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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166_26 「玉壺吟」李白
烈士擊玉壺, (열사격록호) -장사는 술항아리 두드리고,
壯心惜暮年。 (장심석모년) -마음이 늙었으니 서럽구나.
三杯拂劍舞秋月,(삼배불검무추월) -석잔 술에 취하고는 칼을 빼어 휘두르면서 가을밤에
춤추더니,
忽然高詠涕泗漣。(홀연고영체사련) -홀연히 한줄기 눈물 뿌리고는 소리 내어 읊기 시작 하였네.
鳳凰初下紫泥詔,(봉황초하자니조) -임금님께서 처음으로 내리신 紫泥詔를 받았고,
謁帝稱觴登禦筵。(알제칭상등어연) -임금님을 알현하고 베푸시는 연회에 나아가 축배도 들어
보았네.
揄揚九重萬乘主,(유양구주만승주) -구중궁궐에서는 만승천자를 찬양하는 詞賦 詩를 지었고,
謔浪赤墀青瑣賢。(학랑적지청쇄현) -궁궐 뜰에 서있는 허구 많은 高官大爵들을 호탕하게 희롱도
했네.
朝天數換飛龍馬,(조천삭환비룡마) -임금님을 알현하러 갈 때에는 날쌘 말을 자주 바꿔 탈 수
있었고,
敕賜珊瑚白玉鞭。(칙사산호백옥편) -하사하신 산호 장식 백옥 채찍으로 말을 몰았지.
世人不識東方朔,(세인불식동방삭) -세상 사람들이 동방삭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大隱金門是謫仙。(대은금문시적산) -金明門 안에 翰林院에서 엎드려있는 이태백을 어찌
알았겠는가?(의문문이 될 수 있음은 '是'가 위 出句를 이어받기 때문임)
西施宜笑復宜顰,(서시의소부의빈) -西施가 웃다가 다시 가슴 속이아파 눈살을 찡그린 것을,
醜女效之徒累身。(추녀효지도루신) -醜女는 따라하면서 쓸데없이 계속하여 흉내를 낸 것처럼
동방삭은 漢武帝 때에 金馬門 侍中을 지내면서 老子가 周나라 柱下史 직에
머물러 있는 것을 들어 자신도 노자처럼 隱居하였다고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네.
君王雖愛蛾眉好,(군왕수애아미호) -임금님은 누에 눈썹 미인(이백)을 좋아하시어 사랑을
하시는데도,
無奈宮中妒殺人。(무내궁중투살인) -궁중에서는 투기나 하는 속물들이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 어쩔 수 없구나.
涕[눈물 체]-1.[명사] 눈물.
泗[물 이름 사]-1.[명사][문어] 콧물. 2.[명사][지리]泗水.
漣[잔물결 련(연)]-1.[명사][문어] 물결. 파문. 2.[형용사][문어] 눈물이 계속 흐르는 모양.
觴[잔 상]-1.[명사] (고대의) 술잔.
賢[어질 현]-3.[형용사][경어] 자기보다 어리지만 항렬이 같은 사람이나 손아랫사람을 존대하여
앞에 붙여 쓰는 말.
數[셈 수, 자주 삭, 촘촘할 촉]-[부사] 누차. 수차. 여러 번. 자주. 빈번히.
顰[찡그릴 빈]-1.[동사][문어] 눈살〔미간〕을 찌푸리다.
<註釋>
烈士-1.[명사] 열사. [정의로운 일을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
玉壺-①옥으로 만든 작은 병
紫泥詔-即紫泥書。(背紙가 검붉은 색으로 되어있는 임금의 詔書)
唐李白《王壺吟》:“鳳凰初下紫泥詔,謁帝稱觴登禦筵.” 亦省稱 “紫詔”。
稱觴-舉杯祝酒。(축하주의 잔을 드는 것)
揄揚-1. 揮揚,揚起。2. 宣揚。3. 稱引,讚揚。
萬乘-1. 萬輛兵車。古時一車四馬為一乘。(만량의 전차, 옛날 4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1乘임)
2. 周制,天子地方千里,能出兵車萬乘,因以 “萬乘” 指天子。(周나라 제도, 天子의 땅은
사방 千里이고, 戰車 萬乘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로 인해 “萬乘”으로서 天子를
지칭한다.
