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유리창 너머의 하늘 빛깔이 어떤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아침노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행복을 덤으로 안았다. 사는 집이 동향이라 의도하지 않아도 집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일출을 보는 건 때로는 소소한 기쁨을, 가끔은 가슴 뛰는 감동을 받곤 한다. 그것이 동해 정동진에서 첫새벽을 깨우는 장엄한 감동은 아닐지라도 무의미한 어느 날의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휴일 아침 늦잠의 여유를 마다하고,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일출을 기다리기도 한다. 해가 떠오르기 전의 깊고 고요한 시간은 지루한 일상에 생기를 주기도 하고, 느른한 의식을 깨우기도 한다.
잠시 우리 집에 머물기 위해 오신 엄마와 함께 일출을 보던 어느 겨울날 아침이었다. 새벽잠이 없는 엄마는 일찍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아파트 유리창 너머로 눈부시게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저 해가 성산포에서 왔느냐.'라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특별히 내게도 아닌 듯한 엄마의 조용한 물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저 해가 어찌 성산포에서 왔겠는가. 엄마의 의식의 흐름 속에는 고향 성산포 앞바다의 일출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나 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아픈 몸에 대한 애환을 간직하고 사는 엄마의 마음이 애달팠다. 해가 떠오르기 전, 아파트 밖의 흐릿한 물상은 어둠 속에 잠겨서 고요히 해를 끌어올리는 검은 바다처럼 보였을까. 나는 엄마의 순한 눈을 들여다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마. 저 해가 성산포에서 엄마를 보러 왔네.'
작년 가을에 세 번째 시집을 발표했다. 세 권의 시집에는 212편의 시가 실려있다. 2012년 5편의 시를 써서 계간[문학의 봄]을 통하여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의 작품들이다. 물론 그전에 썼던 시들을 다시 퇴고하여 첫 시집에 싣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들은 등단 이후의 작품들이다. 2년에 한 번씩 시집을 내는 나를 주위에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나도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시들이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지나왔는지 놀라울 때가 있다.
학창시절 하룻밤에 7편의 시를 썼었던 감수성은 점점 사라지고, 직장 동호회에서 발간하는 동인지에 몇 년에 한 번 원고를 보내는 정도로 시의 열정은 시들어 갔다. 그마저도 시의 몸을 갖추고 있을 뿐 그저 힘든 생활에 대한 감정 분출에 불과했다.
내 안에는 시가 자리할 공간이 없었다. 그보다 더 해야 할 일들이 늘 시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사는 게 바빠서 글 한 줄 쓰지 못하며 살면서도 시인의 마음은 잃지 않았나 보다.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 내 가슴은 이미 시인이었다. 언제부턴가 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저 바닥에 던져놓았는데도 살아있었다. 나는 시를 놓지 않고 있었다. 아니 시가 나를 놓지 않았음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쓰고 또 썼다.
2012년 늦가을, 문득 오십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인생은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에 놓여 있었다. 등단이란 걸 꿈꾸며 살지 않았지만, 왠지 도전하고 싶어졌다. 가슴속에서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외침이 솟구쳤다.
그날 특이한 사건은 없었다. 떨어지는 낙엽이 내 발등 위에서 길을 묻지도 않았고, 가을바람이 내 옷깃을 여미게 하지도 않았다. 책상 위에 있는 달력을 가득 채운 수많은 일정들이 보였다. 의미 없는 동그라미들을 한참 동안 응시하며 처음으로 내 안의 나에게 물었다. 저것들이 무엇인가? 빽빽하게 적혀 있는 일정 들 중에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무언가? 그리고 다가오는 나이의 무게를 생각하니 설렘 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이제 새로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 후 퇴직을 하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무언가 의미 있는 나의 것을 시작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나? 그 물음의 끝에, 자전적 소설을 발표한 동료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시집 한 권을 출간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서른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다시 시작할 시인의 길을 꿈꿨던 스무 살의 나에게 다다랐다.
1985년 가을, 某 방송국 라디오에서 아마추어 시인들의 작품을 기성 시인이 평을 해주는 ‘내 마음의 시’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새’를 주제로 시를 한 편 써서 방송국에 보냈는데, 어느 날 방송국으로부터 출연을 요청받았다. 시에 대한 자신감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고 싶은 막연한 욕심으로 앞뒤 안 가리고 출연을 결정했다.
