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은행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언제 작업하는 게 좋을까 ?"
은행의 겉 껍질을 벗겨내고 바짝 말려야 하는 일이 남아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
탈피기를 돌려 껍질을 벗기는 사람, 벗긴 은행을 날라서 망위에 쏟고 잘 마르게 고무래로 펴는 사람, 은행꼭지나 불순물, 미속과, 병든 은행 등을 골라내는 사람 등 최소한 세 명의 손이 필요하다. 은행의 양으로 보면 많을수록 더 좋겠지만 ....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안사람과 아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나는 탈피기를 돌려서 껍질을 벗기고 아들은 날라서 펴고, 안사람은 고른다. 매년 맞춰온 삼박자다.
"금요일부터 탈피기를 돌려서 말리면 고르기가 쉬워요." 토요일에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안사람도 걱정이 크다
'그럼 올해부터는 금요일부터 껍질 벗기기 시작을 해야겠다. 안사람이 고생을 덜하게...' 그래서 하루가 앞당겨졌다.
'날이나 좋아야 할텐데.... 일기예보는 눈이나 비란다. 그것도 폭설일수도 있단다 . 고생 길이 훤히 보인다'
그러나 이제와서 말 수도 없잖은가 ? 강추위에 은행이 얼어버리면 팔 수도 없으니 하루바삐 처리해야 한다.
농산물품질향상연구소에 갔다.
"은행탈피기를 빌리러 왔습니다" "언제요 ?"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을 써야 되겠는데요"
"그럼 사흘치 대여료를 내야 됩니다" "이틀만 쓰는데도요 ?" "일요일에는 저희가 근무를 안해서 반납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일요일까지 쓰는 걸로 해서 사흘치를 주세요" "그래도....." "대여료가 얼마 안되니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오늘 빌려가신 분도 그렇게 하셨어요" "오늘 탈피기를 빌려가신 분이 계신다구요 ?" "예" "그럼 나만 늦은게 아니네" 약간의 안도가 생긴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하루에 6천원씩 만팔천원을 지불하고 빌렸다.
차갑고 궂은 날씨에 은행탈피를 해야하는 걱정으로 꽉차있는 내 맘에 그까짓 것은 문제가 아니다.
금요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영하 6도,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행해야 했다. 전기와 호스를 탈피기에 연결했다.
호스는 얼까봐 전날 저녁부터 거실에 모셔두었었다.
다행히 탈피기는 잘 돌아갔다. 추운날 물을 만지는 일을 해야하니 손도 곱고 옷이 젖는 문제는 그냥 감내해야지.
은행을 다룰때마다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구린 냄새도 그냥 구수하다 생각해야 속이 편하다.
내가 먼저 탈피기를 돌린 다음 은행 포대를 쏟아 부으면 약 3분 후에 깨끗하게 벗겨진 은행 알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탈피기가 없을 때는 냇가로 가져가서 발로 밟아 껍질을 벗겨야 했는데 ....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세 포대치를 모은 은행을 먼저 합류한 아들이 수레에 싣고 가서 망위에 쏟고 고무래로 얇게 폈다.
눈이 오다 비로 바뀌고,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묵묵히 일해주는 아들을 보니 이제 많이 컷더라.
해가 나와야 은행이 마르는데 오늘은 영 틀렸다.
점심시간도 아끼느라 짜장면을 시켜서 해결할 정도로 바삐 움직였지만 어두워질때까지 120포대를 처리하는데 그쳤다.
마르지 않은 은행을 채어 모은 다음에 밤새 얼지않게 부직포로 덮어 놓고 하루 작업을 마무리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안사람까지 합류해서 활기가 돈다.
그러나 문제는 날씨. 추운 날씨에 해가 숨바꼭질하는 바람에 은행이 마르지 않는다.
오늘 하루에 말리기까지 완료해서 푸대에 담아놓아야 속이 편한데, 영 틀렸다. 할 수 없지 뭐. 하느님의 심술을 당해낼 재간있나 ?
어두울때까지 기계를 돌려 탈피는 완료했다. 그나마 다행이지 뭔가
그러나 말리기는 영 틀렸다. 내일부터라도 날이 맑는다면 그나마 다행으로 지금 자리에 펼쳐서 말리면 되겠지만, 며칠 계속 날이 궂는다니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비닐하우스로 날라서 말려야 겠네" "아이구 그 고생을 어떻게 해 ?"
들어 나르기도 힘이들고, 공간이 좁으니 한꺼번에 작업을 할 수도 없다. 차례로 말리다 보면 몇날이 걸릴지도 모른다.
'에이, 진작에 시작할 걸'
후회해봤자 지나간 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