謔浪-戲謔放蕩。(호랑방탕하다)
赤墀-1.皇宮中的台階,因以赤色丹漆塗飾,故稱。 2.借指朝廷。
青瑣-1.裝飾皇宮門窗的青色連環花紋. 2.借指宮廷
東方朔-중국 漢나라 武帝 때의 사람. 字는 曼倩(만천). 벼슬이 金馬門 侍中에 이르고 諧謔과
변설로 이름이 났음. 속설에, 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아니하고 장수하였다
하여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일컬어졌으며 ‘오래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그 뜻이
바뀌어 쓰인다. [출처] 동방삭 [東方朔 ] | 네이버 백과사전
동방삭은, “古人隱居於深山,我卻認為宮殿中也可以隱居.” 즉, “옛 사람은 심산에서
은거했지만, 나는 도리어 궁중에서 봉직하는 것이 은거라고 하겠다.”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비유하고 있다.
大隱-1.指身居朝市而志在玄遠的人。(몸은 朝政이나 저자거리에 있어도 품은 뜻은 심오한 사람을
지칭함.)
晉王康琚《反招隱詩》:“小隱隱陵藪,大隱隱朝市: 伯夷竄首陽, 老聃伏柱史.”
◉小隱은 山野에 숨은 것이고, 大隱은 조정과 저자거리에 숨은 것이다. 백이는 殷이 亡후에
周나라 음식을 먹을 수 없다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었고, 老子는 周나라 柱下史로 책을
관리하며 지냈네. (노자 해설 참조)
金門-唐 時宮門名。金明門 內為翰林院所在。(唐代에 궁문이름이고, 金明門 안에 翰林院이
자리하고 있다.)
謫仙-①謫은 罪ㆍ罰이란 뜻, 곧 罰을 받아 仙界에서 人間界로 쫓겨 내려 온 仙人
②大詩人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詩仙. ③李白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이는 李白의 友人들이
그를 이렇게 불러주었는데 이백은 대단히 좋아했으며, 또 자신도 이 말을 즐겨 썼다고
한다.
累身-帶累自身 (자신을 연계시키는 것)
無奈-3. 猶可惜。用於句首,表示由於某種原因而不能實現預期的願望或意圖 (애석하다는 말을,
글머리에 사용하여,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아 실현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원망이나 의도를
표시한다.)
◆老子
老子(?~?)는 중국춘추시대 말기의 思想家, 哲學者, 道家의 創始者이다. 이름은 李耳 , 字는 담(聃)이어서 老聃이라고도 하고, 일명 太上老君이라고도 한다. 李敬의 아들이다. 楚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
老子의 삶에 대하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하는바에 따르면, 老子는 춘추 말기에 周나라 사람으로서 孔子가 찾아와 禮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모든 문서를 정부가 관리했기 때문에 老子는 그곳에서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고찰하여 인간의 삶이 지니는 근거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었다.
老子는 후에 周나라가 쇠하는 것을 보고 은거를 결심 西方으로 떠나는 중에 關門지기의 간청으로 그의 가르침을 5천여 글자로 된 상하 2편의 책을 썼다고 한다. 이것을 老子의 道德經이라고 한다. 그 뒤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내용이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 <史記>도 이에 의문을 표하고 있고 오늘날 그의 실존 여부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老子의 제자로는 도가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莊子가 유명하며 老子와 莊子의 사상은 道家의 주요 흐름 중의 하나인 老壯派를 이루고 있다. 老子는 후에 도교의 민간 신앙으로 숭배되었다. 孔子와 老子가 잠깐 대화한 일화를 살펴보자. 孔子가 周나라에 가서 삼가 예(禮)에 관하여 老子에게 물었다. 老子 왈 “그대가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뼈는 이미 다 썩었는데 오직 말만 남았을 뿐이로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벼슬하는 몸이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 속의 쑥대처럼 글러 다닌다고 한다. 내 들으니 장사를 잘하는 상인은 물화(物貨)를 깊이 간직함을 없는 것처럼 하고, 군자는 성덕이 있으나 그 용모는 우매한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대의 교만과 기상이 욕심 많음과 얼굴과 태도를 꾸미는 일과 산만한 뜻을 버려라. 그런 것은 그대의 몸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이것뿐이다.”