한밤의 프로였지만 녹화는 오전 시간이었다. 하루 휴가를 내고 서울로 가는 전철 안에서 떨리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그날 내 시를 평해주신 시인은 당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던 유안진 시인이었다. 그날 내가 어떻게 시를 읽었는지, DJ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유안진 시인이 내게 해준 말은 평생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시인에게 필요한 감성과 표현력이 좋다. 감성과 표현력은 시인에게 좋은 자양분이다. 하지만 아직은 덜 여물었다. 좀 더 많이 쓰고, 깊이 생각하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시인의 말씀이 각색되어 잘못 기억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날 시인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를 그때 나는 알았다.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내 안에 시의 싹이 자라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어 기뻤다. 저명한 시인이 나의 장점을 찾아서 격려하고, 가능성을 발견해 준 그날의 경험이 나를 시인의 마음으로 살게 해주었는지 모른다.
해 뜰 참, 창가에서 일출을 기다린다. 이제 어둠 속에서 붉은 해는 떠오를 것이다. 어둠 속에 묻힌 물상들을 깨우고, 세상 밖으로 펼쳐놓을 것이다. 태양이 세상을 밝힌다면 시인은 마음을 밝히는 존재이다. 또한 시인은 기존의 것을 깨뜨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생성한다. 쌀로 밥을 짓는 것이 아니라, 쌀로 술을 빚는 것이다. 없는 걸 새로이 창조하는 것이며, 본질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좋은 쌀이 향기 깊은 술을 빚듯이 좋은 마음이 좋은 시를 쓴다.
시인의 소명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시인에게는 첫새벽을 깨우는 저 태양처럼 어두운 세상을 밝히라는 소명이 있다. 따라서 시인은 세상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중에서도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너무 작은 소리여서 잘 들리지 않더라도 들으려는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아니 어쩌면 들으려는 의도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인의 귀에는 작은 소리가 더 잘 들리기 때문이다.
시인의 눈에는 세상에서 누추한 것,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 더 환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이 세상에서 잘 살아나갈 수 있도록 토닥여주고, 그것들의 삶을 위해 세상을 향해 크게 외치고, 그것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엎드려 길이 되어야 한다. 태양이 세상의 모든 길을 하나씩 드러내면 사람들은 그 길을 걸어 어딘가로 갈 것이다. 어둠에 갇힌 길을 밝히는 시 한 편을 이 아침에 써야겠다.
첫댓글 시는 사물과 아름다운 것의. 합일을 요구하는군요 ㆍ소설은 끝없는 갈등 요구하는듯 한데. ㅡ결국 결론은 시든 소설이든 아름다운 것으로 나아가야겠죠ㅡ잘읽었어요
갈등 전개가 어렵더군요. 시인의 마음속도 갈등이긴 하죠.
감사합니다.
사무실에 처음 오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등단 7년이군요.
무르익어 가는 모습이 좋아요~
카페 6주년 기념 모임이 있었던
2013.3월이네요
좌수현 우정상
박종운 전은정 오혜숙 김상률
떠난 이도 있고 떠나보낸 이도 있네요
"저 해가 성산포에서 왔느냐?"
어머님의 말씀이 윤슬쌤을 시인으로 이끌었나 봅니다.
네 그랬나봐요. 엄마의 그리움으로 시를 써 왔나봅니다.
새해 아침에 시인의 소명을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하셨군요.
올 한 해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힘차게 열고 나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마음과 달리 하루하루 식어가는 열정이 걱정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시인의 소명은 박시인님이 확고하시고,
저는 수필도 좋네요. 한풀이.
어머니에게도 시인의 심성이 있군요~ 물려받았어요~
고단했던 제주의 삶이 그리우신가봐요.
아마도 엄마가 시를 썼다면 더 진한 감동이..
윤슬의 글을 읽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운길산역에서를 기다립니다. ㅎㅎ
참으로 많은 공감을 합니다. 다른 것은 난 쉬니까 녹슬던데 강선생님은 그대로 살아 있는 것. ㅎ
고문님 녹슬지 않으셨어요. 더욱 빛나는 글 쓰고 계십니다.
역시 시처럼 빛이 납니다.
나이들어가며 새롭게 조명받는.
자신의 내면 세계가 아름답습니다. 문운이 빛나는 새해되셔요.
감사합니다.
늘 안전운전 하시고,
좋은 글도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