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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231203낮 (눅2:25-39)
<25)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아멘
오늘은 대강절 제 1주입니다. 대강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대강절의 핵심은 기다림입니다. 누구를 기다림입니까? 구주 예수님입니다.
이미 2천 년 전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특별히 인류를 위하여 친히 십자가 처형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를 믿는 사람들은 죄 사함 받고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동행하시고, 함께 하시며, 그리고 그 예수님은 장차 마지막 때 재림 주로, 심판 주로 오실 것입니다. 대강절은 이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한마디로 대강절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맞이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기다림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시므온은 평생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 사람입니다(눅2:25-35) 시므온은 평생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았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이 확실하게 메시야를 기다렸던 이유가 26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메시야를 만나보고 죽으리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대하며 기다렸겠습니까?
그러다 마침내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결례를 받으러 성전에 왔을 때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례는 남자아이는 태어난 지 40일 만에, 여자 아이는 80일 만에 제사장에게 가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모가 해산하면 몸이 부정해지기 때문에 율법적으로 산모와 아이가 깨끗해졌다는 확정을 받는 예식이 정결 예식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 예수님이 태어난 지 40일 만에 시므온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때 시므온이 아기를 받아 안고 노래합니다(29-31절).
<29)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예수님이 어떤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의 예수님을 향한 고백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기다리는 구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적어도 내가 기다리는 분이 어떤 분인 줄은 알아야 하잖아요?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1. 위로자이십니다(25)
25절입니다.
<25)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민족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정말로 위로가 필요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시므온은 늘 성전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민족을 위로할 분을 보내주세요'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위로자가 오기까지 너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힘이 났습니다. 그가 기다리는 위로자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위로자로 오셨습니다.
위로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위로는 찾아 와 주시는 것입니다. 멀리서 전화하는 것보다 직접 찾아오는 것이 제일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를 직접 찾아 와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많은 위로와 용기와 희망의 말씀을 해 주셨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직접 찾아오신 것이 가장 큰 위로요 희망인 것입니다.
요즘 주말에 KBS2에서 <고려 거란 전쟁>라는 주말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잠깐 봐는데..가슴을 울리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거란이 40만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쳐들어왔습니다. 고려에서 전쟁을 준비하는데,,,장수와 군인들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동원령이 내려져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이때 19살에 임금이 된 현종이 백성들을 어떻게 위로 할 수 있을까? 라고 하자 강감찬장군이(당시에는 높지 않은 벼슬)
이렇게 조언합니다. 어느 절에서 남편과 자식을 전쟁터에보낸 부인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으니 참석하셔서 위로하시면 어떨까? 조안을 합니다. 그때 어린 현종이 그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한 들 위로가 되겠는가?라고 하자 강감찬 장군은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아무말씀 안하셔도...그냥, 임금께서 찾아가 주시는 것만으로도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찾아 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전지의 주제이신 하나님께서 저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가장 큰 위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은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입니다. 성탄절은 평화의 소식이면서 위로의 소식입니다.
우리는 유난히 눈물과 아픔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이 자리에도 위로가 필요치 않은 사람은 한분도 안 계실 것입니다.
고후 1:3, 4절에는 <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고, 낙심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고,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로하시며, 근심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며, 죄악 가운데서 고민하는 자를 위로하시며, 고독한 자에게 위로하시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위로하십니다. 우리들의 모든 어려운 문제 가운데서 위로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이 시대에 예수님은 더욱 필요합니다. 그래서 더욱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위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대강절에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신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은 없는 자의 풍성이십니다.
요6:1-13절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11절만 읽겠습니다.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계시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으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이곳은 음식을 구하기도 힘들고 인가조차 없는 황량한 광야였습니다. 주님은 그 고장의 출신 빌립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지만, 정작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안드레가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한 소년이 가져다준 도시락이었습니다. 실로 초라한 음식이었지만 주님이 축사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천명이 배부르게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11절에 배고프고 허기진 그들에게 원대로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후8: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 하셨듯이 예수님은 없는 자의 풍성이시며 가난한자를 부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늘 풍성하게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마귀도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은혜도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성령도 충만하게 하십니다.
가난도 부요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없는 자의 풍성이시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천한 자의 높음이 되십니다.
