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김희영
메주 외
볕살 좋은 날
갓 만든 메주를
그늘 맑은 곳에 걸어 놓는다
콩이 메주가 되는 3일 동안
불리고 삶고 뭉개어진 얼굴
사람들은 메주를
못난이에 비유하지만
따져보면 메주만큼
정감 어린 얼굴도 없다
메주가 발효되기까지
한 석 달
곧 닥칠 추위를 견뎌야겠지만
그 세월
속속들이 스며들어 언젠가
숙성된 깊은 맛이
밥상을 풍성하게 채우리라
처마 끝에서
소박한 꿈들이
은비늘처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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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록차 예찬
누구의 정성일까
정갈하게 다듬어진 설록차
따스해진 찻잔에
설록차 한 스푼 넣고 기다리는 시간
찻잔 속에서
일상의 주름살 하나씩 펴진다
찻잎처럼 부푸는 꿈
꿈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찻잔 속에 있었다
눈앞에서 빛깔 고운 조각 하늘 만들고 있었다
다소곳이 찻잔을 받쳐 들고
파랗게 우러난 차를 마신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차 향기
농익은 추억을 마신다 어느새
녹차 물 흠뻑 젖은 뜨락
내 안 일제히 일어서는 꿈의 알갱이들
포근한 손길로 지친 어깨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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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1995년 문화일보 춘계문예 당선으로 등단하였으며 한국여성문학대상, 영축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사랑하다가 기다리다가』, 『아름다운 침묵』 외 여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