1월) (김경린, 박인환, 조향, 김차영, 이상노, 이한직)이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부산 피난지에서 이상노와 이한직은 탈퇴하고 이봉래, 김규동이 합류.
1955 뉴욕 주립대학 상하수도 단기과정 수료
*20세기 모더니즘 창시자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 조우
에즈라 파운드의 추천으로 미국 현대시인협회 가입
1957 〈DIAL〉동인 창립, 사화집 『현대의 온도』 발간(김경린, 박태진, 김차영, 김원태, 이철범, 김호, 이활, 이영일, 김정옥 참여)
한국 시인협회 초대 사업간사 역임(회장 없이 간사제도로 출발)
(김경린,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박남수와 함께 창립)
1969~1979 새로운 시 방향 모색을 위해 작품 활동 중단.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과 졸업(도시계획석사)
1983 미국 Modern Poetry Association 회원
1985 시집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 발간
1986 한국신시학회 초대회장 선임
1987 시집 『서울은 야생마처럼』 발간
1988 시집 『그 내일에도 당신은 서울의 불새』 발간
1994 에세이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주변 이야기』 발간
시집 『화요일이면 뜨거워지는 그 사람』 발간
2006 작고(3월 30일)
2012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에 김경린 시비(詩碑) 건립
[수상]
1988 제3회 상화시인상 수상(시집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
1994 제5회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 예술가 선정
녹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
[사회활동]
서울시 수도과장,내무부 토목국 도시과장, 건설공무원 교육원장,영남 국토건설국장,산업기지개발공사 계획이사,옥포기업 주식회사 대표이사, 세기종합기술공사 대표이사
(환경경영신문, ww.ionestop.kr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문화평론가 김동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