눅19:1-10절은 세리장 삭개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여리고성의 세리장인 삭개오는 자기 민족을 배반하고 로마정부에 빌붙어 녹을 먹고사는 부자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늘 공허하고 외로웠습니다. 어느 날 여리고에 오신 예수님을 뽕나무(돌감람나무) 위로 올라가서 뵙고 주님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삭개오는 기쁘게 주님과 그 제자들을 모시고 자신의 집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의 은혜를 받아 철저하게 회개를 했습니다.
눅19:8절입니다.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주님께서는 삭개오의 진실한 회심을 기뻐하시며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언하시고, 삭개오를 가리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라고 높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인도 주님 앞에 나와 자복하고 회개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갈3:7절에,
<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죄와 자범죄로 추하고 천하기 그지없는 마귀의 자녀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가장 천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한자의 높음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4. 예수님은 잡힌 자의 놓임이 되십니다.
막5:1-20절에는 거라사 지방의 군대귀신 들린 자를 놓임 받게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9절만 읽겠습니다.
<8)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를 놓임 받게 하셨습니다. 수 없이 많이 귀신에게 붙들려 고통당하는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행16:18절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 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예수님 이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잡힌 자의 놓임이 되십니다. 바울과 실라가 '한 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할 때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 문이 열려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혀 고통당하는 자들을 놓임 받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을까요? 예수이름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질병에 사로잡혀 있던,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사로잡혀 있던, 죄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던, 끊어버리지 못하는 세상의 나쁜 습관들에 얽매어 있던... 모두 다 이 시간 놓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예수님은 눈먼 자의 빛이십니다.
요9:1-7절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에 대하여 제자들은 '누구 죄 때문에 날 때부터 소경 되었느냐'고 예수께 질문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소경과 같은 무서운 병은 반드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결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는 아직 죄를 지을 기회도 없이 소경이 되었으므로 누구의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혹시 '그 부모의 죄 때문에 그 사람이 모태에서부터 소경 된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사람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의해 그 사람이 소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소경 된 자가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눈에 붙은 진흙을 씻을 때 그의 눈은 뜨여지고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소경의 눈을 뜨게 해 빛을 보게 하심으로써 이를 증명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해 소경의 육신의 눈을 보게 하심으로써 영적인 흑암 속에 있는 죄인들에게 '생명의 빛을 주시는 분'이심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눈 먼 자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32절에도 시므이는 예수님을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라고 노래합니다.
요8:12절에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 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을 표현할 때 '나는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어두움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만선의 축복을 받고, 주님 앞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이 임재 하시면 안 보이던 죄가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이 대강절에 기다리는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요, 온 세상의 빛이십니다.
6. 예수님은 병든 자의 고침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 곳에 있는 이유는 천사가 못에 가끔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할 때에 물이 동한 후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낫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께 병 낫기를 구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시자 그 병자는 '곧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출15:26절에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셨고, 렘30:17절에서도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4:2절에서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병든 자의 고침이 되십니다. 대강절,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치료자입십니다. 이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주님을 진실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치료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이 번 대강절기에 예수님을 만나셔서 육신의 질고, 마음의 병, 영의 질병 모두 치유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7. 예수님은 죽은 자의 부활이 되십니다.
요11:1-44절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갇혔습니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그 곳에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주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마르다에게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 되심을 밝히셨습니다.
요11:25-26절에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무덤을 막은 돌을 옮기게 하시고는 아버지께 기도하신 후에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령하시자, 죽었던 나사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신 것이며,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사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믿고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모든 위협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는 죽음의 문제도 해결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대강절!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산자와 죽은 자의 부활입니다.
8. 예수님은 멸망자의 구원자이십니다.(30절)
분문 30절입니다.
<30)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시므온은 예수님을 보면서 구원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12월 대강절에 기다리는 예수님은 구원자, 구세주이십니다.
죤 맥닐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기차 길 위에 술 마시고 취한 사람이 누워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모두가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빨리 가서 기차 길에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때 맥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심판의 기차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빨리 가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할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우는 자에게 위로자가 되십니다.
없는 자를 풍성케 하십니다.
천한자의 높임이 되어 주십니다.
잡힌 자의 놓임이 되십니다.
눈먼 자의 빛이 되십니다.
병든 자의 고침이 되십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되십니다.
멸망자의 구원이 되십니다.
오늘 본문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대강절에 우리도 시므온처럼, 각자가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