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무서운 세상
글 德田 이응철
우리 사회는 공동사회이다. 서로 이웃하며 살아간다.
21세기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며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오로지 법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의 경우다. 한 반에서 친구의 핸드폰을 열어보았느냐 여부를 가지고 법정 시비로 번지고 있다.
그냥 놓여있는 것을 읽었다. 아니다.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팽팽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이 주고 받은 대화내용을 증거물로 제출하지 않나, 통신의 자유을 위반했다고 법적 공방이 산불처럼
기세가 등등하다. 하나 둘인 자식을 둔 학부모간에 기 싸움이 예민하다. 누구도 감히 끼어들지 못한다.
담임선생님도 중간에서 타협을 해 성사시키려 들지 않는다. 아니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하라고 학부모들의 언성에 책임자도 오로지 나몰라라 할 뿐이라니 정말, 격세지감이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어제 중 3 교실에서 일어나 산불처럼 번지는 인권문제ㅡ. 고통받고 있는 딸의 얘기를 전하는
한 부모가 최근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을 개탄하고 있다. 그 누구도 나서서 진화하려 들지 않는다.
모든 게 법적이다. 사법부 판단을 기다릴 뿐이라고 한다. 엄청난 소소한 얘기들이 법정으로 번지고 있는 작금의 사회란다.
분명 남의 핸드폰을 몰래 보았으면 통신비밀의 자유 위반이다.
친구끼리 어쩌다 볼 수도 있는데 그 누구도 나서 잘잘못을 해결하려 들지 않는 세상이다.
ㅡ법法대로 하세요!
고향 친구는 요즘 민사소송에 휘말려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동회 때였다. 이 동네로 이사온 사람이 마을의 제도를 비판하고 개정하려들자 친구가 억측이라고
이사온 외지인을 가볍게 조크하며 밀었단다. 그 때 엎어지면서 침소봉대하며 크게 다쳤다느니, 엉굴억을 하며
여러 주민 앞에서 멸시 당했다고 민사소송을 닁큼 제기한 것이 아닌가!
물론 가볍게 밀었거나 남의 몸에 타격을 가해 미안하다고 그자리에서 사과를 했는데, 며칠 후 소장이 날라와 작은동네가 발칵 뒤집어 졌다.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댓가를 지불하란다. 시골에서 오이 농사로 근근덕성 살고 있는 친구는 초대 시의원도 역임한 동네 유지이다. 유모어와 위트도 있어 허허실실하며 갈등에 앞장서서 원만히 양쪽에 타협을 주선하곤 했다. 그런 고향 유지가 외지인에게 민사소송을 당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몇 천만원씩이나ㅡ. 고소의 명수로 알려진 인물이란다.
ㅡ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했다.
옐리네크는 일찌기 말했다. 도덕과 관습, 조리로 해결 해결하다가 최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법이란 뜻이다.
모든 것이 요즘은 법의 잣대로 해결하려고 한다. 선생님, 목사님, 지역 원로자,유지, 신부님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말 한마디 잘못이 인권침해로 규정한다. 특히 학교란 사회에서 중간에서 원만히 해결하려는 상담도 나몰라라 하는 셈이다.
말 잘못하면 학부모에게 꼬투리를 잡혀 법적으로 처벌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아예 학부모끼리 해결하라고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각박한 세상에 지금 우리는 살얼음판처럼 이웃과 살아간다. 무서운 세상이다.
층간소음에 한 치도 물러섬이 없다. 인권위원회, 신문고, 심지어 청와대까지 들먹이며 으름장을 한다. 엄청난 자료를
들고 해결책을 찾는 작금의 세상임을 어제 실감했다.
교육자로 반세기를 교육을 천직으로 살아온 나의 경우, 서로서로 한발자국씩 물러나서 서로 잘못했다고 하며 갈등을 풀어나가던 예전이 생각난다.
위에 두가지 중 3교실에서 핸드폰을 보았느냐 여부로 번지는 법적 싸움과 고향에 외지인이 터를 잡고 바른 말을 하며 원주민(?)에게 인권을 무시당했다고 조목조목 솟장에 써서 민사소송 제기한 것 모두 극단적 이기주의 결과가 아닌가!
공자님은 말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을 돌아보라고ㅡ. 참으로 무서운 세상임을 크게 느낀 하루였다.(끝)
첫댓글 원주에서도 학부모 사건이 법정까지 번져 재판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것이 최상인가 조자룡 헌 칼 쓰듯 마구 법 조항을 들이대는 우리 사회는 무엇이 문제일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