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보림문화제 축제장에서 부활한 장흥 고싸움 영상(1분 7초)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는 장흥도호부 시절인 1872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장흥교 밑에서 서부 고와 동부 고로 나눠 풍년을 축원하는 민속공연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인 1917년에 중단됐다가 지난 1970년 ‘제1회 장흥 보림문화제’(군민의 날)를 계기로 다시 부활했다.
장흥 고싸움은 장흥읍을 가로지르는 예양강(탐진강)을 기준으로 서부와 동부로 편을 나누어 행하였다. 장흥에서는 먼저 고싸움(고쌈)을 격렬하게 한 다음 곧바로 줄당기기를 했으므로 둘을 합해서 ‘고싸움 줄당기기’라고 부른다. 20세기 이전에는 장흥관아에서 관장하던 고을형 축제로 전승되었다.
조선시대에 장흥에는 두 개의 행정 관청이 있었는데, 예양강 서쪽에 자리한 장흥도호부 이외에 역로(驛路)를 관장하는 벽사도(碧紗道)가 부동면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벽사찰방(碧紗察訪,종6품)은 품계는 낮았으나 관할 업무가 달라서 도호부사(都護府使,종3품)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지 않았다.
이처럼 소속이 다른 두 기관이 서쪽과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두 기관 간의 경쟁 구도가 형성돼 고싸움 줄당기기가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고 전한다. <한국민족대백과 참조>
옛날에 보든 게임이네요
차전놀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아리 꼬리달린건 고싸움
통나무 틀로 세모모양으로 역어 만든건 차전 놀이로 기억되네요 ㅎ
어랜만에 봅니다 ㅎ
이 고싸움을 재현해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모양입니다. 고싸움을 하려면 500명이나 소요된다고 하는데요, 농촌이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기에 인원 동원이 관건이라고 합니다.
지금 장흥의 고싸움에 사용되는 고를 만드는 것은 장흥읍
행원마을에서 전승하고 있다네요.
야운 위이환 님
아무래도 무인들이 많은 동네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백명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