孔子는 돌아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새가 잘 난다는 것을 안다. 물고기가 잘 헤엄친다는 것도 안다. 짐승이 잘 달리는 것도 나는 잘 안다. 달아나는 자에게 그물을 칠 수 있고, 헤엄치는 것에는 낚시질을 할 수 있으며, 나는 것에는 화살을 쏘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용에 대하여는 나는 그것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오늘 老子를 만났다. 그는 용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老子는 도와 덕을 닦아서 그의 학문은 스스로 숨기고 이름이 들어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었다.
이 부분이 바로 老子가 朝市에 있으면서 大隱하는 참 의미라고 보아야 한다. 즉 東方朔과 같이 몸만 조정에 담고 있다고 해서 스스로 大隱한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 李白이 말하는 大隱의 의미인 것이다.
♣西施顰目
춘추 시대 말엽,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그러나 서시는 가슴앓이로 말미암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길을 걸을 때 가슴의 통증 때문에 늘 눈살을 찌푸리고 걸었다. 이것을 본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자기도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쁘게 보일 것으로 믿고 서시의 흉내를 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질겁을 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장자(莊子)》〈천운편(天運篇)〉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원래 반유교적(反儒敎的)인 莊子가 외형에만 사로잡혀 본질(本質)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사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실로 의미심장하다.
춘추 시대 말엽의 난세에 태어난 孔子가 그 옛날 周王朝의 이상 정치(理想政治)를 그대로 魯나라와 衛나라에 재현시키려는 것은 마치 '西施顰目'을 흉내 내는 추녀의 행동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네이버에서-
<解說 및 寸評>
이 詩의 詩題 ‘玉壺吟’으로 한 것은 이백의 창작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援用하여 詩題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世說新語·豪爽》에 의하면 東晋 王處仲(處仲;王敦의 字)이 음주 후에 항상 부르는 曹操의 《步出夏門行》중에서 “老驥伏櫪,志在千里. 烈士暮年,壯心不已”를 敲擊玉壺하면서 즐겨 불렀다고 한다. (백도백과에서 인용)
‘老驥伏櫪,志在千里. 烈士暮年,壯心不已’는 ‘늙은 志士의 뜻은 천리에 가 있는데 엎드려 있어야 하니, 열사의 말년에도 장한 심경은 멈출 줄 모르네.’ 참으로 비장한 심경인 것이라서, 바로 이 점에서 오늘 이백도 같은 心境에서 詩題를 玉壺吟으로 한 것이고, 烈士와 暮年 壯心을 借韻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詩가 作詩된 時期는 李白이 궁에서 쫓겨난 744년 후에 장안을 떠나 유배 길에 오르면서 그 悲憤慷慨한 鬱憤을 토한 것으로 보아지고 그러한 맥락 하에서 詩를 드려다 보면 시를 感賞하는 데에 도움 될 것으로 보아진다.
이 詩가 구성되고 있는 모양은 1~4句의 導入部, 5~10句까지의 吟詠部, 그리고 나머지가 작자의 心吐部로 3부로 구성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설명을 더 붙이자면, 1부는 위에서 대강의 뜻을 밝혔으니 생략하고,
2부에서는 이백이 자신은 궁에 있을 때의 자랑스럽고 웅장한 경험들을 내세우면서 궁에서 쫓겨나 유배 길에 있는 자기 처지에 대한 抗心을 吐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3부는 東方朔과 西施의 故事를 인용하면서, 동방삭이 아무리 오래 살고 유명하다고 해도 그가 생각하고 있는 바는 老子나 흉내 내는 한낱 소인배와 같은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동방삭은 칭송하고 있으면서, 자신이 한림원 供奉으로 있다가 쫓겨나자 사람들이 자기를 폄훼하는 것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자신의 大隱의 뜻(志)이 老子처럼 왕조를 위한 웅장한 포부를 머금었다는 것이고, 이를 사람들이 어찌 알 것이며 실현할 수 없는 궁중의 勢力構圖를 안타깝게 여긴다는 현실인식의 일단을 유감없이 그려낸 것이다. 참으로 作詩技法의 妙方(직접 화법이 아닌 고사를 인용한 간접 기법)에 讚嘆을 금할 수 없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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